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조두순보다 높은 형량...김세윤 판사, 檢주장 대부분 수용
박 前대통령 챙긴 돈 한 푼도 없는데 '260억 뇌물죄' 인정
"유죄 예단하고 끼워맞추기式 판결 아닌가' 비판도
선고장면 첫 생방송...'공개적 인민재판' 논란
재판부 안 믿는 박 前대통령 선고공판 불출석

(왼쪽)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세윤 부장판사

뇌물 및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재판에서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 넘겨진 지 354일 만, 파면된 지는 393일 만이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18개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18개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을 열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통령 지위를 남용해 기업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앞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판결문 주문에는 '벌금을 납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3년 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세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에게 선고한 징역 24년의 형량은 국가 전복을 시도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보다 훨씬 높다. 이석기는 1심에서 내란음모,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는 내란선동죄만 인정돼 형량이 9년으로 줄었다. 또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의 형량 징역 12년의 두 배다.

재판은 박 전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아 ‘궐석 재판’으로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구치소를 통해 재판부에 공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박 전대통령은 구치소에서 대기하다 재판이 끝난 뒤 판결문을 받아들었다.

●1심 재판부 “대통령 지위를 남용해 기업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 주장

박 전 대통령의 ‘뇌물 및 직권남용’ 혐의는 지난 2016년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주도해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제기됐다. 여기에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보도가 잇따르며 대통령 탄핵 사태로 비화했다. 최씨는 지난 2월 14일 열린 1심 판결에서 징역 20년형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받는 주요 혐의는 ▲대기업으로부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774원을 강제 모금한 혐의 ▲현대차그룹, 포스코, KT 등을 상대로 최씨와 그 측근에게 사업권 또는 후원을 제공하도록 강요한 혐의 ▲삼성그룹에 정유라씨 승마지원 및 한국동계스포츠센터 후원 요구한 혐의 ▲롯데‧SK 그룹에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을 압박한 혐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문화에술인 지원 배제를 지시한 혐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혐의 등이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재판을 동시에 맡은 형사 22부는 총 18개 혐의 중 16개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미르‧K재단 출연(직권남용‧강요) ▲롯데에 70억 요구(제3자뇌물) ▲포스코 펜싱팀 창단‧계약(직권남용‧강요) ▲KT 광고대행사 선정(강요) ▲삼성의 영재센터 지원(직권남용‧강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직권남용) 등 혐의에 대해 유죄라고 선고했다.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사실상 '한 몸'으로 보고 박 전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정점에 있는 최종 책임자'로 규정해 공범인 최씨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씨와의 공모관계' 인정이 박 전 대통령 '중형'의 배경이 됐다는 지적인다. 재판부는 따라 재단 출연이나 삼성 관련 정유라 씨의 승마지원 등 유죄로 인정되 최씨의 혐의를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대로 인정했다.

법원은 탄핵 사건의 발단이 된 대기업의 미르‧K재단 출연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안종범 전 수석 등에게 지시해 기업들에게 돈을 내도록 요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미르‧K재단 설립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안 전 수석의 진술이나 안종범 수첩에는 지시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며 “비록 명시적인 협박은 하지 않아도, 불이익에 대한 불안감을 일으킨 것으로 보기 충분해 강요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 승계현안 관련 명시적‧묵시적 청탁’ 여부에 대해서는 “인정이 안 된다”며 제3자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2심 판결 결과와 일치하는 부분이다. 법원은 “이미 해결된 현안이거나 시기적으로 아주 다급한 현안이 아닌 점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면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부회장의 판결과 마찬가지로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36억원 상당의 코어스포츠 용역 계약은 뇌물죄로 인정했다.

●국회는 언론 기사로 탄핵하고, 법원은 정황 증거로 유죄 확정했다

법조계는 재판부의 판결문이 ‘검찰의 공소장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을 들어보면 재판부가 ‘유죄이기 때문에 유죄이다’고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며 “국회는 언론 기사로 탄핵을 확정하더니, 법원은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를 확정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은 법리적으로 판단을 하는 의미조차 없다”고 일축하며 “최씨와의 공모를 기반으로 ‘유죄’를 확정했는데 공모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긴 돈이 한 푼도 없는 데도 삼성의 뇌물죄를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법리상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삼성이 정유라씨에게 36억원에 해당하는 승마 용역 등을 제공한 것이 뇌물이라는 것은 정씨를 박근혜 딸로 봐야 가능한 논리라는 것이다.

시민들은 오히려 “충분히 예상한 선고 결과”라며 “오히려 예상보다 형량이 적다”는 반응까지 나왔다. 이날 재판을 지켜본 한 시민은 “어차피 저녁 뉴스 시간에 온 국민이 알게되는 재판을 공개한다고 했을 때부터 예상했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도 “오늘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라며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 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평했다. 전 의원은 재판부가 재판을 생중계한 것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을 스포츠 중계하듯 생중계한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인민재판’ 논란 속 생중계 방송…재판 절차도 도마 위에

한편 재판부는 이날 재판 모습을 방송으로 생중계했다. 법원의 4대의 고정 카메라를 이용해 영상을 촬영하고, 지상파 3사 방송사 등을 통해 이를 생중계하는 방식을 취했다. 앞서 김세윤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이 자필로 ‘생중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중계 방송 허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재판은 '인민재판' 우려를 받으며 시작하게 됐다. 법원이 ‘창피주기 식’ 재판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의 방청권 추첨에 당첨된 시민들 30여명은 이날 재판이 시작되자 재판부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방청을 거부하고 퇴실하기도 했다. 이들은 재판정을 떠나며 “이건 법적 재판이 아니라 인민재판”이라고 주장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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