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 예산은 충분히 써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성과 측면에서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점
더이상 선진국의 뒤만 쫓아가는 연구개발로는 안 돼
가장 시급한 건 공무원의 권한 내려놓게 하는 것
결국엔 연구개발 예산에서 정부 비중 줄이고 민간으로 이양해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심상치 않다. 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16.6% 줄이자 여기에 대한 학계와 연구계의 반발이 거센 것이다. 1991년 이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이 줄어든 것은 처음인데다 감소폭도 이례적으로 크다. 내년 예산안에서 연구개발 분야는 총 25조9천억원으로 올해(31조1천억원)보다 5조2천억원 가량 감소했다.

연구개발 예산 삭감이 직접 타격을 미치는 영역은 인건비와 장비 운용 등이다. 그 가운데서도 대학원생과 박사후 연구원(포닥)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조건에서 연구개발 활동을 해오던 젊은 인재들에게 주는 타격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25개 정부 출연연구기관에는 지난해 학생 연구원 3635명, 포닥 1471명이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야당과 좌파 언론은 이 문제를 내년 총선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을 자극하는 소재로 보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고통을 겪는 과학자들 입장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계의 공감과 협조를 얻어내는 세심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해진 것에는 문재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원천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키운 것이 문재인 정부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10조원이나 늘렸다. 일본과 불필요한 갈등을 빚으면서 일본산 소재·장비 국산화(2.7배 증액), 코로나 감염병 대응(3배 증액), 중소기업 지원(2배 증액) 등에 제대로 된 심사조차 없이 예산을 뿌리다시피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과 관련해 더욱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쓰는 돈에 비해 성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정부 출연연구기관 소속 1만여 명이 2021년에 등록한 특허 가운데 딱 하나가 2등급이고 60% 가까이는 ‘장롱 특허’였다는 통계도 있다. 출연연을 관장하는 NST에 따르면 2016~2020 5년간 출연연이 출원하여 특허청에 등록된 특허 건수가 2만6513건이다.

변리사들이 이들 특허를 10개 등급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1등급은 단 한 개도 없고 2등급이 1개(0.3%), 3등급 25개(6.5%), 4등급 136개(35.4%)에 그쳤다. 절반 이상이 전혀 쓸모없는 기술이었고,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혈세가 쓰이고 있다는 얘기이다.

OECD가 발표한 ‘과학기술분야지표(MSTI)’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GDP 대비 R&D 비용 비율은 4.53%로 이스라엘(4.94%)에 이어 세계 2위다. 이 순위에서 한국은 2010년 이후 10년 동안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 연구개발 비중은 GDP 대비 0.93%로 미국(0.65%)이나 유럽(0.595), 일본(0.48%)보다 훨씬 높다. 예산을 삭감한다고 해서 과학기술자들이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그렇게 투자했는데도 도대체 내놓은 결과물이 뭐냐는 추궁에 답을 내놓아야 할 입장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부 연구개발은 선배들의 전설로 먹고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의 전설적인 연구개발 성공 사례가 주는 후광으로 버티고 있다는 얘기이다. 1980~1990년대의 성공 사례로 반도체 개발, 전전자 교환기(TDX), CDMA 등이 주로 꼽히지만 사실 반도체는 정부보다 기업이 주도했던 사업이었고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TDX와 CDMA 정도가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TDX와 CDMA 등 기술은 우리나라 정보통신 시대를 본격 개화시키는 밑바탕이 되었다. IT코리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개발 프로젝트가 준 효과가 너무 어마어마했기에 이후 정부 연구개발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성공 사례의 맥이 거의 끊겼다는 점이다. 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돈은 엄청나게 늘었는데 그만큼의 성과가 없다면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 연구개발 예산은 연구개발이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고만고만한 인력들 먹고살라고 나눠주는 민생 예산이라는 평가도 있다. 연구개발 예산이 푼돈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방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과를 내기보다 사람들 불만을 가라앉히는 데 예산의 진짜 효용이 있다는 얘기이다.

지금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에 반발하는 야당이나 좌파 언론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과거 이 문제에 대해 기사나 논설로 우려를 제기하던 언론들조차 입을 싹 씻고 마치 순결무구한 과학기술계가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건 좀 모순된 태도 아닌가.

사실 과학기술계의 대학원생들이나 포닥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들은 의사 결정 권한이 없다. 칼자루 쥔 교수님들이나 공무원들이 던져주는 일감을 열심히 수행한 죄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개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생기는 비효율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카르텔’을 향했고 그 칼날이 엉뚱하게 그 구조의 약자들을 향했을 뿐이다.

