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을 보면 ‘그 분’이 생각난다. 그 분은 알키비아데스다. 맞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의 그 알키비아데스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실지 몰라 간단한 이력 적는다. 그는 외모 지상주의의 나라 아테네에서도 소문난 미남자였다. 여성도 아닌데 ‘꽃처럼 활짝’ 피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도 좋아 소크라테스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외모와 머리만 복 받은 게 아니다. 스포츠에도 만능이어서 올림픽 우승 기록까지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 그대로 아테네의 아이돌이었다.

단점도 있었다. 너무 잘난 나머지 매사에 나서기를 자제하지 않았고 허영심은 하늘에 닿았다. 여자관계는 당연 과다. 시칠리아 원정에서 성공적인 전투를 마친 그에게 아테네 법정의 소환명령이 떨어진다. 원정 전날 아테네 시내에서 헤르메스 흉상을 훼손한 혐의였다. 귀국 하면 사형 판결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알키비아데스는 획기적인 발상을 한다. 적국인 스파르타로 망명을 결심한 것이다. 스파르타에 도착한 알키비아데스는 이제껏 댁들에게 입힌 손해보다 훨씬 더 크게 보상 하겠다며 이익을 제시한 후 위험한 일에는 자신을 마음껏 이용하라는 소리까지 덧붙인다. 실제로 그는 아테네의 고위급 인사가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요지를 점령해 스파르타의 환심을 확정한다. 그러나 본성은 숨길 수 없는 법이다. 스파르타 왕비인 티마이아가 임신한다.

스파르타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가까스로 탈출한 알키비아데스는 이번에는 그리스 전체의 적인 페르시아로 망명을 떠나신다. 페르시아에서도 알키비아데스의 지략은 빛을 발한다. 알키비아데스는 스파르타를 돕되 일방적으로 아테네를 이길 정도로 지원하지는 말라는 조언으로 페르시아 군 사령부를 매료시킨다. 그러나 이번에도 교만이 문제였다. 스파르타 함대를 제압한 사실을 과다하게 떠들다가 페르시아의 총독과 불화가 났고 결국 페르시아를 탈출하는 처지가 된다. 하수에게 세상은 지옥이지만 고수에게는 놀이터라더니 알키비아데스에게 세상이 딱 그랬다. 아테네에서는 이미 그의 수하들이 알키비아데스의 귀국을 바라는 여론을 조성해놓은 상태였다.

2천 년 먼저 온 세계 시민, 알키비아데스

아테네에서 알키비아데스는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시계는 마치 그가 시칠리아 원정을 위해 아테네를 떠날 때로 돌아간 듯 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황금으로 된 관을 씌어주었고 육군과 해군을 지휘하는 영광까지 안겨준다. 알키비아데스는 전함을 끌고 나가 스파르타 해군을 격파하는 것으로 실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기적인 아테네 인민들은 만족을 몰랐고 실책이 하나 둘 쌓이면서 그는 다시 아테네를 탈출한다. 페르시아 영토 프리기아에 안착했지만 스파르타에서 보낸 자객들과 아테네에서 보낸 암살단은 알키비아데스를 한가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애첩과 지내고 있던 알키비아데스의 은신처에 들이닥친 것은 페르시아 칼잡이들이었다. 이들은 저택에 불을 질렀고 뛰어나오는 알키비아데스의 심장에 화살을 꽂았다. 아테네에서 스파르타로 그리고 페르시아를 거쳐 다시 아테네에서 화려한 시절을 누렸던 한 인물의 초라한 최후였다.

당적 수집이 취미인 또 한 사람

그 분, 알키비아데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분’은 이언주 전 국회의원이다. 민주당에서 출발해 의원 배지를 두 번 단 뒤 국민의당으로 왔다가 배신의 당을 거친 후 다시 국민의힘에 들어왔다. 그러더니 오는 총선을 앞두고는 친정인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불과 12년 사이 여의도를 한 바퀴 유람하신 행적이 비슷한 기간 동안 지중해 연안 국가를 섭렵한 알키비아데스와 어찌나 그리 닮았는지. 거기다 영명하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말이다.

때마다 이유가 있었겠지만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언주씨를 ‘민머리 철새’라고 불렀다. 철새도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생존을 위해 수만 킬로미터를 행군하는 노고를 폄하하다니) 민머리는 조금 치사하다. 예전 그녀의 삭발식을 두고 하신 말씀 같은데 지적으로 사람 조롱하는 데는 천부적인 진 교수도 가끔은 일차원적인 사고를 하시는 모양이다. 입이 거친 사람들은 이언주씨를 ‘정치 창녀’라고까지 부른다. 뭐라고 비난하든 상관도, 관심도 없지만 제발 그 표현만큼은 안 쓰셨으면 좋겠다. 편견이 가득한 비하 발언이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엉망이어도 사람에 대해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것은 극강의 육체노동을 감내하며 몸 하나로 짠내 나는 삶을 이어가는 수많은 직업여성들에 대한 모욕이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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