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 화웨이의 첨단기술 발표...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미국이 쇠퇴할지 몰라도 그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
민주화는 정치체제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아...사회 전반 개방화 유연화 다양화 합리화도 포함돼
한국처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식 민주주의, 민주주의 보편성에서 일탈했다는 자기고백일뿐
중국은 보편성 대신 전근대적인 중화주의와 집단주의로...
노예들은 결코 고급 지식사회도 첨단 지능형 사회도 만들어낼 수 없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1990년대 후반 그러니까 21세기를 몇 년 앞둔 시점의 일이었다.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 우리말로는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의 세계적인 공급업체가 인상적인 발표를 했다. 자신들이 그해 회계연도를 마무리하면서 단 하루만에 각종 회계 정산을 끝냈다는 것이었다. 자사 ERP 프로그램의 위력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당시 IT전문지 기자로 일하고 있던 나는 그 발표를 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 회사 본사가 자사 ERP 프로그램을 사용해 회계 처리를 깔끔하게 끝낸 건 알겠는데, 이 제품을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에서는 왜 그런 발표가 없나요?”

나의 이 순진한(?) 질문에 이 세계적인 기업의 국내지사 고위 담당자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간을 끌더니 나중에야 좀 불편한 진실을 얘기해줬다.

“국내 기업들에는 세계적인 기준에서는 도저히 관리되지 않는 회계 관행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비자금 처리 같은 것들이죠. 이런 문제들은 시스템만으로 처리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자의적인 판단을 개입시킬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처리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죠. 이건 소프트웨어나 시스템의 성능과는 무관한 얘기입니다.”

내가 30여년 전의 기억을 소환해낸 것은 최근 중국의 거대 게임업체 텐센트가 발표한 첫 생성형 AI ‘훈위안(混元)’의 성능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훈위안은 화상회의 요약 등에서 GPT3.5를 앞섰고, 엑셀 공식 생성 정확도에서도 82%를 기록해 GPT3.5(71%)보다 높았다고 한다. 이 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오픈AI의 ‘챗GPT’보다 수학 머리가 좋다. 메타(페이스북)의 ‘라마2’보다 거짓말을 덜한다”고 자신했다고 한다.

훈위안은 채팅방 대화 뿐만 아니라 화상회의, 광고 제작, 오피스 프로그램, 게임 등 50개 이상의 소프트웨어에 접목해 사용할 수 있다. 초거대 AI 모델을 완전히 수용하는 도구로서 중국 기업들은 앞으로 훈위안을 통해 각자의 입맛대로 AI 모델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기업 데이터와 결합, 금융·공공서비스·소셜미디어·전자상거래·물류·게임 등 모든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중국의 화웨이가 최근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에 자체 개발한 7나노급 반도체를 탑재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적지 않은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첨단 반도체 등에 관한 미국의 기술 차단과 봉쇄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자체 역량으로 그런 봉쇄를 돌파해내고 오히려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 발표는 중국이 미국의 기술 봉쇄를 돌파해냈다는 사실을 공식화하는 일종의 선전포고라고 받아들이는 시각도 있다.

나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기술 봉쇄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갖고 있다. 전세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돌아가는 현대 경제의 특성상 특정 국가를 상대로 한 기술적 차단이 원천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인데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만 해도 중국과 경제적으로 너무나 긴밀하게 엮여있어 미국 정부의 봉쇄 요구에 끝까지 따를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일시적으로 봉쇄와 통제가 가능할 수 있어도 중장기적으로는 결국 어디선가 물이 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일단 구멍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미국이 패권 경쟁의 패배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점차 쇠퇴하고 그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게 될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미국은 쇠퇴할지 몰라도 그 자리를 중국이 대신하는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내부 불합리성 같은 요소들이 중국의 기업과 정부 조직의 내부 시스템에는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7년 체제의 성립을 고비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진통 끝에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쳤다. 지금 50대 이상 세대도 어렴풋이만 기억하는 사실이지만, 6공화국 성립 이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시민들에게 파출소 등은 공포의 장소였다. 자칫 잘못하면 그곳에서 경찰관들에게 폭행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는 막연한 상상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이었다. 동사무소 등 일선 행정관서에서 일을 볼 때 ‘와이로’라고 불리던 급행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일선 공무원들의 불친절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일선 공무원들의 불친절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끔 나오지만 과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이런 불합리한 요소를 정리해낸 과정이 바로 민주화였다. 흔히 민주화라고 하면 대통령 직선제 등 정치적인 권리의 확대와 제도의 정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198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사회 각 분야에 자리잡고 있는 비리와 불합리를 척결해내는 움직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개방화 유연화 다양화 합리화 등의 복합적인 요구의 종합을 민주화로 봐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런 변화의 진통을 거쳤기에 이후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등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전문가들의 의사결정 참여가 확대된 것, 사회 각 분야에서 개방적이고 유연한 분위기가 진전된 것도 결국은 민주화의 영향이었다. 사회의 발전은 보다 다양한 재능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민주화를 통한 사회적 분위기 변화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경우 이렇게 나름 사회적 합리화의 진통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기업 내부의 불합리 요소가 남아 있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지금도 사회 구석구석에 저런 요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처럼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중국의 경우는 어떨까?

