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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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차이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우파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이 충격은 우파의 정치적 각성을 이끌어냈다. 그러한 정치적 각성에 따른 실천 가운데 하나가 다양한 정치학교를 시도한 것이다. 이것은 우파가 평소 좌파에게 느끼던 정치적 열등감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런 정치학교 가운데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우파 정치학교 프로그램 가운데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걸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겨우 존재감을 유지하는 정도다. 우파 정치학교가 성공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프로그램들이 전국 각지에 등장했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파 정치학교 고유의 모델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좌파의 정치학교는 훈련된 강사가 정해진 공간에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TO의 수강생들을 모아 자신들의 이념과 어젠다, 시각, 논리 등을 주입식으로 교육하는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정형화된 커리큘럼이다. 바로 커리큘럼의 외연과 내포를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에 저런 방식의 정치학교 프로그램이 가능한 것이다. 80년대 학생운동의 이른바 의식화 교육부터가 기본적으로 이런 방식이었고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 저변에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좌파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대중들이 바로 이런 정치학교 프로그램의 소산이다.

좌파의 정치적 훈련도에 열등감을 느낀 우파는 이런 정치학교 프로그램을 그대로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좌파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해 좌파와 우파의 이념과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파에게는 우파의 이념과 특성에 맞는 정치학교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우파는 아직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좌파 정치학교 프로그램의 단순 모방에 그치다 보니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파의 이념과 특성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여기에 맞는 정치학교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우파는 건국도 했고 산업화도 했지만 사실상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의 우파 정치는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에 가까웠다. 정치 이념을 무기삼아 대중을 설득하고 조직하여 특정 정치적 과제에 동원한 경험이 극히 빈약한 것이다. 우파가 동원한 대중은 대부분 관변조직의 회원이었고 이들은 이념적 호소력보다는 국가 권력의 위력과 거기서 파생되는 혜택에 끌린 이권 추구형 대중에 가까웠다. 당연히 이들에게는 이념이라는 게 존재하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는 우선 우파 이념이 가진 본질적 특성에 기인한다. 좌파 이념은 정치 권력 쟁취를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설계한, 정치투쟁에 최적화된 세계관이다. 이 세계가 어떤 원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종착점에 도착할 것인지에 대해 명쾌한 답안지를 갖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한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유물론이 그것이다. 레닌의 조직론도 여기 포함된다. 물론 이 답안지가 얼마나 정확한지, 얼마나 현실 정합성을 갖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일단 틀린 이념일지라도 완성도 높고 정교한 이념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정치투쟁에서 매우 유리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우파 이념은 그렇지 않다. 우파 이념은 이 세계가 어떤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어떤 결론을 향해 움직이는지 답변하지 않는다. 이념이 그런 답변을 내놓을 수 있다고 발상 자체와 거리가 멀다. 우파 이념은 한마디로 경험주의다. 살아봐야 안다는 식이다. 이게 어쩌면 세계를 이해하는 훨씬 정확한 방식이지만 정치투쟁에는 불리하다. 대중들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중은 명쾌하게 정리된 답변을 제시하면서 강하게 자신을 이끄는 리더십에 끌리기 쉽다.

