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물량 부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접종에 쓰이는 주사기까지 말썽이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건의 원인은 딱 한 가지다. 정부가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관련된 분야에는 극도로 예산을 아끼기 때문이다. 재난지원금으로는 수십조 원을 쓰면서 백신과 질 좋은 주사기 구매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소 잔여형(LDS)’ 주사기에서 이물질 발견돼 70만개 수거 중

보건당국은 코로나 백신 접종에 쓰이고 있는 '최소 잔여형(LDS)' 주사기에서 섬유질처럼 보이는 이물이 발견됐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접종 현장에서 주사기 70만개를 수거 중이다.

17일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주사기 내에서 이물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와 LDS 주사기 제조사에서 선제적으로 수거 조치 중"이라며 "이번 주까지 주사기 70만개를 수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거 예정 물량 가운데 63만개는 전날까지 수거가 완료된 상태라고 질병청은 전했다.

LDS(Low Dead Space) 주사기는 버려지는 백신을 최소화하기 위해 피스톤과 바늘 사이의 공간이 거의 없도록 제작된 특수 주사기로 국내 업체들이 개발했다. 이 주사기를 사용하면 코로나19 백신 1병당 접종인원을 1∼2명 늘리는 수 있어 주목받았다.

문 대통령이 격찬한 풍림파마텍의 10분 1 가격인 ‘불량 주사기’ 쓰다가 낭패 봐

이 주사기는 당초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장관 재직 시절, 삼성의 도움으로 풍림파마텍을 스마트공장화 하면서 개발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풍림파마텍을 방문하면서까지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정부는 당시 풍림파마텍과 계약하지 않고, 두원메디텍과 신아양행이라는 두 업체와 주사기 공급 계약을 맺어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계약과 관련된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 펜앤드마이크는 방역당국 계약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그는 “조달 등록된 업체를 대상으로 정식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이 지원한 풍림파마텍과 계약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LDS 주사기는 두원메디텍 제품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가 납품한 주사기 가운데 50만개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에 이미 쓰였다.

풍림파마텍의 주사기와 계약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가격 요인’이 거론된다. 수출을 주로 하는 풍림파마텍의 주사기는 1개당 800~1000원 수준인 반면, 두원메디텍과 신아양행 제품은 1개당 88~98원 정도여서 10분의 1 가격에 불과하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풍림파마텍 제품은 비싸서 국내 접종에는 사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불량 주사기’를 공급했던 두원메디텍은 현재 주사기 생산을 중단하고 생산 설비를 바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 관계자는 “접종 초기 정부에서 빨리 생산하라고 재촉하다 보니 직원들은 밤낮없이 2교대로 작업을 해야 했다”며 “그러다 보니 하자도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이물질 주사기 생산한 업체에서 2750만개 납품받을 예정...정부는 불량원인 파악도 안해

질병청은 오는 7월 말까지 두원메디텍에서 2750만개, 신아양행에서 1250만개 등 LDS 주사기 총 4천만개를 납품받기로 계약했으며, 현재 두 회사의 주사기가 코로나 백신 예방접종에 쓰이고 있다. 두원메디텍은 지금까지 300만개를 생산해 120만개를 전국에 공급했다. 120만개 중 50만개는 이미 사용됐고, 정부는 남은 70만개를 대상으로 사용중지 조치후 회수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질병청은 주사기 이물과 관련된 '이상 반응'은 보고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접종 전에 주사기로 주사약을 뽑는 과정에서 간호사들이 육안으로 이물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물이 든 백신을 접종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며 "제조소를 점검하고 문제를 시정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권오상 식약처 의료기기안전국장은 “이물질 성분을 분석한 결과 제조소 작업자의 복장에서 떨어져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 섬유질이었다”며 “물질 자체의 위해성도 낮고, 백신에 혼입돼서 주사기의 얇은 바늘을 뚫고 인체에 침투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두원메디텍은 주사기 품질을 개선한 후 수거한 물량만큼을 정부에 다시 재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식 조달 과정을 거친 업체라고 하지만, 제품 검수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원인 파악은 물론이고 명백한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재공급은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방역당국의 백신 부족 사태도 결국 ‘예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예산 아끼려고 화이자 측의 대량 백신구매 제안도 거절?

지난 8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월 화이자 측과 300만 명분의 코로나 백신 추가 물량을 계약할 당시 “백신을 더 많이 사면 더 많은 물량을 조기에 공급할 수 있다”는 화이자 측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물량을 더 구하지 않은 건 명백한 실책”이라고 했다.

당시 정부는 화이자 측과의 추가 계약을 공식 발표하면서도 300만 명분만 확보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는 않았다. 질병청 관계자는 “백신 계약상의 논의 과정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라고만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량을 더 확보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건 명백한 실책”이라며 “물량 확보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의료계 전문가들은 “여러 리스크를 감안해 정부 예산을 아끼지 말고 인구의 2~3배 수준으로 백신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1월 국회 긴급 현안 질의에서 “5600만 명분이면 부족하지 않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며 “성공한 백신을 제때, 필요한 양만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7900만 명분까지 확보 물량이 늘어났지만, 확보한 백신들의 공급 시기가 여전히 불투명해 ‘소극적인 태도’는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실정이다.

‘충분한’ 백신 구매 자랑했던 문 대통령, 구매 책임은 질병관리청장에게 떠넘겨

이렇게 방역당국이 백신을 확보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것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백신 구매를 담당했던 실무자에게 책임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감사원 감사를 통해 복지부에서만 9명의 공무원이 징계를 받았다. 이 중 8명은 사태 초기부터 감염병 차단을 위해 애썼던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직원이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도 당시 질병예방센터장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섰지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번 코로나19 백신 확보과정에서도 고위 정책결정자가 ‘선 구매 계약금을 날려도 좋으니 공격적으로 확보하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나서서 백신 계약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정세균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베팅’할 것을 지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총괄반장은 지난해 연말 브리핑에서 ‘백신 구매와 도입의 최종결정권자가 누구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질병관리청장이 백신 구매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가 질병청으로 책임을 미루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부분이다.

당시 보건의료계 관계자는 “질병청 독립 후 만들어진 감염병예방법에는 복지부 장관이 질병청장의 대다수 권한을 함께 갖도록 돼 있다”며 “질병청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고 책임만 지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국무총리가 직접 책임을 지고 구매를 독려했다면, 이렇게 심각한 백신 부족 사태를 초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지적했다.

위에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실무자가 백신 구매의 부담을 오롯이 떠안는 구조에서는 (혹시 모를 감사를 피하기 위해) 보수적, 안정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이다. 구매 비용을 날릴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에서 백신 구매를 서두르지 않은 실무자들의 태도는 ‘2%대 수준의 백신 접종률’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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