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화제의 신간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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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출간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전작인 『반일 종족주의』보다도 더 진지한 학술서
◇지난해 7월 출간된 『반일종족주의』를비판의 주요한 논점들을 골라 하나하나 논박한 책
◇이 책이 담은 주제를 놓고 무제한 역사토론을 벌이자. 그래서 역사의 진실에 더 다가가자.
7일 발매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이 책은 지난해 7월 발간된 "반일 종족주의" 책자를 비판하고 공격한 것에 대한 저자들의 반론이자 한국 지상사의 천박함을 파헤친 역작이다.
7일 발매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이 책은 지난해 7월 발간된 "반일 종족주의" 책자를 비판하고 공격한 것에 대한 저자들의 반론이자 한국 지상사의 천박함을 파헤친 역작이다.

지난해 7월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40만 부 이상 판매고를 기록하여 화제와 돌풍을 몰고 왔던 책이 『반일 종족주의』다. 이번에 그 후속작이 7일 출간되었다. 제목은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다. 저자도 지난번과 동일하게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이승만학당 교장)를 비롯하여 김낙년 동국대 교수, 정안기 박사(전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우연 박사(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주익종 박사(이승만학당 상근이사), 그리고 김용삼 펜엔드마이크 기자다. 여기에 차명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와 박상후 전 MBC 보도국 국제부장 두 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지난해 발간된 『반일 종족주의』는 한국인의 잘못된 역사 인식이 한국의 국가 위기를 낳았다고 주장하여 한편에선 열띤 호응을 받았으나, 다른 한편에선 거센 반발이 제기되었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비판했고, 송호근 포트텍 인문사회학부장은 중앙일보에 ‘한국사학자 카이텐’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책을 비판하는 역사 관련 국가 기관 및 좌익 단체의 세미나가 세 번 열렸고, 비판서가 다섯 권이나 발간되었다.

이에 대해 필자들은 언론 기고나 인터뷰, 유튜브 방송 출연을 통해 적극 반론을 펴왔으며, 이제 그 내용을 간추리고 수정 보완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반일 종족주의자들의 비판을 하나씩 격파한다는 의미에서 필자들은 새 책의 제목을 『반일 종족주의와의 투쟁』(이하 『투쟁』으로 표기)이라 붙였다.

이 책은 지난해 『반일 종족주의와』가 출간된 후 제기된 비판과 반론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필자들은 위안부, 전시동원, 독도, 토지임야 수탈, 식민지 근대화라는 다섯 주제에 걸쳐 비판자의 주장을 요약하거나 인용하여 소개하고, 그에 대해 반론을 펴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특별기고 3편 등 총 28편의 글을 모았다.

먼저 「프롤로그」에서 대표저자 이영훈은 한국인의 반일 종족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게 친중(親中) 사대주의이며, 이는 하나의 문화적 유전자로서 복제 증식되어 금번 코로나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을 보인다. 그러나 이영훈은 영국에서 출발한 자유와 통상의 이념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 도달했으며, 전작 『반일 종족주의』가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는 데서 결국 “사실이 승리할” 것임을 예견한다.

제1편 「일본군 위안부」에서는 위안부 강제연행설을 재비판하고 위안부 운동가의 폭력적 심성을 비판하며 위안부의 수입 문제를 면밀히 검토한다. 위안부는 본인 의사에 반하는 인신매매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는데, 호주의 동의와 같은 합법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당시 범죄로 처벌되지 않았음을 들어, 결국 위안부란 일본 정부, 모집업자, 위안부의 가족·친지 등 3자의 합작품이었음을 주장한다.

이어서 초등학생에게도 성 노예설을 가르치며 우리 안의 위안부에는 눈감는 위안부 운동의 폭력적 심성도 지적한다. 아울러 인플레 때문에 위안부의 저금이 모두 휴지조각이 되었다는 주장은 대동아공영권의 통화제도를 제대로 모르고 하는 이야기이며, 운 좋게 한 살림 마련해서 중도 귀국한 위안부도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위안부도 있음을 지적한다.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은 완전 엉터리 판결

제2편 「전시동원」에서는 노무동원과 ‘징용’ 배상 판결, 군사동원 문제를 다룬다. 일본의 정책적인 노무동원 외에 훨씬 더 큰 규모의 자유도일(渡日)이 있었으며, 정책 동원은 강제성과 자발성이 혼합된 것이었고, 임금은 제대로 지급되었음을 보인다. 또 ‘징용’ 배상 소송을 제기한 원고들은 자유의사로 일본제철에 취업했으며, 작업배치, 임금지급, 기숙사생활 등을 살펴 볼 때 일본제철이 조선인 노무자를 조직적으로 기망했다고 볼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은 그를 구성하는 7가지 논리 중 제대로 성립하는 게 하나도 없는 엉터리 판결임을 논한다. 한편, 육군특별지원병은 단순히 일본 제국을 위한 총알받이가 아니라, 조선인 참정권 등 제반 권리를 신장하려는 ‘협력의 포석’이기도 했음을 주장한다.