좌파 이념이 대중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1917년 러시아혁명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사회주의 이념은 20세기라는 역사적인 무대에서 실패로 귀결됐지만 그런 경험이 대중적으로 소화되는 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고 보기 어렵다. 일제시대에 사회주의자들을 ‘주의자’라고 부른 데에서 당시 대중들에게 좌파 이념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회주의야말로 과학적 체계와 완결성을 가진 이념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독립운동 과정에서 더 강경하고 선명한 노선을 내세웠던 좌파들이 일제의 패전 이후 정치적인 명분에서 우위를 점했던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한마디로 우파에게는 이념적 자원이 부족했고 식민지 시대를 통해 근대화 과정을 경험해야 했던 한국인의 경우 이런 문제가 더욱 심각했다. 건국과 분단, 산업화 등 체제 경쟁의 과정에서 우파가 항상 좌파에게 이념적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산업화의 성과로 우파는 이런 열등감을 벗어날 수 있었으나 좌파가 주도한 민주화를 거치며 다시 이념적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좌파의 정치적 승리의 결과물인 87체제가 1~5공화국 어느 체제보다 오래 지속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민들에게 민주화가 건국과 산업화에 이은 근대화의 완성이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이는 87체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의 집권으로 인해 우파의 패배자 위상은 완전히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윤석열의 집권으로 반전의 계기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정치 지형은 우파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좌파 정치학교는 고정된 커리큘럼을 갖고 있다. 그 핵심은 마르크스 레닌주의 세계관과 전략 등이다. 현실 사회주의 세력이 패배하고 우리나라에서 주사파가 정치적 승리자가 되면서 주체사상이 좌파 정치 커리큘럼의 중심이 되었다. 여기에 PC주의가 결합한 상태이다. 하지만 마르크스 레닌주의가 갖고 있었던 결정론적 세계관과 분위기는 주체사상과 좌파의 이념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는 좌파 진영의 위계질서와 구심력의 근거가 된다.

2. 우파 정치학교 부재의 현실과 문제점

우파 정치학교의 부재 즉 정치 학습의 부재에서 생기는 문제점은 심각하다.

첫째, 우파 대중은 일반적인 기준의 교육 및 지식 정도와 무관하게 정치적인 훈련이 극히 부족하다. 그 단적인 표현이 음모론에 극히 취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정선거, 5.18 북한 특수부대 투입설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음모론에 취약한 것은 좌우 공통이지만 우파 대중이 음모론에 대한 의존도가 좀더 높다고 봐야 한다.

둘째,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비전 제시가 없다.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이 세계의 운동 법칙을 설명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역사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한 제시로 이어진다. 좌파는 비록 허접하지만 여기에 대해 강력한 내러티브 구조나 신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파는 이게 없다. 우리나라 우파가 끊임없이 이승만과 박정희로 회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사례에서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것이다.

셋째, 우파 내부의 위계질서가 없다. 2021년 당시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황교익을 경기관광공사의 사장으로 내정한 것을 이낙연이 비판하자 황교익은 극렬 반발하며 “이낙연의 정치 생명을 끊겠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해찬 등 좌파 진영 내부에서 교통정리에 나서자 받아들이고 자진사퇴했다. 우파 진영 같으면 어땠을까? 갈등이 쉽게 정리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도 정치 학습의 여부에 따른 차이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우파 대중은 정치적 정체성이 극히 취약하다. 규율도 찾아보기 어렵다. 유튜브 등 마이너 채널의 선동에 쉽게 넘어간다. 이런 문제들도 모두 정치 학습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파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나름 정치 교육을 시도하고 있지만 모범 사례를 찾기 어렵다. 정당의 경우 대개 선거법이나 선거 전략 등 실무 교육에 그치고 있으며 정작 정치학교의 핵심인 정치 철학에 대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개 우파 셀럽들 모셔다가 시국 강연 듣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우파 정치세력의 현실적 결집체인 정당에 주인이 없다는 점이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우파 정당 내부에는 주인이 없고 떴다방 또는 빈집털이를 노리는 세력들만이 번갈아 당권을 장악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좌파는 다르다. 시민단체 등 광범위한 배후 집단이 사실상 당의 주인이고 더불어민주당 등은 이 세력의 제도권 에이전트라고 봐야 한다. 이 문제도 결국 정치학교의 존재 여부에 따라 드러난 차이일 것이다.

3. 어떤 지점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우파의 정치 학습은 비정형(informal) 콘텐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외연과 내포가 명확한 세계관과 정치 콘텐츠가 세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보수의 본향인 미국과 영국의 법률이 불문법(oral law) 중심인 것과도 관련이 깊다. 좌파의 본향인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률 체계가 성문법(statute law) 중심인 것과 대조된다. 즉, 우파의 정치학교는 비정형 콘텐츠가 가장 자유롭게 유통되는 형태여야 한다.

