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 더불어민주당 후보(경기 안산갑)의 노무현 전 대통령 비하 발언을 두고 민주당이 또다시 ‘공천 내분’에 휩싸이는 분위기다. 친노무현을 계승한 친문재인(친문)계에서는 ‘양문석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반발이 거세지만, 양 후보는 버티기에 들어갔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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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후보 거취 문제를 두고 선대위 지도부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5일 ‘표현의 자유’라며 양 후보를 두둔했다. 지난 16일에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비난한 정치인을 비토하지 않았을 것이며 나도 마찬가지”라고 사퇴설을 일축했다.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도 “선거 때는 흔들리면 안 된다. 그대로 가야 된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부겸은 양문석의 결단 요구...양문석은 따지는 듯한 분위기 연출?

반면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강경한 입장으로, 양 후보에 대해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양 후보를 만나 “여기에서 새로운 게 더 나오면 그건 우리도 보호 못한다”며 “수습할 수 있는 건 당신 밖에 없다”는 말을 했다. 양 후보에게 직접적으로 사퇴를 압박한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양 후보의 태도가 지적을 받고 있다. 당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총선 후보자 대회에 참석한 양 후보는 김 위원장을 찾아가 눈을 똑바로 뜨며 “왜 이리 화가 많이 나셨어요?”라며 따지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17일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유튜브에서 “양 후보의 태도에 김 위원장은 아주 표정이 굳어지면서, ‘당신이 결정해라’고 했는데, 양문석은 1도 반성하는 빛이 안 보였다”며 “민주당 내 새로운 분열의 시발점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노무현 비하' 논란에 휩싸인 양문석 경기 안산갑 예비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2024.3.17.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노무현 비하' 논란에 휩싸인 양문석 경기 안산갑 예비후보와 대화하고 있다. 2024.3.17. [사진=연합뉴스]

버티는 양문석, 봉하마을 방문해 사죄하며 ‘전 당원 투표’요구

양 후보는 18일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사죄했다.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난 양 후보는 “유가족에 대한 사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그리워한 국민에 대한 사죄”라면서 자세를 한껏 낮췄다. 사퇴를 압박한 김부겸 위원장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셈이다.

양 후보는 사퇴의 조건으로 ‘전당원 투표’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양문석이 이대로 가야 하는지, 멈춰야 하는지 (묻는) 전 당원 투표를 당이 결정해준다면 기꺼이 감수하겠다”며 사실상 버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친노를 계승한 친문계에서는 양 후보에 대해서 비판이 거세다. 윤건영, 이광재, 고민정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뿌리이자, 노무현 정신을 강조해온 당인 만큼 양 후보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총리도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며 공천 철회를 요구했다.

민주당 주류, ‘선거 판세에 대한 자신감’으로 양문석 카드 밀어붙여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는 ‘양문석의 말은 정봉주 후보의 막말과는 다르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18일 CBS라디오에 출연한 경향신문 박순봉 기자는 “민주당 고위 관계자에 물어보니 ‘이거는 그냥 내부 평가 문제 아닐까요?’라고 얘기한다”고 밝혔다. 막말의 피해자가 국민이나 약자가 아니라, 내부 정치인을 비판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박 기자는 “3월이 되면 정권 심판론이 부각되면서 민주당이 우위에 설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는데, (민주당 지도부가) 그게 실제로 좀 맞아들어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공천 국면에서 국민의힘에서는 도태우, 장예찬 등 4명의 후보를 공천 탈락시켰다. 이에 대해 박 기자는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위기감이 더 크다는 것”이라며 “이기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내 사람을 쳐내고라도 이기고 싶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기자는 “이 대표측 인사는 지금 상황을 좋게 보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민의힘 지지층도 결집할 거고 정권이 이런저런 카드를 많이 쓰겠지만, 정권 심판의 흐름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의 큰 흐름 자체가 국민의힘으로서는 역전의 가능성이 없다라는 것이 이 대표 측 인사의 분석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가 18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가 18일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연이어 박 기자는 “(이 대표 측 인사가) 양문석 후보까지 내줄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다, 이렇게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판세가 유리하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민주당 주류의 생각을 펼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결국 이 대표나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이 양 후보의 사퇴설을 일축하는 근거는 ‘선거 판세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분석되는 대목이다.

반면 친문계에서는 정봉주 전 의원의 막말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내고 있다. 정 전 의원의 경선 상대는 박용진 의원인 반면, 양 후보의 경쟁 상대는 친문계인 전해철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친문이 뭉쳐서 강하게 반발하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유시민도 양문석 감싸기에 합류...선거 승리 위해 이재명 체제에 힘싣기 관측

따라서 친문계에서는 김부겸 위원장이 좀더 강경한 입장을 피력하며 양 후보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로 인해 봉합되는 듯하던 공천 갈등이 재점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두고 당이 다시 수렁에 빠질 것을 우려한 친노계의 수습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원조 친노 인사인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8일 김어준 씨 유튜브 '겸손은 힘들다'에서 "(양 후보의 발언이) 공직자로서의 자격 유무를 가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건 너무 명백하다"라며 "그런 말을 했다고 정치인 양문석을 싫어할 수 있지만, 그걸 가지고 '너는 공직자 될 자격이 없어'라는 진입장벽으로 쓰는 건 노 전 대통령을 모욕하는 행위"라고 했다.

또 "대통령이 살아계셨으면 '허 참, 한 번 (찾아)오라고 해라' 그런 정도로 끝낼 일"이라며 "이걸 갖고 무슨 후보직을 내놔야 되느니 마느니 하는 그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전 이사장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노 대통령 애달파하지 말고, 살아있는 당 대표한테나 좀 잘하라"며 이재명 체제에 힘을 실었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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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대표와 지도부가 친문계의 양문석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공천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양 후보의 막말이 추가적으로 더 밝혀진다면, 그 점은 이 대표에게도 부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민주당의 판세가 이대로 유지된다면, 양 후보의 막말이 추가적으로 나온다 하더라도 이 대표는 양 후보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격앙된 친노계 및 친문계가 주장하는 ‘민주당 정체성’이라는 명분보다는 4.10총선 승리라는 ‘실리’를 우선 챙기고 봐야 한다는 게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위원장의 속셈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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