연구개발 분야의 ‘카르텔’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는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문제 제기가 너무 늦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안타까운 건 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분명 인수위가 활동했는데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로드맵이나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과학기술 분야의 셀럽인 안철수가 인수위원장을 맡지 않았던가. 안철수는 그 화려한 네임밸류와 경력을 갖고 인수위원장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대체 뭘 제안했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정부 주도 연구개발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페이퍼 작성용 과제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해외 연구진들이 검증을 끝낸 기술에 매달리고 있으니 그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연구원들이 리포트 작성용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실제 하는 일은 공무원들이 나눠주는 돈 어떻게 썼는지 검증하는 영수증 챙기고 서류 작성하는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공무원들도 할 말이 없지는 않다. 공무원들에게 제일 중요한 관심사는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비싼 혈세 투입한 연구개발 프로젝트는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무조건 성공하는 프로젝트는 ‘해외에서 검증된 기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99%에 이른다는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성공 신화는 여기에서 나온다. 성공은 했는데 쓸모는 없다. 신화가 아니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단단히 착각하는 게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으니 할만큼 했고 이제 특별히 더 노력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고 있다. 국가 진로의 다음 로드맵이 없다. 선진화를 얘기하지만 실체가 없이 공허한 명제에 가깝다. 그 결과가 먹고 즐기자는 풍조의 만연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자칫 과거의 성과 위에 주저앉아 처절하게 낙후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이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이다. 그래서 연구개발 예산은 충분히 써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현재처럼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연구개발 투자는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성과 측면에서 너무 낭비가 심하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연구개발 아이템의 선정과 지원 방식, 검증 방식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 방식은 여전히 추격형(fast follower)에 머무르고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된 기술을 쫓아가는 방식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일 때에는 이런 방식이 안전했고, 비용이나 성과 측면에서 성공적이었지만 이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진국의 뒤만 쫓아가는 연구개발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한국의 발전 단계가 이미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없는 기술은 대부분의 선진국에도 없고, 선진국이 갖고 있는 기술을 쫓아가다 보면 선진국은 이미 한참 더 앞서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가장 시급한 것은 연구개발 과제의 선정과 집행에서 공무원의 권한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정부가 나눠주는 돈인데 공무원이 손을 떼게 만든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이렇게 파격적인 원칙의 재설정이 아니라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학계와 연구계의 자율 역량을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소수의 공무원이 역시 소수인 학계와 연구계의 원로들과 담합하듯이 지원 프로젝트의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세스를 뜯어고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책임(피드백)과 분산의 원칙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연구개발의 당사자들이 책임지고 주도적으로 과제의 성격과 의미를 규정하고, 인력과 예산, 일정 등을 직접 설계해 경매 입찰하듯이 제안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그 제안을 어떻게 평가해 선정할 것인가이다.

과학기술계에 소속된 인력들의 업적과 위상에 따라 그들이 부여할 수 있는 평가 점수를 차등화해야 한다. 가령 과학기술계의 원로들이 부여할 수 있는 점수가 100점이라면 석사급 연구원은 10점, 포닥은 50점 이런 식으로 설계하면 어떨까. 중요한 것은 이런 평가의 권리가 과학기술계 관계자 전반에 폭넓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평가에서 특정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점수의 총량을 제한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연구개발 예산 배정 권한의 분산이다. 석사급 이상 인력이면 특정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지원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하지 않다. 문제는 오히려 이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그동안 너무 적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의사 결정의 권한을 폭넓게 인정해줘야 정부 연구개발의 막힌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본다. 언론계 등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력들에게도 평가 기회를 개방해야 할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선정과 예산 배정 문제는 1년 내내 상시적으로 개방된 논의 구조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현재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심사와 선정이 얼마나 정밀하고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다.

정부 지원 연구개발 프로젝트로 선정되면 그 예산 집행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율로 맡겼으면 한다. 영수증 챙기는 일로 피곤하게 하지 말자는 얘기이다. 아닌 말로 연구원들이 그 돈으로 룸싸롱 가서 아가씨들 끼고 실컷 술을 마시면 또 어떤가?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중요한 건 연구 결과 아닌가. 연구 결과에 대해서는 선정 당시와 마찬가지로 열린 토론 구조를 통해 평가하면 된다. 결과물을 내지 못한 프로젝트라 해도 그 과정에서 쌓은 경험이 후속 연구에 의미가 있다면 인정해야 한다. 이 문제 역시 학계와 연구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연구개발 인력의 평가에 대한 피드백도 필요하다. 어떤 인력이 평가한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에 따라 그 인력의 평가 능력과 전문성, 양심에 대해서도 점수를 매겨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추후 평가 권한에 반영해야 한다.

이상 말한 것이 책임의 원리라면 분산의 원리도 필요하다. 책임의 원리는 집단지성의 위력을 믿는 것이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반드시 필요한 프로젝트가 전체 평가 점수에서 밀려 탈락하는 경우도 반드시 생길 것이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각 영역별로 행사할 수 있는 예산액과 권한을 따로 할당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 분야별로 할당액을 배정하거나 인력 등급별로 배정하는 권한도 필요하다. 가령 상온 초전도체 분야에서 쓸 수 있는 절대액을 배정해 그 금액은 그 분야에서만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이 문제에 손을 떼도록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공무원들에게도 일정한 예산 할당권을 주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원칙의 설계도 열린 논의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런 디테일한 원칙을 떠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연구개발 예산에서 정부의 비중을 줄이고 그 자원을 민간으로 이양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원 사용의 효율과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민간 분야를 따라가기 어렵다. 민간이 손대기 어려운 우주항공 등의 분야를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모든 연구개발이 민간 주도로 옮겨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문제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개념설계(conceptual design) 능력의 부재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세부적인 기술 역량보다 창의력과 상상력의 부재가 더 심각한 한계일 수도 있다. 보다 개방된 논의 구조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력의 참여 확대가 이 문제의 해결책일 수 있다고 본다. 문외한인 필자가 이런 글을 쓸 용기를 낸 것은 그런 문제의식의 발로라는 점을 고백한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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