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무덤 속 태종이 벌떡 일어날 '문재인 태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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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5.19 10:20:58
  • 최종수정 2020.05.19 17:40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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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내내 코미디 업계를 주도했던 미통당이 주춤하자 이번에는 민주당이 국민들을 웃겨주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의 콘셉트는 ‘역사 인물 초빙 개그’다. 성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조광조를 조국에, 윤임을 윤석렬에 같다 붙이더니 이번에는 태종이 등장했다. 이광재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 태종”같다고 했다. 듣는 사람들, 약간 공황 상태다. 왕을 갖다 붙여야 한다면 인조나 중종인데 난데없이 태종이라니. 뭐, 아주 틀린 설명은 아니다. ‘기존 질서를 해체’한 거 맞다. 앨리스도 아닌데 전 국민을 ‘이상한 나라’로 데려왔으니까. ‘새롭게 과제를 만드는’이라는 말도 불필요한 과제를 꾸준히 만들어 내신다는 점에서 대략 들어맞는다. 그렇다고 그게 태종은 절대 아니다. 태종은 긍정적인 면에서 해체와 새로운 과제였고 문재인 대통령은 부정적인 면에서만 해체와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라면 나랏돈을 대하는 자세다. 태종은 재정확보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을 날리는데 환장을 한 사람이다. 절대 포개질 수가 없다. 굳이 찾자면 태종에 어울리는 인물은 박정희다. 태종 시대 조선의 틀이 완성됐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박정희가 기획하고 만든 나라다. 치적에서 태종에 버금갈 대통령이 박정희 말고는 없고 박정희와 맞먹을 임금 역시 태종 하나다. 두 사람은 심지어 유언도 닮았다. 태종은 내 칼에 모든 피를 묻히고 갈 테니 너는 이 나라를 높이 세우라며 세종에게 성군의 영광을 양보했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고 했다. 기꺼이 오욕을 감수하고 다음 세대의 행복을 기원했다는 점에서 둘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태종의 공통점은 따로 있다. 태종은 처갓집을 토벌하고 사돈댁을 초토화시켰다. 다음 번 임금을 위협하거나 향후 그럴 여지가 있는 세력의 싹을 모조리 잘랐다. 태종이 미래를 가격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를 도륙했다. 적폐 청산 놀이를 하면서 전직 대통령 둘을 감옥에 보냈으며 이전 정권과 관련된 사람들을 죄다 부패와 파렴치한으로 몰아 감옥에 처넣거나 하는 거 봐서 처넣겠다고 협박 중이다. 청산이 어느 정도 끝나자 이제는 공수처를 만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를 제도적으로 틀어막을 기세니 섬멸의 정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태종을 압도적으로 압도한다. 인정!

2020 대한민국을 조선시대에 겹쳐 보니

태종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조선과 대한민국은 묘하게 겹치는 데가 있다. 조선 500년을 셋으로 쪼개면 훈구파가 해먹은 100년에 사림이 해먹은 350년 그리고 그 중간에 훈구가 사림을 두들긴 사화의 시대 50년이다(보통은 세조의 정난공신들을 훈구파라고 하지만 넓게 보면 개국공신까지도 훈구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복기 해보자. 훈구는 왜 망했나. 자기 논리 개발 안하고 후진 양성 안 해서 망했다. 사림은 두문동에 처박혀 세미나만 100년 했다. 인재를 키웠고 집권 플랜을 꼼꼼히 짰다. 뭐 떠오르는 거 없으신가. 훈구파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산업화 세력이다. 나라를 세웠고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면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자신의 땀에 대한 무궁한 자긍심은 그러나 그 세대와 함께 저물었다. 후학 양성은 부실했고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를 전달하지 못하면서 맥이 끊겼다. 반면 사림은 달랐다. 서원에서 키워낸 바글바글한 인재들은 사화의 시대를 돌파하는 원동력이었다. 사림의 발상은 단순하면서도 명료했다. 훈구가 열심히 나라를 만들었으니 그 나라를 차지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이데올로기를 바꾸기만 하면 되었다. 훈구의 업적을 파내고 치적을 말소하는 것으로 역사는 새로 쓰면 그만이었다. 86세대 사림들은 그렇게 준비하고 노력한 끝에 기어이 대한민국을 장악했다. 현재와 겹치는 것이 또 있다. 단어가 주는 뉘앙스의 낡음과 달리 훈구는 사림에 비해 자주적이었고 과학기술을 신뢰했으며 포용적이었다. 사림은 반대였다. 성리학과 중화사상에 매몰된 끝에 소중화小中華라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고 과학기술을 천시했으며 매사 적대적이었다. 조선 전기 150년과 대한민국 건국 이후 50년, 참 많이 닮지 않았는가(그런데 갑자기 암울해지는 이 기분은 뭐지?).

지겨워요 이런 코미디

찬미가의 오프닝은 좋았지만 이어진 이광재 당선인의 뒷말은 찜찜했다.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 무지무지하게 위험한 발언이다. 문재인, 당신 할 일 다 끝났다는 얘기다. 이제 제대로 일할 사람이 나올 차례니까 쉬라는 얘기다. 청와대가 급히 수습에 나섰다. 다음 권력을 말한 것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세종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는 취지라며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전반부는 좀 태종스럽고 후반부는 좀 세종스럽게 국민이 볼 수 있게 잘 보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라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말씀인데 이게 또 코미디다. 세종시대는 조선 500년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과학기술이 꽃피었던 시기다.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에게 다시 원전도 열고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란 주문인 셈인데 듣는 대통령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짜증날 발언이다. 대체 고집과 아집의 사나이, 문재인을 뭘로 보고. 그리고 제발 부탁인데 이런 짜증나는 코미디는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때마다 내가 뭘 잘못 기억하고 있나 역사책 찾아보는 일이 지겹고 괴롭다. 정 하고 싶으면 여러분들끼리 밥 먹으면서 그 안에서만 하시라. 가뜩이나 혈압 올라가는 일이 사방 천지인데 이런 무지無知 개그까지 감당하기에는 내 정신이 그리 강건하지 못하다.

* 사족 하나.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을 ‘태종 + 세종’으로 포장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런 인물은 역시 따로 있다. 누군지 말할 필요는 없겠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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