투옥과 재판과정에서 의연한 태도 잃지 않아 눈길
"함께 구속된 삼성 전문경영인들은 죄가 없다" 강조
삼성 "모든 혐의 무죄판결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법정투쟁"… 재계는 "다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연합뉴스 제공)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억지 탄핵과 구속' 과정에서 대표적인 희생양의 한 사람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년 가까이 씌워졌던 누명을 서서히 벗고 있다.

이 부회장은 5일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던 1심 재판부와 달리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재판이 끝난 뒤 그는 지난해 2월17일부터 당했던 구속 상태에서 353일 만에 벗어나 석방됐다. 이 부회장은 석방 후 곧바로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입원해 있는 삼성서울병원으로 향했다. 이 부회장은 구치소를 떠나면서 현장에서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지금 회장님을 뵈러 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1년 가까이 투옥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 과정에서 얻은 것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과거 사법처리 경험을 지닌 상당수 대기업 총수들이 우선 '투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검찰이나 법원에 비굴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수감 생활과 재판 과정에서 의연한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삼성을 세운 조부 이병철 창업자나 '수성(守成)을 넘어선 대도약'을 일군 부친 이건희 회장에 비해 '삼성 가(家) 3세'인 이재용 부회장의 자질과 역량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던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과 국민 사이에서도 "이번에 이재용을 다시 봤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확산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2심 판결을 앞두고 쓴 자필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의 무죄를 강력하게 밝히면서 강압적인 수사와 1년 가까이 이어진 인신구속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저는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으로 임직원들에게 선대회장이신 이병철 회장님이나 이건희 회장님과 같이 능력을 인정받아 삼성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었습니다"라며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임직원에게 인정받는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또 이 부회장은 "대통령이 도와주면 제가 성공적인 기업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은 안 했다"며 "외아들인 저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지도 않았고 그래서 뇌물을 주고 청탁을 할 필요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함께 구속된 최지성 부회장 등 삼성의 전문경영인들은 전혀 죄가 없다며 그들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삼성은 대법원 상고심에서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받을 때까지 법정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삼성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단순 뇌물 공여로 인정한 정유라 승마 지원 부분에 대해서도 끝까지 무죄를 주장할 것”이라며 대법원 상고를 예고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2심에서 1심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했던 혐의 중 대부분 사안에서 무죄를 이끌어냈다. 다만 승마 국가대표 정유라를 후원하는 과정에서 삼성이 구매한 말을 빌려줬다는 사실을 2심 재판부는 제3자 뇌물 공여로 인정했다.

재계는 이 부회장 석방에 대해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이번 판결을 통해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과 오해들이 상당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경총은 또 "이제부터라도 삼성그룹은 경영 공백을 메우고 투자와 일자리 창출 등 국가 경제 발전에 더욱 매진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객관적 사실과 법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원의 신중한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외신들도 이 부회장의 석방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즈는 "삼성이 대법원 상고를 통해 이 부회장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에는 시간이 6개월 정도 남았지만 이번 2심 판결을 통해 당장 경영에 복귀할 수 있게 됐다"며 "반도체 호황 사이클이 끝나가고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매출이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복귀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부회장이 구속된 지 1년 만에 판결이 나왔다"며 "한국의 가장 큰 기업의 리더십 공백이 메워지게 됐다"고 전했다. BBC는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삼성전자의 모바일과 반도체 부문을 효과적으로 경영해왔다"며 "오늘의 판결은 삼성에게는 행운"이라고 보도했다.

여야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 있게 판결한 항소심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며 "항소심 재판 결과는 말 세 마리로 삼성 부회장을 구속한 재판부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반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을 내린 법원의 결정이 매우 안타깝다"며 "국민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적폐가 아직도 대한민국에 살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또 다시 낼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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