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비로소 국민의 심판대 올랐다
호남의 정치적 권위 무너지고 있다
이번 총선의 진정한 정치적 성격은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라는 점
한동훈-이재명 대결은 표면적 현상일 뿐
본질은 여전히 윤석열-문재인 대결의 연장전
이미 용도폐기된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는 없다

4.10 총선을 40일가량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우열 구도에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심지어 신당을 추진 중인 조국 전 법무장관의 경우 민주당이 주도하는 좌파 연합이 200석을 넘게 확보,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함께 개헌까지 밀어붙인다는 목표를 공공연하게 거론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대선 결과를 뒤집는 것은 물론이고 문재인 정권에서 미처 달성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국체의 변화 즉 레짐체인지까지 달성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드러냈던 것이다.

조국이 이런 발언을 하던 지난해 연말까지만 해도 그게 별로 황당한 발언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어이없기는 하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부정 평가에 비해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정권 중간평가’로 불리는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해 들어 이런 분위기는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하던 거대 양당의 지지율이 최근 들어서는 국민의힘 우세가 전면화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양당의 지지율과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을 매주 조사해 발표하는 갤럽과 리얼미터에서는 그동안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앞서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지만 2월 들어서는 국민의힘이 민주당을 제치고 우위를 굳혀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17%포인트 차로 국민의힘을 누르고 압승했을 때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여론조사에서 표면적 수치보다 중요한 것이 추세이다. 새해 들어서 주요 여론조사는 국민의힘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덩달아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도 리얼미터에서 40%대를 돌파하는 등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도 희석시키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의힘 상승세와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 희석은 한동훈 효과와 함께 이재명이 주도하는 공천 난맥상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한동훈의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와 여기 대비되는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와 자신의 방탄을 위한 여러 가지 무리수가 극적인 대비 효과를 낳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사태를 지나치게 피상적으로 편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가깝다. 공천 파행이나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 등은 민주당 퇴행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깝다. 민주당의 지지율 침체는 보다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변화의 일부분이 표면에 드러난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그 근원적인 변화는 1987년 체제의 승리자이자 오너인 좌파가 비로소 국민의 심판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철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논리가 작동한다. 좌파와 우파가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아니 좌파가 훨씬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도 여론은 우파를 더 가혹하게 대한다. 우파 진영에서는 이런 현상을 두고 ‘좌파들이 워낙 선전 선동에 능해서’라는 식의 해석을 내리곤 한다. 하지만 이것도 현상을 원인과 등치시킨 결과이다. 일종의 동어반복이라는 얘기이다.

여론전에서 우파가 좌파에 비해 현저하게 불리한 것은 우파가 87체제의 정치적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1987년 체제를 출발시킨 직선제 개헌 투쟁의 승리자가 호남과 주사파이다. 이게 정치와 여론 지형에서 좌파가 우세한 근본적인 이유이다. 정치적 승리, 이 사건이 갖는 어마어마한 의미를 우파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좌파가 워낙 선전 선동에 능해서’ 따위 하나마나한 얘기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시민단체 활동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시민단체 활동은 사회의 각 부분에서 제기되는 이해 대립과 갈등을 조율하고 해결하는 데에서 역할을 찾는다. 하지만 정치는 그런 각 부문의 이슈를 종합하여 대립 전선을 만드는 데 그 본질이 있다. 그래서 정치는 시민사회의 개별 이슈들을 포괄하면서도 별도의 이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종의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정치가 이런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치투쟁에서 승리한 진영은 향후 모든 영역에서 본질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정치투쟁의 승리가 국가 사회의 영역 전체에 대한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특히 그 정치투쟁의 결과를 헌법에까지 반영한 경우 즉 개헌에까지 이른 경우 그 정치적 정당성은 헌정 차원에서 담보된다. 개헌은 헌정질서의 재구성이며 헌정질서는 국민국가의 거버넌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투쟁에서 승리한 호남-주사파 연대가 바로 이런 위상을 오랫동안 독점해왔다.

