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90일 유예기간' 지나자 대(對)이란 경제제재 복원을 명령
오늘부터 '금융' 옥죄기 시작…11월 부터는 '석유거래 금지'
분데스방크·토탈·지멘스·에어버스 등 유럽 금융기관·기업들 대(對)이란 제재에 협력
트럼프, 이란 상대로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대화의 길은 열어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상대로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예정대로 대이란 제재를 복원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재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 7일 0시 1분(한국시간 7일 낮 1시 1분)부터 적용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8일 '이란 핵 합의'(JCPOA) 탈퇴를 선언하면서 이달 6일까지를 '90일 유예기간'으로 통보한 바 있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주로 금융을 옥죄는 것을 시작으로 11월부터는 이란의 생명줄인 석유 거래를 차단한다.

우선 7일부터 발효되는 1단계 제재는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 적용된다. 미국 업체뿐만 아니라 이란과 거래한 제3국의 기업·개인도 제재를 받는 방식이다.

백악관은 ▲이란 정부의 달러화 구매 ▲이란 리알화 관련 거래 ▲이란 국채 발행 관련 활동 ▲이란의 금·귀금속 거래 ▲흑연·알루미늄·철·석탄·소프트웨어·자동차 거래 등을 제재 대상으로 명시했다.

글로벌 기축통화인 달러화 거래를 틀어막아 이란 정권의 돈줄을 옥죄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고립시키겠다는 취지다. 카펫, 피스타치오, 캐비어 등 이란 특산품의 수출길도 막히게 된다.

90일 이후인 11월 5일부터 부과되는 2단계 제재는 한층 강도가 높다.

백악관은 ▲이란의 석유제품 거래 ▲이란의 항만 운영·에너지·선박·조선 거래 ▲이란중앙은행과의 거래 등이 제재받게 된다고 밝혔다.

산유국인 이란의 에너지 거래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이란산 원유를 많이 수입하는 우리나라도 예외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권은 이란 핵협정(JCPOA) 체결 후 받은 자금을 핵미사일 개발과 테러리즘 자금 지원, 중동 지역 갈등 조장에 썼다"며 "핵 합의는 끔찍하고 일방적인 거래"라고 비판, "이란의 핵폭탄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목을 막는다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2015년 핵협정을 맺은 후에도 핵개발을 계속 해왔다며 올해 5월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 합의는 오히려 살인적인 독재자에게 현금을 제공하는 생명줄이 됐다"면서 "이란의 공격성은 더 강해졌고, 오늘날까지 미국과 우리의 동맹국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란 정권은 위협적이고 불안정한 행동에서 벗어나 글로벌 경제에 다시 편입되든지, 아니면 경제고립의 길을 이어가든지 선택해야 한다"며 "이란 정권이 선택에 직면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라도 모든 국가가 이런 (제재) 조처를 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경제활동을 줄이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는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밝혀 국제사회의 동참에 대한 압박을 높였다.

이에 국제사회는 미국 정부의 이같은 강력한 조치에 부담을 느끼는 곳도 적지 않다. 합법적 거래는 예외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유럽연합(EU)과 프랑스·독일·영국 3국은 미국의 이란 제재에 깊은 유감을 표명하고 이란과 합법적인 거래를 하는 EU 기업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와 장이브스 르드리앙(프랑스)·하이코 마스(독일)· 제러미 헌트(영국) 외교부 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란과 합법적인 사업을 하는 EU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업데이트된 '제재 무력화법'을 오는 7일부터 발효한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와 우호관계에 있는 러시아와 중국도 이란 핵 합의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성명과는 달리 EU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이란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이다.

FT에 따르면 독일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지난달 인출 규정을 개정해 수취인이 금융 제재와 돈세탁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보증해야 현금 인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란이 함부르크에 있는 '유럽-이란 은행(EIH)'에서 3억 달러 유로의 보유 현금을 회수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하는 조치로 대이란 제재의 일환인 조치다.

이에 베를린 주재 미국대사관은 지난 4일 트위터에 "이란의 활동을 막기 위해 협조해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현재 토탈, 푸조, 르노, 에어버스, 알스톰, 지멘스 등의 50여개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란과의 거래 중단 의사를 밝혔으며, EU 기업들을 보호한다고 밝힌 EU의 성명에도 불구하고 EU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를 의식해 시장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란에서 가스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던 프랑스 에너지 업체 토탈, 독일의 지멘스, 이란에 100여대의 항공기를 190억 달러에 공급하기로 했던 에어버스 등은 기존 계획을 접고 철수할 전망이다.

보잉,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미국 기업들도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보잉은 이란과 200억 달러 규모의 판매 계약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지난 6월 중단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이 지난 5월 이란에 대한 보잉의 수출 면허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제너럴 일렉트릭(GE)도 이란에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에너지 장비를 판매할 예정이었지만 보잉과 마찬가지로 지난 5월 이란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상대로 이처럼 강력한 제재에 나서고 있지만 한편으론 대화의 길을 열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이란 정권의 악의적 행동들에 대처하는 더욱 포괄적인 합의에 대해선 여전히 열려있다"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다음 달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만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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