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문제 본질, 의사 수 부족 아닌 '낮은 의료수가' '의료사고 법적보호 부재' 때문
의료 산업은 내수, 非의대 첨단산업엔 누가 가나...이공계 인재 수급 더 어려워질 것
의대 증원 앞서 건강보험·의료개혁 등 시스템 개선이 우선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정부는 최근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현행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000명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의대 증원을 통해 2031년부터 2035년까지 5년간 최대 1만 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국민의 여론동향은 긍정적이다. 수험생, 학부모 그리고 입시 학원가는 쌍수를 들어 의대 증원을 환영하고 있다. 정부도 이들 우호적 여론을 응원 삼아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협회는 ‘공공의 적’으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국민건강을 내팽개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정책이 여론에 이끌려 결정돼서는 안 된다. 일이 잘 못 됐을 때, ‘여론’을 책임자로 소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4년에 ‘의대증원’이 무슨 이유에서 사회적 아젠다로 급부상했는지 의문이다. ‘혹여’ 2024년 총선을 겨냥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원래 의대 정원 확대는 좌파 아젠다였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 정권은 ‘공공의대’ 신설을 통해 의대증원을 시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원격진료’는 의료 혁신 차원에서 시도된 것으로 의대정원 증원과는 무관하다. 의대정원 증원 논쟁은 ‘우파진영’의 갈등을 낳았다.   

O 한국은 상대적으로 의사 수가 부족한가? 

 의대증원의 최대 논거는 한국에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인구 천명당 한국의 의사수는 2.5명으로 프랑스 3.2명, 독일 4.5명, OECD 평균 3.7명에 비해 적다. 하지만 ‘양적 지표’만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회피가능한 질병으로부터의 사망 통계’는 전혀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예방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mortality from preventive causes)과 ‘치료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mortality from treatable causes)은 OECD 평균보다 압도적으로 낮아, 한국의 의료서비스 질이 OECD에 비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1년간 인당 진료 회수’(17.2)도 OECD(6.8)보다 월등히 높다. 한국의 의료문제의 본질은 ‘의사 수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지역·필수의료 파행’은 의대증원의 최대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문제는 ‘시스템의 문제’로 의대 입학정원이 부족해서 유발된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의사가 부족한  진료과목은 ‘흉부외과, 소아청소년과, 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순이다. 이들 진료과목은 필수 의료분야로 분류된다. 정부의 요구대로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면 의사가 부족한 진료과목으로 미사일이 유도되듯이 의사자원이 ’그 쪽으로‘ 배분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필수의료 기피 현상은 ‘낮은 의료수가’ 그리고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보호 부재’에 기인한 것이다. 

 인간은 유인에 반응한다.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활동 의사 11만명 중 ‘피부 및 미용 종사’ 의사수가 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피부암을 치료하는 의사보다 피부의 점을 빼는 의사가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필수의료 기피현상은 당연한 것이다. 

 수도권 외 지역에 의사가 가지 않는 이유는 환자들이 지역의료 이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가 지역응급의료 서비스를 거부하고 헬기 편을 통해 서울로 향한 것이 지역의료 회피를 웅변하고 있다. 2000년 건강보험 통합 이후 권역별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면서 지역의료를 기피하는 풍조가 구조화됐다. 이는 정책 실패의 문제로 의사수 부족과는 거리가 멀다.  

O 고급인적 자원 배분의 치명적 왜곡

 신년 들어 ‘앤비디아 랠리’가 글로벌 증시를 달구고 있다. 연초 이후, 글로벌 반도체주 주가상승율을 보면, 엔바다아 58.59%, 도쿄일렉트론 44.84%, TSMC 17.54%, SK하이닉스 14.06%, 삼성전자 ‘마이너스 7.13%’의 실적을 보이고 있다. 한국만 랠리에서 소외되고 있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국내 반도체 업체 대부분이 엔비다아 가치사슬에서 벗어나 ‘낸드와 D램 등 범용 반도체’에 집중해 엔비디아의 혜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초격차 경쟁력’의 상징이었던 삼성전자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첨단산업 위기 국면에서 미증유의 의대정원 증원을 발표한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은 전국 40개 의대 총정원(3,058명)의 65%, 서울대의 2025학년도 총입학정원(3,497명)의 57%에 달한다. 2025년 입시부터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위에 정원 2천명의 대학 하나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SKY 자연계 총입학정원이 약 4,800명인바, 새로 증원되는 2000명의 의대생은 기존 자연계열 재학생의 절반에 육박하는 규모이다. 

