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중앙일보 인터뷰서 밝혀
조국 민정수석 "3일간 설명을 발의라고 착각…국무회의가 발의"
한국당 "靑 관련보도 부인않더니, 발의안 아닌걸 사흘간 설명했나?"

원로 헌법학자 허영(82) 경희대 석좌교수는 대통령 개헌안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실이 아닌 국무회의 중심으로 이뤄졌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제대로 된 헌법을 만들기 위해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투표를 한다’던 선거공약을 지킬 수 없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야당도 논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고 중앙일보가 22일 보도했다. 헌법 제89조는 헌법개정안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발의해 개헌한 건 군사독재 시대를 빼고는 없다”며 “현재 유일한 명분은 선거공약일 뿐 야당이 모두 반대해 국회를 통과할 여지도 없는데 발의한다는 건 그 자체를 (정치적) 목적으로 하는 국정 행위”라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또 “아직까지 헌법 개정안과 관련해 국무회의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며 “청와대에서 자문위원들을 위촉해 그 사람들이 만든 걸 가지고 발의하는 것은 발의 직전에 국무위원들이 심의한다고 해도 그건 ‘심사하고 논의’하는 게 아닌 결정된 사안에 거수기 노릇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왜 현행 헌법을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일종의 위헌”이라고 했다.

헌법 전문(前門)에 부마항쟁, 5·18, 6·10항쟁 이념을 명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헌법 전문은 역사성을 갖는다. 전문은 헌법 개정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을 손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헌법 총강에 수도 조항을 신설하고 그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수도를 법률에 위임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좋을 대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토지 공개념 관련 내용은 헌법에 넣은 사항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공무원 노동3권을 인정하기 위해선 헌법 7조부터 손대야 한다”며 “공무원이 노동3권을 갖기 때문에 근무시간에 이탈하고 국민에게 봉사를 안 한다면 어떻게 되나”고 반문했다.

생명권, 안전권 등 기본권을 무더기로 신설한 것과 관련해 그는 “생명권은 이미 헌법 제10조에 신체의 자유는 헌법 제12조 1항에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권은 “국가의 의무이며 그걸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정보기본권을 신설하는 것에 대해선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도 함께 규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는 “검찰의 영장청구권 규정을 헌법에서 삭제하는 것은 세계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라며 “핵심은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이며,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검찰총장인사위원회 같은 것을 만들고 헌법에 검찰총장의 임기를 명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무총리 선출 방식에 대해선 “현재 국무총리는 대통령비서실장만도 못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며 “미국처럼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정해구 위원장을 비롯해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구성원 중 헌법학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많고 국민의 의견을 듣는 과정도 부족했다”며 청와대 개헌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않았다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 개헌안을 발표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그는 “법무부 장관을 제쳐놓고 민정수석이 개정안을 설명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며 “조 수석이 무슨 자격으로 그런 걸 발표하나. 그 사람은 아무 레지티머시(Legitimacy·정당성)가 없다. 단지 대통령의 신임이 있을 뿐이다. 국회의원에 대해 책임지는 법무부 장관도 아니고 국민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아니다”고 했다.

조국 수석은 이날 춘추관에서 대통령 개헌안 3차 요지 발표를 마친 뒤 기자단과의 질의 응답 과정에서 '대통령 개헌안 마련과 심의 과정 일체를 청와대 비서실이 주도해온 것이 일종의 위헌'이라는 허 교수 지적에 대해 "3일간의 (청와대) 설명이 발의라고 착각한 게 아닌가 한다"며 "전혀 위헌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미 '발의 직전에 국무위원들이 심의한다고 해도 그건 심사하고 논의하는 게 아닌 결정된 사안에 거수기 노릇 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음에도 조 수석은 "발의는 국무회의에서 하고, 국무위원이 심의하게 될 것"이라는 논거를 들었다.

청와대 비서실의 개헌 주도와,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이 아닌 민정수석이 개헌안 발표까지 나설 명분이 없다는 지적에 관해서는 "개헌안은 국무총리도, 어느 누구도 아닌 '대통령의 개헌안'이다. 대통령의 의지와 국정철학, 헌법정신과 소신 등이 반영되는 것이라 대통령 보좌관·비서관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에 담는 건 권리 이전 의무이자 책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허 교수의 지적에 "주목한다"며 "헌법 89조 3항은 헌법개정안·국민투표안·조약안·법률안 및 대통령령안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분명하게 규정한다. 우리는 최근 살라미 전술을 통해 조 수석이 발표한 개헌안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쳤으면 현재와 같은 '겉은 오렌지색 속은 빨간색'인 자몽 헌법 개정안, 이토록 문제적인 좌파 헌법 개정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홍지만 대변인이 논평했었다.

이후 조 수석이 '설명을 발의라고 착각한 것'이라고 변명한 데 대해 한국당은 홍 대변인의 추가 논평에서 "살라미 방식으로 발표된 문 대통령 개헌안이 사실은 개헌안 발표가 아니라는 조 수석의 설명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두 가지 사항을 추궁했다.

하나는 "조 수석도 개헌안 설명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도 22일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서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보완설명 했다고 보도됐다"며 "무수한 보도가 문 대통령의 개헌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었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자들이 한결 같이 잘못 썼다는 뜻인가"라는 물음이다.

두 번째는 "조 수석의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청와대는 공식 개헌안이 아닌 것을 살라미 전술을 동원해 설명한 셈이다. 국무회의를 거치지도 않고 비서들이 모여 논의한 것을, 대통령 개헌안으로 오해가 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흘에 걸쳐 국민을 상대로 설명했다는 것인가. 그런 행동을 문 대통령은 방치했다는 것인가. 나라 전체가 비서실의 행동에 휘말렸다. 이를 비서실의 국정농단이라고 부른다면 뭐라 하겠는가"라는 지적이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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