최근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공천 파동의 결과가 아니라, 1987년 체제의 승리자이자 오너라는 좌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이다. 특히 좌파의 근거지이자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였던 호남의 정치적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경고음은 여기저기에서 울리고 있다.

호남의 정치적 권위는 피해자 위상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산업화 과정의 소외와 그 결과로서의 경제적 낙후, 5.18 당시의 처절한 투쟁과 대규모 피해, 사회 전반에 만연한 호남에 대한 인종주의적 혐오 등이 배경이다. 역설적이지만 호남의 정치적 파워는 바로 이런 피해자 또는 소수자 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자 파워는 1987년 체제 내내 비슷한 사례를 붕어빵처럼 찍어내는 원천이 됐다.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이고,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핵심은 뭐니 뭐니 해도 5.18이다. 의도적으로 이런 사고들을 만들었다는 게 아니고, 사고가 터졌을 때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처리하는 메커니즘과 방법론이 공통되는 측면이 많다는 얘기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일반화되면서 대한민국에서는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2의 5.18, 제2의 세월호로 만들려는 노력이 집중되곤 했다.

최근의 변화는 이렇게 처리된 사건들의 위력이 옛날 같지 않은 데서 드러난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 특별법까지 통과시켜가며 투쟁을 확산시키려 했지만 기대했던 시민들의 동참은 저조했다. 이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얼씨구나 하며 나서는 직업적 운동가들이 유가족들을 부추겨 소규모 시위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유가족과 민주당, 좌파 시민단체 등이 격렬하게 반발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국민들은 이 사건을 잊어가고 있다. 아니 그보다 좌파들의 얄팍한 감성팔이 접근 방식에 넌더리를 내고 있다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이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대장동 의혹을 한 데 묶여 특검으로 다루자는 민주당의 공세도 반응이 시들하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부와 여권에 직격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국민들은 이 사건 자체를 잘 모른다. 도이치모터스는 실종되고 오히려 종북 목사의 명품 파우치 증여 사건으로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건 이제 이 사건을 거론하는 사람도 크게 줄었다. 얄팍한 반일 정서에 기대 밀어붙였던 후쿠시마 처리수 문제는 어떻게 됐나? 수산시장은 지금도 회를 사먹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런 변화는 민주당의 본진 호남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갤럽이 3월 27~2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호남 지지율은 53%였다. 지난주 같은 조사에서 67%였던 것이 1주일 만에 14%p나 추락한 것이다. 전국 지지율의 경우 국민의힘은 1주일만에 37%에서 40%로 3%p 상승했고 민주당(33%)과의 지지율 격차는 7%p로 오차범위를 벗어났다. 특히 총선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 지역에서 국민의힘 정당 지지도는 전주(37%)보다 6%p 오른 43%, 민주당은 같은 기간 4%p 하락한 26%로, 국민의힘이 민주당보다 17%p나 더 높았다.

지난 대선 이후 국민의힘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에 비해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부정 평가에 비해 낮았다. 20~30%p 정도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총선은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는 차원에서 대통령 지지율의 약세는 국민의힘의 총선 패배를 예고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하지만, 실제 총선 승부에서는 대통령 지지율보다 정당 지지율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사례가 많다. 게다가 국민의힘 지지율 상승이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도 희석시키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대통령 심판을 이슈화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586 운동권 청산 등 야당 심판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진정한 정치적 성격은 이 정치적 충돌이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표현했던 요구가 여전히 현실 정치에서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는 몇 가지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첫째, 한 번도 공직선거 경험이 없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입문 8개월만에 권좌에 올랐다는 점이다. 1987년 체제 출범 이후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후보가 대권을 거머쥔 것은 윤 대통령이 최초이다. 둘째, 일종의 규칙처럼 작동하던 10년 정권교체 주기가 깨졌다. 심지어 문재인의 지지율이 임기 말까지 40%대를 유지하던 가운데 발생한 정권교체였다. 셋째, 대선의 맞상대였던 윤석열과 이재명이 모두 일종의 무법자(outlaw)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이재명이야 사법 리스크 자체지만 법치의 수호자인 검찰 출신 윤 대통령도 얌전한 범생이 스타일은 아니다.

