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4년간 집값 통계 최소 94회 개입"
靑·국토부, 부동산원·통계청 압박"
'소득주도성장' 뒷받침하려 
소득·분배·고용지표도 조작
통계청 보도자료 문구에도 개입

장하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연합뉴스]
장하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연합뉴스]

감사원은 전임 문재인 정부의 집값 등 주요 국가 통계 작성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전 정부에서 수년간 통계 조작이 있었다고 보고 전 정부 고위직 등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15일 밝혔다.

정부 부동산 정책 수립의 기반이 되는 통계를 조작했기 때문에 왜곡된 정책으로 국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본 셈이다.  문 정부가 국가 주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감사원에서 한 중간 감사결과 발표 브리핑에서 "청와대(대통령비서실)와 국토교통부 등은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을 압박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거나 통계 서술 정보를 왜곡하게 하는 등의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작년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감사관 28명을 투입해 감사를 진행했다.

수사 요청 대상에는 전임 정부 정책실장 4명(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이 모두 들어갔다.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참모들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통계청장 등이 포함됐다.

이 외에 감사원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의심하는 7명에 대해서도 수사참고자료를 송부해 모두 29명이 수사기관의 판단을 받게 됐다.

전 정부 집값 통계와 관련, 최 사무차장은 "청와대와 국토부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최소 94회 이상 한국부동산원 통계 작성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게 했다"고 밝혔다.

주택가격동향이 공표되기 전 한국부동산원 내부에서만 공유되는 '통계 잠정치'를 국토부 공무원들이 미리 청와대에 보고했고 한국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 조사 중 집값 통계를 임의로 낮춘 것으로 감사원 조사결과 드러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부터 장하성 전 정책실장은 "주 1회 통계 공표로는 대책 효과를 확인하기에 부족하다"면서 국토부에 집값 변동률 '확정치'(7일간 조사 후 다음 날 공표)를 공표하기 전 '주중치'(3일간 조사 후 보고)와 '속보치'(7일간 조사 즉시 보고)를 보고하라고 요구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연합뉴스]

작성 중인 통계를 공표 전에 다른 기관에 제공하는 것은 통계법 위반이다.

이때 주중치보다 속보치와 확정치가 높게 보고되면 사유를 보고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물론, 나중에는 주중치도 실제보다 낮게 조작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이 같은 유출·조작이 후임 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정책실장 재임 때까지 계속됐다고 봤다.

청와대와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 원장 사퇴까지 종용하면서 압박을 이어가자 한국부동산원은 2019년 2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총 70주간은 아예 조사 없이 임의 예측치를 주중치로 만들어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억지로 눌러놓은 통계는 현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5월 이후 5년간 한국부동산원과 대표적인 부동산 민간 통계기관인 KB의 주택통계 간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이 기간 KB는 서울 지역 부동산 변동률을 62.20% 상승으로 판단한 반면, 한국부동산원은 이에 절반도 되지 않는 19.46%로 계산했다. 

2008~2012년 사이 0.4% 포인트에 불과했던 두 통계간 격차는 2017년 이후에는 15.2% 포인트로 38배나 벌어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통계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조사 과정에 입력한 표본값을 사전 보고 뒤에 다시 건드리는 것은 분명한 통계법 위반"이라며 "자료와 증거를 통해 입증된 가장 객관적인 개입 사례만 94회"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등이 이같은 청와대와 국토부의 외압 행사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점이다. 감사 내용에 따르면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진상파악 후 국토부와 청와대 국토교통비서관실 등에 직접 연락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에만 나섰다.

국정감사 등에서 통계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한국부동산원은 2019년 일부 표본 가격을 시세에 맞춰 수정했는데, 이 때문에 상승률이 급등하자 다시 예전 집값을 오히려 높게 다시 입력하는 악순환도 일어났다고 감사원은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득과 분배, 고용 통계도 매만져졌다.

청와대 정책실은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제시한 뒤인 2017년 1분기에도 소득분배지표가 악화하자 통계청에 원인을 수차례 분석·보고하도록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2017년 2분기에는 가계소득마저 감소로 전환하자, 가계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자가 있는 가구'의 소득에 전에 없던 가중값을 추가하는 방법으로 소득이 높아진 것 같이 보이게 조작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실은 2019년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때 비정규직 급증이 예상되자 통계청이 언론에 '병행조사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 효과가 35만∼50만명'이라고 설명하도록 지시하고 보도자료 문구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감사원 관계자는 "수사요청은 감사위원회 의결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어서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며 "관련 실무자 징계 여부, 제도 개선 요구 등을 종합적으로 남은 최종 감사보고서를 최대한 이른 시일에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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