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과거 9·19공동성명, 10·4 남북정상선언 등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 파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 후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한 안전보장 제공'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과거 핵 폐기를 조건으로 벌여온 협상을 여러차례 뒤집은 전력(前歷)이 있어 이번 회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북핵폐기로 이어질지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남북은 1992년 고위급회담을 통해 화해와 공존, 통일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채택했으며, 핵무기의 시험·제조·사용 등을 금지,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해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대한 상호 사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며 그해 5월 중거리 탄도 미사일 ‘노동1호’ 시험 발사했다. 이 후에도 북한은 대포동 1호 발사(1998년), 북, NPT 탈퇴 재선언(2003년)하는 등 지속적으로 핵·미사일을 개발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고 약속하며 ‘9.19 공동성명’을 선언했다.

‘9.19 공동성명’은 제4차 6자 회담 중 2005년 9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 IAEA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협정, 단계적 비핵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 약속, 북미 간의 신뢰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선언이다.

하지만 북한은 1년 채 되지 않아 북, 대포동 2호 미사일을 시험발사 했으며,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이후 2007년 2월에도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사찰 수용한다는 내용의 ‘2.13합의’를 도출했으며, 10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평양을 직접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개최, ‘남북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에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원자로 냉각탑 폭파를 하는 등 약속을 이행하는 듯 보였지만 냉각탑 폭파에도 불구하고 당시 문제가 됐던 5㎿ 원자로가 불가역적으로 불능화되거나 폐기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쇼’로 끝나고 말았다. 실제 북한은 냉각탑 폭파 이후 냉각탑 없이도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또한 북한은 장거리 로켓 시험 발사(2009년 4월), 2차 핵실험(2009년 5월) 강행했다.

2012년에도 북한은 미국과 미북 '2·29 합의'를 도출했으나, 2개월도 지나지 않아 북한은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시험 발사했으며 1년 후에는 제3차 핵실험으로 전세계를 위협했다.

북한은 이후에도 ‘쇼’로 끝났던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했으며, 3차 핵실험 이후 3번의 핵실험을 더해 6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또한 끊임없는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남북뿐 아니라 전세계와의 관계를 스스로 악화시켰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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