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욱 변호사
황성욱 변호사

 지난 19일 세월호 사건 희생자 중 일부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선고가 내려졌다. 1심인 서울중앙지방법원(민사합의 제30부 이상현 재판장)은 세월호 희생자의 사망에 국가의 책임이 있고, 그 책임과 사망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으므로 국가가 배생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손해배상액은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위자료)로 구분되는데, 특이한 점은 위자료의 액수가 이례적으로 높았다. 희생자 1인당 2억 원, 친부모는 각 4천만 원, 조부모도 각 최대 1천만 원의 배상금을 받게 되었다.

언론을 보고 이러한 판결내용을 본 필자는 위자료가 다른 사건에 비해 상당히 높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필자는 평소 법원이 재산적 손해 즉 일실수입 산정을 함에 있어 지나치게 박한 기준을 적용하여 손해배상을 사실상 형해화(形骸化)하였다는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위자료 산정 그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유독 다른 사건의 죽음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만 특별한 참작과 특별한 산정을 해야 하는가는 법적인 형평성 차원에서 의문이 있다.

궁금했던 것은 손해배상책임의 근거였다. 국가가 무엇을 잘못했으며, 잘못이 있다면 세월호 사고에서 희생자들의 사망과 그 국가의 잘못이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사실 이것을 따진다는 것은 결코 간단치 않다. 그래서 세월호 사건에서 국가배상책임은 인정될 수도 있고 부정될 수도 있다. 사건을 어떤 측면에서 보는가, 국가의 역할은 어디까지이며 어디까지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아주 다양한 시각과 견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결론을 내리든 법리적 구성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이다.

처음에 필자는 어쨌든 법원에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기에 굳이 배상책임을 인정한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논리였을 거라고 추측했다.

‘세월호의 운영주체는 청해진해운이었고 사업을 통해 이익을 얻는 주체도 청해진해운이었으며 선박의 안전 및 관리 책임은 전적으로 청해진 해운에게 있다. 기본적으로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과적과 평형수 미달이었으며 여기에 선장과 선원들이 구조의무자로서 책임을 방기했다. 사고가 났지만 사망자들을 구조할 현실적 가능성이 명백한 시점을 그들이 도과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국가의 책임이 배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평소에 청해진해운의 방만한 관리를 철두철미하게 단속하지 못한 것이 직접적 사망의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더라도 사고의 결과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기에도 어렵다’는 정도로 말이다.

국가의 보호의무를 무한정 확대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이 국가의 보호의무를 무한정 확대한다면 모든 범죄에서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한다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만 세월호 사고의 경우, 당해 사업이 특허사업처럼 운영되어왔고 해운여객에 관련하여 국가가 엄청난 통제와 규제를 해왔던 터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다면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판결문을 보고 당혹감을 느꼈다.

국가배상책임의 근거가 사고당일 구조를 위해 달려갔던 해경 123정 김모 정장의 위법행위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세월호 희생자가 해경 123정 정장이 구조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망했다는 논리였다. 구체적으로 ① 그가 09:16경 현장지휘관으로 통보받았음에도 09:30경 사고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세월호와 교신을 하면서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점, ② 09:30경 도착하자마자 바로 퇴선명령 조치를 하지 않고 선체 밖으로 빠져나오는 승객들을 전력으로 구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법률에서 인과관계는 아무리 상당인과관계를 취하는 민법상 법리라 할지라도 ‘그것을 당연히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했더라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논리적인 개연성이 있어야한다. 다시 말하면, 김모 정장이 도착했을 때 바로 지금 법원이 준엄하게 설시하는 ‘그랬어야 했다’라는 기준이 모조리 현장에서 적용이 가능하고 그렇게 했다면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개연성이 존재해야한다.

과연 그럴까? 판결문에 적시된 대로 판단을 해도 과연 김모 정장의 위법 때문에 희생자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고현장 도착당시 이미 배는 50도까지 기울어진 상태였다. 기울어지기 전에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편 09:30부터 09:44경까지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던 게 큰 잘못이라고 판결문은 지적하나 판결문대로 사실을 받아들여도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09:37부터 외부와의 교신을 끊었다. 그리고 김모 정장은 어떻게 구조할지 판단하기 위해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동시에 상부와 무전교신을 하는 정신없는 상황이었다.

판사는 123정장이 당일 우연히도 평소와 다르게 해상경비 항로를 잡는 바람에 그나마도 09:30경에 사고해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을까. 사고가 터졌다는 소식을 바다에서 듣고 출렁이는 파도를 넘는 와중에 현장지휘관으로 통보받고 승객을 구조하러가는 정장에게 지금의 기준인 그것도 바다를 모르는 법률가의 ‘그랬어야 했다’라는 기준을 들이밀 수 있을까.

어쨌든 책임이 있다하더라도 필자가 생각한 국가배상책임의 근거가 아니라, 해경 때문에 세월호 희생자가 사망했다는 것이 국가배상책임 판결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이 판결에서 특이한 것은, 세월호 사고로 한참 마녀사냥을 언론이 하고 있을 때 광주법원이 김모 정장에게 내린 유죄확정판결을 결정적 증거자료라고 판시하면서도, ①구조본부의 부적절한 상황지휘, ②다른 현장구조세력의 구조실패, ③국가재난 컨트롤타워 미작동에 대해서도 국가가 책임있다는 원고측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는 것이다. 선례로 김모 정장에 대한 형사유죄판결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거였을까?

세월호 사고는 국민모두에게 슬픔을 주었다.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사고를 통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향후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누구부터 마녀 사냥할 것인지로 책임 회피나 떠넘기기를 해서도 안 되고 ‘때는 이때다’ 하면서 국가규제부터 늘리는 기회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같았으면 김모 정장은 영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영웅도 우리식 잣대로 즉, 다 끝난 뒤 사후에 법률가들의 잣대로 당시를 현미경 들이대듯 잘못을 파 해치겠다면 슈퍼맨도 역적이 될 것이다.

판결문 어디에도 그가 172명을 구했다는 말은 없었다.

황성욱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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