비정형 콘텐츠가 가장 자유롭게 유통되는 형태는 무엇일까? 바로 토론이다. 토론은 고정된 커리큘럼이나 강사진이 필요 없다. 엄정한 토론 규칙과 이를 숙지한 사회자, 그리고 토론 주제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토론에 참여하는 대중이 기본적으로 공통된 관심사와 인식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요건을 갖춘 토론은 무엇일까? 바로 정당이 진행하는 토론일 수밖에 없다. 정당은 최소한의 정치적 동질성을 담보로 한 집단이고 기본적으로 조직적 규율이 작동한다. 그리고 훈련된 당직자와 전문가를 동원할 수 있다. 이건 비교적 훈련이 부족한 정치 대중이 공통된 관심사를 갖고 나름 질서 잡힌 정치 토론을 전개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배경이다.

토론을 통한 우파 정치학교에서 더 핵심적인 성공 요인이 있다. 무슨 주제를 놓고 토론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토론 참여자들 모두의 피부에 와 닿고 실제적인 의사결정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훈련이 덜 된 토론자들이 목적의식과 열정을 갖고 토론에 참여해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당과 당원의 최대 관심사이자 실제적인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주제가 무엇일까? 바로 공직 선거자의 공천 문제이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고위 당직자의 선출 문제도 여기 포함된다.

즉, 우파의 정치학교는 정당이 일정한 규칙 위에서 당원들이 참여하는 공천 관련 토론을 중심으로 조직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 선거의 공천을 두고 우파 정당이 당원들이 참여하는 정치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이것이 우파 정치학교의 궁극적 형태라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토크빌은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에서 자신이 목격한 미국의 타운홀 미팅을 소개한다.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타운홀에 모인 청중들을 상대로 강사들이 몇 시간씩 열변을 토하고, 평범한 청중들이 그걸 진지하게 경청하며 자리를 지키더라는 목격담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토론의 전통에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미국식 정치 토론은 현재 미국의 대통령 선거 공천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프라이머리와 코커스(caucus)가 그것이다. 프라이머리는 주 정부가 주관하는 선거, 코커스는 각 주의 정당이 주관하는 주민/유권자들의 모임이다. 오픈 프라이머리(open primary)는 지역 유권자라면 누구나 가서 후보에 표를 던질 수 있고, 반대로 클로즈드 프라이머리(closed primary)에서는 각 당의 당원만 후보를 뽑을 수 있다. 코커스는 주민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모임(gathering)의 성격이다.

4. 공천 관련 토론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

우파 정당의 공천 관련 당헌당규를 먼저 손질해야 한다. 공천에 대해 현실적인 결정권이 없이 그냥 당원들의 취미 활동 형식의 정치 토론으로는 의미도 없고 실제 성사되기도 어렵다. 당원들이 자유롭고 질서 있는 토론을 거쳐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직 선거 공천을 결정할 경우 그 영향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비로소 우파 대중의 정치학교가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짬짬이 밀실 공천이 될 수밖에 없는 공천관리위원회니 공천심사위원회니 하는 조직은 당헌에서 금지시켜야 한다. 다만 애초에 공천을 받을 자격이 없는 범죄자 등을 거르는 정도의 작업을 하는 조직은 필요하다. 나아가 각 지역의 공천 토론과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당원의 자격에 대해 투명하고 공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월 1만원 이상의 당비를 최소 6개월 이상 납부한 당원이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당원 교육 이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우파 정당의 경우 이런 당원 교육 자체가 잘 이루어지 않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공천 토론을 제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파 정치인들과 당직자 그리고 당원들의 인식이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인식이 그냥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당헌당규 개정안을 제기하고, 그 개정안을 당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원과 지지자 차원에서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당원들은 자발적으로 당비를 1만원으로 올리고, 당헌당규 요구를 제기하는 집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지자들은 구경꾼이 아닌, 실제 당의 활동에 참여하는 당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이런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이런 운동 자체가 정치학교의 출발이다. 우파 대중의 소극성, 피동성 등을 극복하는 정치적 실천이 광범위한 의미에서 일종의 정치학교 기능을 하게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논의해야 할 문제가 더 많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한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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