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사실상 완패...최지성 장충기 박상진은 징역 2년에 집유 3년
"포괄적 현안의 경영권 승계 작업·부정한 청탁 인정 안 돼"
'승마 지원' 일부 유죄…영재센터 후원금·재단 출연금 무죄
법정형 가장 센 재산국외도피는 전부 무죄 판단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열린 이재용 삼성 부회장 항소심(2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17일 구속된 지 353일만에 석방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된 ▲포괄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출연(出捐) ▲‘0차 독대’ ▲재산국외도피 혐의들을 모두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승마 지원(뇌물) 혐의와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를 인정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지난달 말 결심공판에서 1심 때와 동일한 12년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라졌다.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한 형량도 일제히 낮아졌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던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던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던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이심전심으로 청탁?…재판부 “묵시적 청탁 인정 안 돼”

항소심 최대 쟁점은 재판부가 ‘이심전심으로 청탁’했다는 ‘묵시적 청탁’을 인정할지 여부였다.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에 구체적 청탁은 오가지 않았지만, ‘경영권 승계’에 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이는 명시적 청탁 없이 묵시적 청탁이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을 불렀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개별 현안들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심 판단을 수긍한다”며 “부정한 청탁의 대상으로서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논거로 ▲승계작업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고 ▲승계작업이 있다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에게 ‘명시적’으로 청탁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묵시적’ 부정한 청탁도 인정되지 않고 ▲박 전 대통령이 현안으로서의 승계작업을 인식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제시했다.

이 부회장 측의 “포괄적 경영권 승계 논의는 특검 측이 만든 가공의 틀이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부회장 측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가 이뤄진 시점에선 이 부회장이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사실상 경영권을 물려받은 뒤기 때문에 굳이 정부에 부정 청탁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은 무죄, ‘승마지원’은 뇌물죄로 인정

이에 따라 제3자뇌물수수죄에 대응하는 뇌물공여죄로 기소된 영재센터지원과 미르, K스포츠 등 재단 출연 행위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뇌물수수죄가 성립함을 전제로 한 공소사실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삼성이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설립하고자 하는 재단 출연금을 대납해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삼성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최 씨와 그의 딸 정유라 씨에게 제공했다는 ‘승마 지원’에 대해서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인정해 뇌물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최 씨의 딸이 받은 승마지원이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있는 관계라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승마지원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며 “박 전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가 뇌물을 수령했다”고 봤다.

‘재산국외도피’와 ‘범죄수익은닉’에 대한 혐의도 일부 벗었다. 재산국외도피에 대해서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도피’에 해당하지 않고, 피고인들에게 도피의 의도가 없었다”며 전부 무죄라고 보고, 이에 따라 마필과 차량 구매대금에 대한 범죄수익은닉 혐의도 벗었다. 그러나 승마지원을 위해 코어스포츠에 지급한 ‘용역대금 36억원’에 대해서는 부분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 “‘0차 독대’, 인정할 수 없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기된 쟁점인 ‘0차 독대’도 인정하지 않았다.

특검은 1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세 차례 만났다고 공소장에 적었다. 그러다 항소심 중간에 두 사람의 독대가 한 번 더 있었다고 주장했다. 날짜는 2014년 9월12일, 장소는 ‘삼청동 안가’라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이에 대해 “(독대 사실을) 기억 못하면 내가 치매”라고 강력 반발한 바 있다.

삼성 변호인단이 청와대 경호처에 ‘사실 조회 요청’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부회장 차량의 출입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앞서 1심에서 변호인단이 3차 독대 관련 사실조회를 했을 때 청와대로부터 이 부회장 차량이 10시23분에 안가에 도착했다 11시8분에 빠져나갔다는 답변을 얻은 것과 대조된다.

이에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 경호처가 이 부회장의 방문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고,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면담을 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내용의 면담이 있었다는 것인지 전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의 ‘朴 전 대통령-李 삼성 부회장 분리’ 노력, 성공했나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2차, 3차에 걸쳐 추가 기소하면서 ‘朴-李 분리’ 작업을 해왔다고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앞서 ‘이 부회장에 경영권 승계를 청탁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냈다’고 보고 수사를 해왔다. 박 전 대통령의 592억원 뇌물수수 혐의 가운데 400여억원 가량이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뇌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한쪽이 유죄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다른 쪽도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2,3차 추가 기소 이후 분리가 가능해졌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지난달 4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수’ 명목으로 박 전 대통령을 2차 기소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도 공직선거법 위반(부정선거운동)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해 4월17일 박영수 특검이 삼성 뇌물수수, 대기업 출연 강요 등으로 구속기소한 뒤 두 번이나 추가로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것이다.

1차 기소 혐의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형량이 서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반면, 2‧3차 기소 내용은 이 부회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이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도 “비록 박 전 대통령의 요구가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들에게 적법 행위의 기대가능성이 없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거리를 만드는 태도를 보였다.

한편, 앞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이 부회장의 선처를 원한다는 탄원서를 이 부회장 사건 담당 재판부에 제출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5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자필로 쓴 탄언서에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을 받거나 그의 청탁을 들어준 사실이 없다. 선처를 베풀어달라', '삼성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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