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 유력 정치인이 북아일랜드를 방문했을 때다. 우리도 당신네들처럼 지역 갈등이 심각하다고 하자 역시 유력한 북아일랜드 정치인이 물었다. 종교가 다르냐. 아니라고 하자 민족이 다르냐고 물었다. 역시 아니라고 하자 그럼 언어가 다르냐고 물었다. 셋 다 아니라는 대답에 북아일랜드 정치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왜 싸워?

물론 인간은 평화보다 분쟁을 좋아하는 동물이다. 꼭 그런 거시적인 지표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싸운다. 그런데 우리처럼 극악으로 싸우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일본인들은 조선이 당쟁으로 망했다고 했다. 침략자들이니 당연히 그렇게 말하겠지 싶었는데 요즘은 그게 사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 민족, 종의 특성이 나뉘어 싸우는 일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거다. 페친 중에 좌파가 몇 있다. 덕분에 그 동네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수가 있는데 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의견이 다를 수 있나 깜짝깜짝 놀란다. 최근에는 이승만 기념관이 화두인 모양이다. ‘있을 수 없는 일’, ‘나라의 수치’ 같은 표현들이 등장했다. 하긴 역사를 가장 서남부처럼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한 인터넷 방송인은 죽었다 깨나도 이승만을 존경할 수 없는 이유를 스물 몇 가지나 들었다. 이 분은 이승만의 국부 호칭에 경기를 일으키고 기념관 건립 사업에도 일찌감치 봄부터 이승만의 각종 삽질을 들먹인 사람이다.

존경 불가 이유가 스물 몇 가지라는 사실에 놀랐다. 너무 적어서 놀랐다. 어떤 사람이 아흔에 죽었는데 직업이 정치고 그 일을 시작한 게 스무 살 무렵인데 오류가 겨우 스물 몇 가지라고? 혹시라도 그 나이까지 정치라는 걸 하면서 흠이 없다면 그건 선량하고 청렴한 게 아니라 괴물이다. 한참 양보해도 사이코패스다. 내용을 보니 그 인터넷 방송인에게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가치 판단이 앞서는 모양이다. 아시다시피 전근대는 right와 wrong의 세계다. 옮고 그름, 조선을 망하게 한 소위 그 ‘명분’이다. 근대는 good과 bad다. 그가 한 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 일이었는가를 따지는 것이 기준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에서 도덕을 분리하면서 근대 정치학의 비조가 됐다. 그 사람은 마키아벨리 이전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샜다.

4.19가 위대해지기 위해 이승만은 더 낮아져야했다

한쪽에서는 악을 쓰는 모양이지만 어쨌거나 기념관 건립은 현실이 됐다. 갑자기, 전문용어로 ‘빠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특히 매체들이 좋아하는 게 4.19세대의 반성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같은 식의 증언이 서사적이고 드라마틱하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4.19 시위를 주도했고 국회의원을 지낸 분 인터뷰를 보다가 혀를 찼다. 뒤늦게 이승만을 공부하다보니 알수록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분이 공부를 시작한 게 2010년이다. 4.19로부터 무려 50년이다. 그런데 그때야 이승만 공부를 시작했다고? 무려 반백 년 세월을 아무런 지적 활동도 하지 않고 보냈다는 그 분의 고백은 충격이다.

역사는 대략 10년 단위로 업데이트가 된다. 새로운 사료와 연구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기존의 학설과 서술이 수정된다. 이승만도 그랬다. 그런데 그게 다섯 차례나 업데이트 되는 동안 관심 한 번 안 가지셨다니 다소 슬프고 대략 민망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분의 신념이 결사적으로 굳건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독재자고 우리는 그를 쫓아낸 의인義人이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각인했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자신들의 업적을 부풀리고 성역화 하는데 죽어라 힘썼다. 마치 386세대가 민주화를 불가침의 성과로 포장하는 것처럼. 4.19를 위대하게 만들이 위해 그 분들은 반복해서 사건을 화장化粧을 했고 그 결과 이승만을 화장火葬했다. 4.19세대의 반성문을 매체가 실어주는 것에 큰 이견은 없다. 다만 기사 끝에 논평은 한마디씩 꼭 달았으면 좋겠다. 이제 와서 그걸 알았다고? 남들은 진즉에 다 아는 걸?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반성문에도 기한은 있다.

이승만이 안 보이는 건 세계사 공부 부족

이승만 공부가 별 거 아니다. 세계사 공부다. 이승만을 가리켜 세계사적으로 봐야 윤곽이 보이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체 세계사적으로 본다는 것이 어떤 걸까. 대답이 궁했는데 다행히 최근 답을 대신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복거일 선생의 이승만 전기다.

책을 펴든 사람은 당황했을 것이다. 이승만은 별로 안 나오고 진주만 공습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진다. 1권 끝내고 2권 들어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때 쯤 독자는 감이 온다. 세계사적인 흐름에 맞춰 그 안에서 이승만의 행적을 봐야 이해가 간다는 것을. 우물 안 한반도의 시각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읽히지 않은 인물이 이승만인 것이다. 모쪼록 회개한 4.19세대는 이 소설을(소설을 빙자한 역사책이긴 하지만) 꼭 읽으시길 바란다. 반성문에는 진심도 담겨야 하지만 구체적인 반성 포인트도 들어가 있어야 한다. 마음으로만 반성하지 말고 제발 머리로 반성들 하시라.

탕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사실 4.19세대의 철지난 반성에 별 관심은 없다. 내 인생 반성하기도 바쁜데 남의 회고담이라니요. 아쉬운 건 우익 사람들이 이런 행태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것이다. 특히 개심한 정치인들에게.

좀 지난 얘기긴 하지만 좌파 쪽에서 정치를 시작한 한 여성 국회의원이 박정희가 천재라고 말하자 우익이 단체로 감동한 적이 있다. 박정희 관련 기념식에 초청하는 등 난리가 났다. 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그들이 정치인이라는 사실이다. 정치와 예술의 차이점이 있다. 예술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피카소는 그의 청색시대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정치인은 다르다. 예전의 생각과 발언에 책임을 져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게 우익의 습관이나 철책이라면 개심자, 탕자들은 너무나 쉽고 편안하게 이 철책을 넘어 올 것이다. 일종의 보험 혹은 노후 대책으로. 환영하되 그 즉시 상석에 앉혀주지는 말자. 대한민국 우익, 결기는 좀 딸리지만 판단력과 머리까지 부족하지는 말자.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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