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2건 보도서 "국책연구소·정부 유관단체 홍보성 활동 요구만"
前 세종연구원 국립외교원 소속원, '탈북 1호 박사' 안찬일 피해사례
"태영호 前 영국주재 북한공사 활동 중단" "오청성 완치 회견 없어"
靑, 실장 주재 회의서 중앙 보도 대응논의後 "팩트 잘못…법적대응"
앞서 日아사히신문 등 "오보 따른 조치" 예고했으나 제소사례 '0'
'블랙리스트' 거론에 "리스트 만들어 제한했단 식 표현을…" 발끈

문재인 정부가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에 비판적 전문가들에게 부당한 간섭, 압력을 넣어 '전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는 내용의 4일 중앙일보 보도에 청와대가 강력히 반박했다.

당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현안점검회의에서 해당 보도 향후 처리방침이 논의됐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잘못된 언론보도를 바로잡는, 모든 것을 포함한 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즉각 경고에 나섰다. 보도와 관련 "팩트가 틀렸다"면서도 제시된 팩트에 대한 논박보다는 '블랙리스트'라는 표현에 문제 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앞서 중앙일보는 4일 오전 "문 코드 압박에 외교안보 박사들 짐싼다", "대북정책 비판 목소리 막나…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라는 제목의 통일북한전문기자 기사를 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안보 관련 연구기관과 박사·전문가 그룹이 '코드 몸살'을 앓고 있다"며 "국책 연구소나 정부 입김이 센 기관·단체를 중심으로 (정부·북한) 비판 자제와 홍보성 기고·방송출연 등 주문이 쏟아지기 때문"이라고 폭로했다. 

특히 이달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내달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와 외교안보라인 정부부처가 노골적 간섭에 나섰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기관 박사는 "과거 정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신문에 말했다.

기관 차원으로는 "(정찰총국장때 천안함 폭침을 주도한)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 방한으로 논란이 일었던 지난 2월 하순 국책 연구기관과 국책 TV방송에는 '천안함을 언급 말라'는 지침이 내려졌다"고 신문은 밝혔다. 언론 기고에 대한 사전 검토와 모니터링도 이뤄졌다고 한다.

중앙일보는 그 예로 "대표적 지한파(支韓派) 학자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박사가 지난달 하순 1년여 몸담았던 세종연구소를 떠났다. 세종-LS 객원연구위원으로 초빙받아 연구와 활발한 기고·강연 활동을 해 온 그가 갑자기 짐을 싼 건 뜻밖"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세종연구소 핵심 관계자를 인용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 밎 외교안보정책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였다는 이유로 연구소 측에 청와대 등으로부터 압박이 심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국책 연구기관장 출신 전문가는 "스트라우브가 한미동맹 균열을 의미하는 '디커플링'이라는 용어를 쓰고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속고 있다'는 경고를 자주 한 게 눈 밖에 난 이유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스트라우브 박사 해임은 '노무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백종천 전 안보실장이 지난 2월 세종연구소 이사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뤄진 일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또 국책 연구기관인 국립외교원의 S 박사(익명)가 최근 사표를 냈다며 "지난 1월 JTBC 토론 프로에 출연했던 게 화근"이라고 짚었다. 청와대와 외교부 측에서 발언 내용뿐만 아니라 '왜 토론자 배치 때 야당 쪽에 앉았냐'고 문제삼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팀장 보직은 내정 사흘 만에 없던 일이 됐고 '외부 활동을 금지하겠다'는 압박을 받자 S 박사는 민간 연구소로의 전직을 결심했다고 한다.

지난 2월말 국방연구원을 퇴직한 정상돈 박사도, 퇴직에 앞서 "신문에 기고하려던 원고를 문제삼은 고위 인사가 '정부 정책에 맞춰야 한다. 왜 눈치가 없냐'며 직접 붉은 펜으로 껄끄러운 대목 3곳을 삭제해 버렸다"고 신문에 토로했다. 

또 신문에 따르면 '탈북 1호 박사'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종편에서 북한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그 여자"로 호칭했다가 한 달간 출연정지를 당했다. 안찬일 소장은 "탈북자 사회에선 블랙리스트보다 탈북자를 걸러내는 노스(north)리스트가 더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고 토로했다.

지난 2016년 7월 망명한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공사를 비롯해 관계기관의 보호를 받는 고위 탈북자들은 공개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는 정황이 함께 거론됐다. 지난해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탈북·망명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씨도 부상에서 완치됐지만 당국이 기자회견 계획을 잡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연구소는 1만 부 가까이 발행하던 월간 '북한' 발행 부수를 절반으로 줄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이 단체 구매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중지로 관련 업체가 고사 상태"라고 귀띔했다고 중앙일보는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오전 중앙일보 보도와 관련 정정 요청뿐 아니라 언론중재위원회 제소와 법적 대응까지 검토할 방침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해당 보도는 '문재인 정부발 블랙리스트' 표현까지 쓴 잘못된 기사다. 해당 언론사에 강한 유감"이라며 "철저한 팩트 체크를 거쳐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잘못된 언론 보도를 바로잡는 절차다. 즉각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언중위 제소나 법적 소송을 검토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모든 것을 포함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면서도, 이전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정정보도를 요구한 매체들에 대한 조치 진행 상황에 관해서는 "(청와대가 언론사를 대상으로) 아직 언론중재위나 소송까지 간 사례는 없다"고 했다.

청와대는 앞서 지난 2월19일 '지난해 11월부터 연말까지 남북 정부 당국자들이 두 차례 이상 평양에서 만나 평창올림픽 북한 참가를 논의했다'는 취지의 보도에 "손톱 만큼의 진실도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 "오보에 대한 합당한 조처도 뒤따를 것"이라고 압박한 바 있으나 정작 나서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그 언론은 정정문을 내기도 했다"는 단서만 달았다. 그는 "언론의 의견과 논조는 존중한다"면서도 "다만 팩트가 잘못된 내용으로 국정농단 축이었던 블랙리스트를 운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팩트가 틀린 것은 대응을 하고 있다"면서 "특히 블랙리스트란 것은 청와대든 정부든 '리스트를 만들어서 제한했다'는 취지의 의미가 들어있다. 함부로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유감"이라고 강조했다. 

'정권 수뇌부가 감시·간섭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에 블랙리스트라는 어휘가 쓰였지만, '정부가 특정 인사 리스트를 만들어 압박했다'고 해석될 수 있다며 법적 대응을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이날 청와대의 이런 동향을 후속 보도하면서도, 당초 보도 2건을 내리거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게재하고 있다.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