 의대 증원은 입시 판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의대 정원 증원 만큼 의대 준비생이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보수적으로 ‘4배수’로 잡아도 2천명의 증원이니 어림잡아 8천명의 입시생이 의대 진학을 ‘새로’ 준비할 것이다. 의대 증원은 비(非)의대 첨단산업 분야 인재 양성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종로학원은 의대 정원이 2000명 늘면 합격선은 수능 국어·수학·탐구 합산 점수(300점 만점) 기준 281.4점으로 지금보다 4.5점 낮아질 것으로 추산한다. 그러면 SKY 대학 자연계 학과 합격자 중 의대 합격 가능권의 비율이 78.5%까지 넓어지게 된다. 의대 쏠림 현상으로 인력 양성 체계에 이미 왜곡이 빚어진 상황에서 파격적 의대 증원은 이공계를 초토화시킨다고 봐도 과장이 아니다.  

 박기범(2022. 7. 29)의 「이공계 대학원 ‘다운사이징’ 전망과 우리의 전략」, STEPI 과학기술정책포럼에 따르면 2024~2028년 사이에 과학·기술분야 학사 이상 신규인력은 매년 공급이 수요에 비해 4.7만명씩 부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25년부터 의대정원이 5천명으로 증가한다면 이공계 수급 불균형은 그만큼 증폭될 것이다.

 각국은 미래 신산업을 주도할 핵심인재 양성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상원은 2021년 기술굴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래기술, 과학, 연구 분야에 향후 5년간 최소 2,000억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을 포함한 패키지 법안인 ‘미국 혁신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다. 장기적으로 미국의 기술역량 확대와 중국과의 격차 유지를 목적으로 한다. 

 중국은 2019년부터 소위 화웨이 수출통제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되자, 2021년부터 ‘14차 5개년 규획(2021~2025)’을 통해 ‘혁신이 이끄는 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조업 및 기술 자립화를 천명하고, 실행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내 고급 과학기술 인력 육성’과 ‘해외 고급인재 유치’를 위한 쌍일류(雙一流)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래의 먹거리는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탐색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 시스템 반도체, 이차전지, 인공지능 그리고 로봇산업’에서 발굴돼야 한다. 미래먹거리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이를 위한 고급인력이 ‘피부미용, 성형외과, 도수치료’로 빠지는 것이 옳은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고급인력이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지는 않는다.

O 의료 문제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책이 여론에 이끌려서는 안된다. 그 자체가 포퓰리즘이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여론에 기대어 정책을 편다면 당장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부동산 투자에 영끌한 MZ 세대는 원리금 상환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내수 경기 부진으로 자영업자도 수지를 맞추지 못해,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다. 이들에게 숨통을 틔우려면 금리를 대폭 낮추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의료 문제는 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금의 의료 파행과 실패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부터 건강보험에 이르기까지 의료산업에 대해 전방위적 시스템 개선을 꾀할 필요가 있다. 의대 정원 확대에 앞서 건강보험과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의대 정원 확대에 정책이 매몰돼서는 안 된다. 증원하더라도 순차적으로 증원해야 한다. 의료는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천재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뼈 때라는 기적이 내수 산업에서 나오기는 어렵다. 미증유의 의대증원은 자칫하면 골목의사만 양산하고, 정작 대한민국에 필요한 인재를 구축(驅逐)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의대정원을 한 칼에 65% 증원하는 것은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날로 치열해 지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패자(loser)를 자초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숙고와 합리’는 실종되고 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현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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