이런 현상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1987년 체제와 그 핵심인 좌파 패권에 대해서 근원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87년 체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거버넌스 시스템을 만들어가자는 국민적 합의가 지난 대선의 결과로 표출되었다고 봐야 한다. 무법자 스타일끼리 대선에서 대결한 것도 비슷한 현상이다. 물론 이런 합의는 일종의 정치적 무의식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지 의식화된 형태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대중적 무의식을 흔히 시대정신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번 총선이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라고 보는 것은 그런 국민적 요구가 지금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일까? 바로 민주당 때문이다. 이재명 탓이라기보다 문재인 등 오랫동안 민주당의 주류였던 친노친문의 책임이 우선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애써 윤석열을 당선시키면서 요구했던 시대적 변화가 민주당에 의해 가로막힌 것에 대해 분노한다.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라고 요구했는데 그 정권교체가 사실상 막혀있는 데 대해 분노한다는 얘기이다. 그 분노는 결국 민주당을 향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요구했던 시대적 변화가 달성될 때까지 계속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하게 된다. 총선이 그런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기회이다. 미완성 상태의 정권교체를 완성하는 방향으로 투표한다는 얘기이다. 이번 총선의 초점은 윤석열-이재명 대결에서 한동훈-이재명 대결로 옮겨갔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고 본질은 여전히 윤석열-문재인 대결의 연장전이다. 과연 이 대결에서 국민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상식적으로 윤석열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가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막혀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문재인을 지지하지도 않겠지만 설혹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해서 문재인이 다시 집권해서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는 걸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안다. 국민들은 실은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압도적으로 우위를 보여온 민주당의 지지율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국민이 윤석열 정권을 움직이게 만들고 자신들이 시킨 일을 제대로 해내도록 만드는 일종의 채찍으로 민주당을 활용하는 현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로 인해 기대에 못 미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윤석열 대신 문재인으로 컴백할 수는 없다. 그래서 민주당이라는, 이미 버린 카드까지 동원해가며 윤석열을 다그치는 것이다. 제대로 좀 하라고.

이재명은 어차피 이슈가 아니다. 이재명은 죽을 때까지 대선 출마해도 당선되지 못한다. 무법자를 헌정질서 바로잡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일회성에 그친다. 비슷한 스타일의 무법자 두 사람 즉 윤석열과 이재명 가운데 국민은 윤석열을 선택했다. 이미 망가진 1987년 체제를 싹 정리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하라고. 이런 작업은 일회성이고 불가역적이다. 대체하거나 취소가 불가능한 것이다. 윤석열-이재명의 2회전은 없다는 얘기이다. 윤석열을 상대로 하지 않더라도 이재명에게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이재명은 이미 용도폐기된 카드이다.

그래서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는 없다. 유일한 가능성이 과거 이회창처럼 제왕적 총재(당대표)로 야당 권력 누리다가 다시 한번 심판 받고 쓸쓸하게 사라지는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지금 이재명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사법 리스크다. 정권의 탄압에 대항하고 투쟁하는 포지션이 그의 정치적 존재감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내가 강력하게 윤석열-이재명 영수회담을 주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수회담이 이루어졌다면 민주당의 586 퇴출은 진작 이뤄졌을 것이다. 이재명과 문재인의 결별,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결별, 호남과 주사파의 결별이 앞당겨졌을 것이다. 이 작업이 이재명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시작일 뿐이다. 국민의힘은 지금부터 총선 이후를 준비해가야 한다. 그것은 7공화국의 준비이다. 결정적인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개헌 어젠다를 제시하고 그 승리를 헌정질서의 재구성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우파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투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지 못했고, 일시적으로 승리해도 그 열매를 금방 상실하곤 했다. 경제민주화를 경제자유화로 바꾸고, 평화통일 조항을 삭제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을 명기하는 개헌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이 투쟁은 지금 당장 시작해도 많이 늦었다. 대한민국 정체성을 바로잡는 투쟁이 없이는 우파는 항상 정치적 패배자의 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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