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 모습. 김경율 비대위원(맨 오른쪽)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2일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 모습. 김경율 비대위원(맨 오른쪽)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사퇴'를 요구했던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섰지만, 갈등 봉합의 전제 조건으로 국민의힘 김경율 비대위원의 비대위원직 '사퇴'를 내걸었다는 언론 보도가 23일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가 주요 관심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

1. 대통령실이 '김경율 사퇴' 요구하는 이유는

언론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23일 김 비대위원의 사퇴가 이뤄져야 갈등이 조기에 봉합될 수 있단 입장을 밝혔다.

물론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김경율 위원의 사퇴를 요구한 적은 없다.

이에따라 대통령실이 비공식적으로 이같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김 비대위원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꺼지지 않은 이슈'임은 사실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이같은 요구를 내걸었다면 상황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왜냐면 이번 사태의 배경이 표면적으로 사천(私薦) 논란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2. 김경율의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 그 맥락은

김 비대위원은 지난 17일 JTBC 유튜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해당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구체제 마지막 왕이었던 루이 16세의 왕비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유럽 왕실의 일원이다.

그는 해당 방송에서 '주가조작 논란'과 '명품백 수수 논란' 중 "경중을 따지자면 분명히 저는 디올백이 심각한 사건"이라며 "둘 다 부적절한데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진상을 이야기하고 또 사과를 대통령이든 영부인이든 혹은 두 분 다 같이 입장을 표명하는 게 국민의 감정을,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건희 리스크의 핵심이 주가조작보다 디올백에 더 있는 것이냐"는 진행자의 물음에 "그렇게 본다"면서 "유튜브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조금 어그레시브(aggressive, 공격적으로)하게 해보면"이라 답했다. 

마리 앙투아네트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그는 "해도 되나. 부적절할 것 같은데 이제 하고 잘리면 된다"고 운을 뗀 뒤, "최순실 국정농단 촛불집회 뒤풀이에서 참여연대 역사학 교수 한 분이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을 것 같냐'고 해서 우리는 당연히 자유 평등 같은 이념을 연상했는데,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니까 감성이 폭발된 것"이라 말했다.

이어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명품백 논란'에 대해 말하면서 "지금 이 사건도 이성적 합리적으로 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면서 "국민의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바짝 엎드려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3. 대통령실과 김경율의 좁힐 수 없는 시각차?

김 비대위원은 22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제 거친 언행이 여러모로 불편함을 드린 적 있다"고 사과했다. 이는 김 여사 명품가방 수수 의혹 관련해 그가 했던 발언에 대한 사과로 해석됐지만, '마리 앙투아네트' 발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에 회의 후 취재진으로부터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발언도 사과한 것이냐'는 추가 질문이 나왔고, 그는 "예"라 답했다. 이로써 해당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는데, 다음날 대통령실의 '김경율 사퇴 요구'가 나온 것이다.

그 바탕에 여러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중 한 가지는 김 비대위원이 사과 후에도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사과 전과) 계속 같은 생각"이라며 "저는 (생각에) 변한게 없다. 저도 짧지 않은 시민사회 활동을 해왔다. 그에 기초해 판단해달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대통령실이 분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국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상(像)이 나라를 망하게 한 인물이자 단두대 처형이라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 왕비로 정립돼 있는 만큼, 대통령실 내부에 '비유를 들어도 왜 하필 이런 인물을 끌어들이냐'는 인식이 폭넓게 자리했을 수 있다.   

반면 김 비대위원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김 여사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 중이다. 또한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와 직접 비교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그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자신의 발언이 온전히 소개된 언론 기사를 인용하면서 "이 내용이 김 여사를 앙투아네트에 비교한 것으로 보이냐"며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국민의) 감정선이 건드려졌을 때 이성의 문이 닫힌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마 하이데거를 가져와서 비슷한 내용을 설명한 적도 있을 텐데, 그럼 이 경우 하이데거는 누구냐"고 지적했다.

김 비대위원은 해당 사안 관련해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격해져 설득이나 설명, 대화가 불가능해지기 전에 사과를 하는 편이 낫다고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호미로 막자'는 것이다.

김 비대위원의 이 게시글은 현재는 페이스북에서 찾아볼 수 없다. 

김경율 비대위원이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글. 현재는 페이스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김경율 비대위원이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글. 현재는 페이스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사진=인터넷 커뮤니티]

 

결국 대통령실과 김 비대위원 간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실로서는 '사퇴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가능한 상황이다.

4. 한동훈의 선택지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 비대위원장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대통령실의 요구를 수용해 김 비대위원에 사퇴를 종용하거나, 그렇지 않고 요구를 묵살·거부하는 것이다. 두 선택지 모두 부담스럽다.

대통령실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는 모습을 빠른 시일 내에 보여줄 수 있다는 '득'이 있지만, 여론은 싸늘해질수 있다.

'윤석열 아바타'라는 좌파의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데다,총선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에도 힘들어질수 있다.

이에 더해 김 비대위원을 임명한 이가 바로 한 비대위원장이며, 서울 내 주요 총선 격전지 중 한 곳인 마포을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의 대항마로 자신있게 소개했던 이 또한 그다. 김 비대위원의 사퇴는 한 비대위원장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모양이 여간 이상해지는게 아니다. 일각에서는 총선에도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비대위 내부에서도 "이런 일로 김 위원이 사퇴하면 우리도 사퇴해야 하느냐"는 기류가 있다.

이와 반대로 대통령실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한 비대위원장의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위신과 명망은 더 높아지겠지만,백척간두에 서는 느낌이다.

아직 임기가 3년이 넘게 남은 윤 대통령과 인간적·정치적 결별 수순을 밟는데다,사실상 여당 기능을 할수 없게 된다. 

일각에서는 한 비대위원장이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 등 대통령실과의 힘겨루기 1차전에서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까닭에, 이번 2차전에서도 '임전무퇴'할 것이라 예상이 나온다. 다만 확실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5.대통령의 통큰 결단 가능성은

상호간에 상처를 가장 적게 입는 시나리오는 이같은 전제조건이 사실이 아닐 경우다. 김경율 사퇴요구는 격앙된 일부 참모들이 '오버'한 것이고,이번 사태가 더이상 서로 요구 조건없이 여기서 마무리되는게 좋다는 견해이다.

이같은 극적인 화해 시나리오는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충남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 점검에 동행함으로써 가능해졌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갈등이 더이상의 확전없이 어떤 식으로든 수습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대통령실이 김 비대위원 사퇴를 요구한다면,당은 이관섭 비서실장 사퇴를 요구하는 맞불을 놓을수 있다.이 경우 사태는 악화된다. 이상민의원은 23일 실제 이번 상황을 악화시킨 책임을 이관섭 비서실장에게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쯤에서 대통령실이 한번 더 통큰 양보를 하는게 실제적인 마무리 수순일수 있다.'지는게 이기는 것'이라는 속담처럼,이쯤해서 대통령실이 물러서는게 총선승리라는 더 큰 전쟁터에서 이기는 길일수 있다.

양측이 '윈윈'하는 슬기로운 해법을 모색할지,아니면 추가 갈등을 이어갈지 하루이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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