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 수사하는 검찰, '좌편향'으로 쏠리는 사법부
“재판이 곧 정치” 현실화되나
"정치 보복으로 한국의 법치 무너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적폐청산’을 제1 국정 과제로 삼으면서, 검찰과 법원의 정치 중립성이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남발하는 사이, 사법부도 한쪽으로 쏠리는 듯한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다.

윤석렬 중앙지검장
윤석렬 중앙지검장

문 정권이 집권 9일 만에 윤석렬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임명한 것부터 잡음이 일었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는 정권이 바뀐 뒤 평검사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했다. 이영렬 전 지검장이 ‘돈 봉투 만찬’ 의혹으로 사퇴한지 하루만이다.

청와대가 직접 서울중앙지검장 인선을 브리핑하면서 위법 논란을 샀다. 보통은 검찰이 브리핑을 맡는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법무부장관의 제청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청법 제 34조 1항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윤 지검장 인선 당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은 모두 공석 상태였다.

현직 검사가 나서서 위법성 의혹을 제기했다. 이완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사법연수원 23기)이 검찰 내부 전산망인 ‘이프로스’에 문제를 제기했다. 윤 지검장 임명이 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는지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윤석열 지검장은 그 자체로 검찰 정치화의 상징이 됐다.

● ‘구속, 한다면 한다’, 막나가는 검찰…수사 저질화

검찰 내 핵심 보직에 윤석열 지검장이 앉은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적폐청산’이라는 정치 구호가 공공연히 울려 퍼졌다. 전체 검사 247명 중 87명(35%)가 이 수사에 투입됐다. 검찰이 문재인 정권이 약속한 적폐청산 공약을 실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의 무리한 구속 수사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거물급’ 인사들 십여명이 수감돼 있다. 박영수 특검부터 산입하면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람이 50여명에 달한다.

우병우 전 청와대 수석에게는 특검의 영장을 포함해 3번이나 구속 영장이 청구했다. ‘무쇠 방패’라는 별명을 얻은 우 수석도 결국 구속됐다. 검찰이 기각된 영장을 3번이나 연거푸 신청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단순히 많은 사람을 구속 수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검찰을 비난할 순 없다. 그러나 ‘도주 및 증거인멸 우려’라는 영장 청구의 기본원칙을 고려하면 검찰의 구속영장 남발이 무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반대 사례가 한명숙 전 총리다.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 받은 한 전 총리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 한 전 총리가 정치권 원로인 점 등이 불구속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

검찰 관계자는 “구속하면 영웅, 불구속하면 적폐로 매도하는 여론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며 “이런 식의 수사는 검찰 개혁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좌파 성향 판사모임 출신, 요직에 대거 등용…‘쏠리는’ 사법부

검찰이 정치 사건 수사에 열을 올리는 사이 사법부도 한쪽으로 내달렸다. ‘개혁’ 성향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전신격인 우리법연구회 출신 판사들이 사법부 요직에 대거 진출하면서다.

최근 요직에 간 판사들 중 이들 단체 출신이 아닌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법원 내부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주체가 이들 단체로 넘어갔다는 평이 나온다.

김명수 대법원장
김명수 대법원장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부터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모두 지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법원행정처를 첫 ‘물갈이’ 대상으로 삼았다. 대법원이 인사총괄심의관에 임명한 김영훈(사법연수원 30기) 서울고법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법무부 최초로 비검찰 출신 법무실장에 임명된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사법연수원 23기)도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인 6‧29 선언 이후 만들어졌다. 당시 사법부 수뇌부가 유임되자 그에 반대한 서울지법 소장 판사들이 모여 만들었다. 이후 2010년 ‘법원 내 하나회’라는 논란 끝에 해체됐지만, 다음해인 2011년 우리법연구회 멤버들을 중심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다시 조직됐다.

● 현직 판사, “재판이 곧 정치다” 주장…잦아지는 ‘정치 판사’ 논란

문제는 이들 단체의 ‘좌편향성’에 대한 의구심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한 현직 판사는 지난해 8월, “재판이 곧 정치”라는 요지의 주장을 펼쳐 큰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9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는 "국민에게 심려 끼쳐 드린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국회 청문회에 참석한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는 "국민에게 심려 끼쳐 드린 점을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존경할 만하게 보이는 훌륭한 법관이라 하더라도 정치혐오, 무관심 속에 안주하는 한계를 보인다면 진정으로 훌륭하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 오현석 인천지방법원판사(35기)가 그 주인공이다. ‘파격적’인 주장에 법원 내부가 발칵 뒤집어졌다.

오 판사의 주장은 좌우를 막론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뭇매를 맞았다. 현재 사법부를 이끄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후보 시절 “대법원 판례와 다른 ‘튀는 판결’을 내린 법관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며 그를 비호했다.

덕분에 논란은 일단락 됐지만, 사법부의 정치화 우려는 심화하고 있다. 법원의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행보가 점차 대담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이 SNS를 통해 쏟아내는 정치 발언들은 반복적으로 논란이 된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류영재 판사(사법연수원 40기)는 대표적인 SNS 활동파 판사다. 그는 대통령 선거 바로 다음날 페이스북에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들입니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에 불을 지폈다. 류 판사는 논란 이후에도 ‘친구 공개’로 페이스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차성안 전주지방법원 판사(40·사법연수원 35기)도 지난해 7월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관심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에 중심에 섰다.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글이 올라오기 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를 거부한 바 있다. 이에 현직 판사인 차 판사가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법원도 ‘충격’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차 판사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대법원은 SNS 사용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권고의견 제7호’ 규정을 두고 있지만, 구속력을 발휘하진 못하고 있다.

● ‘놀라운 의리’의 헌법재판소…여론 재판 ‘딱지’ 언제 떼나

사법부의 또 다른 축인 헌법재판소도 상황은 비슷하다.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이후 ‘여론재판’이라는 딱지조차 채 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9일 김이수 헌재소장 카드를 내밀었다. 김 재판관은 개혁 성향의 인사 가운데서도 ‘강성’으로 분류된다. 그는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때 9명의 헌법재판관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김 재판관은 예상대로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했다.

헌법재판소와 청와대는 그러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헌재는 국회의 부결 결정 이후에도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고, 청와대는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헌법재판소법 제12조가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명시했음도 소장을 셀프 임명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리가 놀랍다”며 “높은 지지율에 기댄 무리수”라는 반응이 나왔다. 문 정권 코드에 맞는 인사를 헌재소장에 앉히기 위한 무리수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으로 갈린 민심을 봉합하는 데 실패한 헌재가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좌편향 논란으로 다시 한 번 타격을 입은 셈이다.

● “검찰과 법원이 정상이 아니다”…무너지는 법치주의

문재인 정권이 ‘적폐 청산’의 축포를 쏘아대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법원과 검찰이 정상이 아니다’는 신음이 커지고 있다. 형식적 법치만 남고, 실질적 법치는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계속되는 문 정권의 적폐 청산에 대해 ‘신중론’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권도 문 정권의 적폐청산이 사실상 ‘정치 보복’ 아니냐는 지적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일 정세균 국회의장은 국회사무처 시무식에서 “적폐청산을 그렇게 시끄럽게 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조용하게 하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문희상 의원도 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적청산에만 급급하고 제도적 보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 “국민이 피로감을 느끼게 되면 개혁과 혁신의 동력을 잃게 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발간한 자서전 ‘운명’에서 “그때 대통령과 우리는 검찰 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고 적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대통령직에 오른 뒤에는 “최악의 정치 검찰”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