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모든 것을 혁신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출범시킨 ‘혁신위원회체제’가 출발부터 ‘기득권 옹호’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 이 대표가 혁신위원장으로 지명한 한국외대 김은경(58)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 대표에 의한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된 당일인 지난 15일 ‘돈 봉투 사건 옹호 발언’을 하자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 ‘비명계’ 인사들도 비판 대열에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새로 임명한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혁신 비전' 대신 기득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채널 캡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새로 임명한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혁신 비전' 대신 기득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진=채널 캡처]

김은경 교수는 이 대표의 두 번째 혁신위원장 카드이다.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은 지난 5일 지명된 지 9시간여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과거에 ‘천안함 피격’ 사건을 ‘천안함 자폭’이라고 SNS에 수차례 올린 사실이 다수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비판 여론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천안함 자폭’ 발언 이래경 후속 카드인 김은경 민주당 혁신위원장, 출발부터 ‘기득권 옹호’ 논란 휩쓸려

이래경 이사장의 혁신위원장 사퇴과정에서 민주당 내의 비판도 불거졌다. “X인지 된장인지 알아보고 천거를 했어야 하는데 그런 필터링이 전혀 없었다”는 목소리가 당 내에서 흘러나왔다. 최고위원들도 이래경 위원장 임명 사실을 하루 전에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잡음도 일었다.

친명계 인사인 이래경 이사장에 대한 ‘ 부실 인사 검증’이 화근이 됐던 셈이다. 일반 기자들이 지명 사실 발표 서너 시간 만에 검색 등을 통해 이래경의 과거 문제 발언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민주당이 이 이사장의 문제 발언을 인지하고도 눈을 감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만큼 후속 카드는 무난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이 대표는 김은경 교수를 낙점했다.

김 교수는 조기 낙마한 이 이사장에 비해 정치색이 옅은 인물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 인사들의 추천을 받은 개혁성향 인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법·보험법 전문가인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금감원 부원장(금융소비자보호처장)에 임명돼 지난 3월까지 재직했었다. 지난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가 이끌던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당무감사위원으로 활동한 게 현실 정치 경력의 전부이다.

하지만 김은경 혁신위원장은 임명 직후인 지난 1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설화를 자초했다. 혁신위원장의 역할과는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각종 사법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를 정점으로 한 ‘돈봉투 의혹’, 무소속 김남국 의원의 부적절한 코인투자 논란 등으로 총체적 도덕성 위기에 빠져있는 상태이다. 혁신위원장은 그러한 도덕성 위기를 돌파해나갈 혁신 어젠다를 설정하고 실천해야 하는 자리이다.

김은경 위원장의 돈봉투 관련 발언, ‘개혁적 원칙주의자’라는 민주당 대변인의 설명이 ‘거짓말’임을 웅변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은 공식활동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혁신 비전’ 대신에 ‘기득권 옹호 목소리’를 냈다.

돈봉투 의혹의 당사지인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17일 집회에서 '검사 탄핵'을 강력히 요청했다. [사진=채널A 캡처]
돈봉투 의혹의 당사지인 송영길 전 대표는 지난 17일 집회에서 '검사 탄핵'을 강력히 요청했다. [사진=채널A 캡처]

경향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지만 (불체포특권이) 헌법상의 권리인 것은 맞다”면서 “돈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된 방탄국회 행태에 대해서 ‘헌법상 권리’라고 사실상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15일 김 위원장 인선 배경으로 “원칙주의자적인 개혁 성향의 인물”이고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금융 약자들의 편에서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신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개혁적 원칙주의자’라는 브랜드를 홍보한 것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돈봉투 관련 발언은 ‘개혁적 원칙주의자’라는 설명이 거짓말임을 웅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상민 의원, “민심의 눈높이와 상당한 괴리...만들어질 수 있다는 건 검찰이 조작했다는 거죠”

특히 돈봉투 의혹이 ‘검찰 기획’이라는 발언은 일종의 자해행위로 평가된다. 혁신위가 출범하기도 전에 스스로 치명타를 입은 셈이다. 송 전 대표측이 전당대회에서 살포한 금액은 큰 액수라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돈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치공작의 일환이라는 식으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

거대 야당 전당대회에서 수천만원 정도의 밥값은 살포할 수 있다는 정치권 내부의 인식은 일반 국민들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검찰 기획’이라는 인식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가 사실이라고 해도 정치권 관행이므로 큰 죄가 되지 않는다는 편견이 깔려있는 개념이다. 거대 야당의 혁신위원장으로 지명된 인물이 처음부터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만들어진 사건’일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일반 국민 눈높이를 외면한 채 정치권의 인식을 토로하는 주장인 것이다.

민주당 비명계로 꼽히는 이상민 의원은 16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민심의 눈높이 기준하고 상당히 괴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유보하는 건 몰라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검찰이 조작했다는 거죠.”라고 꼬집었다.

혁신위 출범과 맞물려 돈봉투 의혹 당사자들 활동 재개...송영길, ‘검찰 탄핵’ 강력 요청

돈봉투 의혹의 당사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공개 활동을 재개하고 있는 것도 혁신위체제를 무력화시키는 현상들로 꼽힌다.

송영길 전 대표는 17일 서울 시청 앞에서 진보단체가 주최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참석, “이번에야말로 우리 민주당의 힘으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검사들을 탄핵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면서 돈 봉투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에 대한 적반하장식 공격에 나섰다.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부결돼 구속위기에서 벗어난 게 된 윤관석, 이성만 의원도 지역구 활동 모습을 SNS에 공개했다.

현재 '송영길 검찰 탄핵'으로 검색한 영상 중에서, 위 왼쪽 동영상을 클릭하면 아래처럼 비공개 동영상으로 확인된다. [사진=네이버 캡처]
현재 '송영길 검찰탄핵'으로 검색한 영상 중에서, 위 왼쪽 동영상을 클릭하면 아래처럼 비공개 동영상으로 확인된다. [사진=네이버 캡처]

특히 송 전 대표가 검사 탄핵을 주장한 것은 심각한 적반하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이 연루된 돈봉투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을 정치적으로 탄압하겠다는 주장을 공식석상에서 펴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혁신위, 돈봉투 의혹 사건에 대해 기득권 옹호 전략 선택할까?

따라서 민주당 지도부의 공언과는 달리 혁신위가 출발부터 산으로 올가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 영입에 대해 “혁신기구가 우리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도록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밝혔다. 장경태 최고위원도 BBS 라디오에 출연해 “혁신기구는 기득권 타파, 대표성 확대, 정치윤리 강화, 당내 민주주의 강화 등 크게 네 가지의 목표로 활동한다”면서 “(김 위원장이) 아마 네 가지 부분을 잘 조화롭게 고민하시고 논의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고 말했다.

구체적 의제로는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코인 의혹' 등 민주당 악재에 따른 도덕성 회복 그리고 총선 승리를 위한 공천룰 등 당내 제도 정비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송 전 대표의 행보를 감안할 때, 돈봉투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오히려 ‘검찰 조작’이라고 역공을 취하는 기득권 옹호 전략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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