시진핑은 2021년 7월 6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화상으로 개최한 '중국공산당과 세계 정당 지도자 정상회의' 기조연설에서 "민주주의 실현 방식이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다"며 "한 나라의 민주와 비민주를 판단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이지, 소수 국가가 마음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콩과 신장(新疆)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서방국가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진핑은 또 같은 해 10월 중앙 인민대표대회의 연설을 통해 “중국식 민주주의 체제는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주장했다. 시진핑은 “민주주의는 장식품이 아니다”라며 “민주주의는 진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국이야말로 정치·사회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인민의 의지를 실현하고 인민의 목소리를 듣는 진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시진핑의 발언은 중국의 민주주의 결여에 대한 방어에 집중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딘순하게 투표 등 정치적 권리와 제도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유와 인권, 법치 등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에 대한 총체적인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가 오랜 역사에 걸쳐 피땀 흘려 쌓아올린 권리이자 성과이다. 즉 인류사의 보편성을 띤 가치인 것이다. 중국의 치명적인 문제는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인류사적 보편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이 중국식 민주주의를 ‘위대한 창조물’이라고 부른다는 사실 자체가 중국의 내부 시스템이 민주주의 보편성에서 심각하게 일탈했다는 자기 고백일 수밖에 없다.

중국 현대사의 핵심 이슈도 결국 근대화이다. 근대화는 인민들의 에너지를 동원하고 조직화하는 데 극단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 즉 애국심을 극대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장졔스의 국민당은 이 애국심을 끌어내고 조직화하는 데 실패했고,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성공했다. 이 차이가 국공내전의 승부를 갈랐다. 장정과 국공내전 그리고 6.25전쟁 등이 모두 중국 근대화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이다.

한국에 온 조선족들이 자신들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지 않는 데 대해서 한국인들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조선족들은 중국공산당이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하는 내러티브에 이미 몰입하고 동화된 상태이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처럼 외부인이 보기에 실패가 분명한 사태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들이 중국공산당에 대해 충성심을 거두지 않는 것도 이러한 내러티브 때문이다. 중국의 2030세대는 여기에 개혁개방과 경제 개발 성과라는 내러티브까지 중첩해서 내면화하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몽은 이렇게 중국 인민들이 내면화한 근대화 내러티브의 필연적인 귀결일 수밖에 없다. 대만과의 통일도 거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의 근대화 내러티브는 중국 인민들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가득차 있지만 이런 요소들은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가 근대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요구하는 보편성을 배제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 보편성을 구성하는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등의 요소들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런 보편성 대신 전근대적인 중화주의와 집단주의로 그 보편적 가치를 대체한다.

중국이 세계 패권을 쥐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는 중국에게는 근현대사의 굴욕을 해소하는 숙원일지 모르지만 중국을 제외한 전세계 모든 국가와 인민에게는 말 그대로 재앙일 수밖에 없다. 인류 역사의 보편성에서 일탈한 가치관이 전세계의 패권을 장악한다고 생각해보자. 거기에서 파생되는 비극과 문제점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신장과 티베트에서 저질러지는 소름끼치는 인권 유린이 일상화되고 생활의 당연한 기준이 되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중국이 금순공정(金盾工程, Golden shield project)이라는 이름으로 자국민에 대해 어마어마한 정보 통제를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렇게 정보 유통이 제약되는 사회에서 정보화란 빛좋은 개살구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회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달성할 수 없다. 그 사회의 물질적 성취 역시 일시적인 결과에 머물 수밖에 없다. 물질적 성취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요구되는 시점에서는 반드시 그 한계가 노정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얼핏 잔인한 정글의 법칙이 관철되는 과정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시스템이 관철되는 과정이다. 대다수 세계 인민이 원하지 않는 시스템이 패권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

중국이 설혹 반도체 굴기에 성공하고 첨단 AI에서 미국을 압도적으로 따돌린다 해도 그게 중국이 간구하는 중국몽의 실현을 이룰 수는 없다. 중국에는 인권도 자유도 법치도 없기 때문이다. 근대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사유재산 제도와 기업, 시장 자유, 삼권분립, 법치, 개인, 계약, 인권, 자유 등이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엮여서 작동한다. 저 가운데 어느 한 가지 요소만 결여되어도 그것은 근대화가 아니다. 그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어느 구석에선가 반드시 덜컹대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중국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중국인들에게는 참된 명예가 없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르고 어마어마한 학식을 쌓아올려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개인도 인권도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노예인 것이다. 로마 공화정 초창기에 로마 원로원을 찾은 외국인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왕처럼 보였다”는 기록을 남긴 것과 대조적이다. 로마는 초기부터 시민들의 공동체였다. 그래서 개인이 존재할 수 있었다. 원로원 의원들은 모두가 자유로운 시민의 대표였고 그래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왕과 같은 존엄과 자유의 분위기를 풍겼으리라고 짐작한다.

중국인은 다르다. 중국인 가운데 시진핑 이상의 권력자가 등장한다 해도 그는 노예 가운데 노예들의 방식으로 뽑힌 노예들의 대표일 뿐이다. 노예들은 결코 고급 지식사회도 첨단 지능형 사회도 만들어낼 수 없다. 자유도 인권도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존엄성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나 첨단 AI가 가소롭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런 걸 보통 개 발의 편자라고 부른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前 국민의힘 광주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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