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위기에 결국 생방송 담화…"시위대 분노 정당"
최저임금 8% 넘게 인상...은퇴자 사회보장세 인상 철회
부유세 복원 요구는 거부..."일자리 창출에 악영향"
"개혁 유턴은 없다. 내 투쟁은 프랑스를 위한 것"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노란 조끼’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처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시위대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연금 수급자의 사회보장세 인상을 철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시위대가 요구하는 부유세율 원상회복만큼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배수진을 쳤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만든 부유세를 올해 대폭 낮춰 경기를 살렸다는 평을 받기도 했으나, 시위대는 부유세를 종전 수준으로 부활하라며 반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저녁 엘리제궁에서 생방송으로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13분간 이어진 담화 중 "시위대의 분노는 정당하며 이들의 요구 또한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며 정부차원의 조치를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는 일을 통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프랑스를 원한다"면서 우선 내년 1월부터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100유로(약 12만8000원)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세후 최저임금은 현재 세후 월 1185유로(약 152만원)인데 이를 8% 넘게 올리겠다는 것이다. 초과 근무에 따른 임금 지급분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고용주에게는 추가 비용 부담을 지우지 않고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분을 모두 떠안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저소득 연금생활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그는 “사회경제적으로 긴급한 상황이 있음을 확인했다”며 “월 2000유로(약 260만원) 미만을 버는 은퇴자를 대상으로 사회보장기여금(CSG)을 인상하려던 방안도 철회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내년부터 은퇴자가 내야 하는 CSG를 1.7% 올릴 예정이었다. 초과근무 수당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하지만 집권 후 축소 개편한 이른바 부유세를 원상대로 부활하라는 요구는 거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여기서 뒤로 물러나면 프랑스는 약해질 것"이라며 “일자리 창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탈세ㆍ탈루 등 조세 회피를 강력히 근절하고 공공지출을 감시하는 체제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대기업들이 사회보장에 더 기여해야 한다면서 다음 주에 기업인들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하며 기존 경제 정책 방향을 바꾼 것은 ‘노란 조끼’ 시위가 장기화하며 국가 분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다. 지난 4주간 토요일마다 네 차례 시위에 참가한 인원이 70만명을 넘어섰고, 마크롱 대통령 지지율은 21%까지 곤두박질 쳤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일환인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대로 시작한 시위는 폭력 시위를 넘어 대통령 퇴진 운동으로 번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시위에 대해 ‘40년 간 쌓여온 문제가 표면화한 것'이라고 항변 하면서도 자신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그는 "우리는 역사의 분기점에 서 있다"며 "나의 관심은 오로지 프랑스의 성공뿐이며 나의 투쟁은 프랑스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턴은 하지 않겠다"며 국가개혁 노선은 고수해 나가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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