제3편 「독도」에서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모두 독도를 영토로 인지하지 못했음을 보이고, 대한민국이 독도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해명한다. 해양과 통상에 무관심한 조선왕조는 울릉도와 별개로 그와 맞먹는 크기의 우산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며, 독도를 탐사한 안용복 사건 이후에는 우산도가 일본이 말하는 마츠시마(松島)라고까지 착각하게 되었음을 보인다.

또 조선의 지리학 발달과 개항 후 일본 지리서의 도입 이후 대한제국 정부는 울릉도에 부속한 죽도를 대한제국의 동단(東端)이라 보았으며, 일본의 독도 편입 후에도 우산도를 빼앗긴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등, 결국 독도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음을 논증한다.

한편, 이승만 대통령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후 박정희 정부 때부터 독도를 조용히 영유하기로 일본 정부와 밀약하고 그를 준수했으나, 김영삼 정부 때부터 그 밀약을 파기하고 갈등을 조장해 왔음을 보인다.

지난해 7월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40만 부 이상이 판매되어 화제와 돌풍을 몰고 온 "반일 종족주의" 책과 대표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지난해 7월 발간되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40만 부 이상이 판매되어 화제와 돌풍을 몰고 온 "반일 종족주의" 책과 대표저자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제4편 「토지 임야조사」에선 토지조사사업 때 학살 주장을 검토하고, 토지수탈설과 임야 수탈설을 논박한다. 우선, 혹자가 삼척군의 임야조사 때 일본 헌병이 주민을 학살했다고 주장했으나, 날조된 것임을 보인다. 토지수탈설과 관련해선, 조선왕조 시대의 복잡한 소유구조 때문에 토지조사사업 때 국유지 분쟁이 다수 발생했으나, 일제가 민유지 수탈 및 국유지 창출을 목표로 사업을 수행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그리고 임야조사사업 및 그 후속 조치로 남한 지역의 경우 국유림이 기형적으로 작은 소유구조가 만들어졌으며, 신용하의 임야 수탈론은 사료와 연구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사실과 거꾸로임을 주장한다.

제5편 「식민지 근대화」에서는 한국 근대화의 출발, 고종의 평가, 식민지 근대화의 정의와 수탈론, 식민지 개발에 대한 조선인의 참여, 식민지기 생활수준, 한국의 해방 등을 다룬다. 대다수의 연구자들이 한국의 근대가 언제 출발했는지에 침묵하고,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수탈 억압사로만 기억한다.

이 책에서는 일제의 민사령과 형사령으로 개인의 인격권과 재산권을 보장하며(근대 민법), 죄형법정주의, 일사부재리, 증거주의 등을 기초로 한 사법제도가 성립한 것(근대 형법)을 두고, 근대의 출발이라 논한다.

또 반일 종족주의자들이 흔히 고종을 개명 항일군주라 미화하지만, 그는 위기 때마다 끊임없이 강대국 공사관에 피신할 궁리나 한, ‘군국(軍國)’ 의지가 없는 인물임을 보인다. 아울러 식민지 근대화란 서구 근대문명과 제도가 일본의 지배를 통해 확산되었음을 설명한다.

또 혹자가 ‘약탈’은 없었어도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이 있었다고 한 데 대하여는, 수리조합 사업의 예를 들어 그러한 수탈은 실증되지 않음을 보인다. 조선인이 식민지 개발에서 소외되었다는 “개발 없는 개발”론에 대해서는, 그 주창자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따를 때 조선인이 식민지 개발이익을 향유했음이 입증된다고 반박한다. 그리고 1인당 생산, 신장과 체중, 사망률, 실질임금 등 제반 지표로 볼 때 일제하 생활수준의 개선이 분명하다는 경제사 연구의 최신 성과도 소개한다.

한편, 특별기고문에서는 일본의 침략에서 중국 공산화의 기회를 잡은 마오쩌둥이 반일주의를 취하지 않았지만 장쩌민은 반일주의를 조장한 것을 볼 때, 반일주의란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작되는 것임을 주장한다.

에필로그에선 한국의 위기를 낳은 악한 풍속과 천박한 문화를 질타한다. 돈 벌러 일본에 가놓고는 강제로 끌려가서 임금도 못 받았다고 말하는 사례를 들면서 만연한 거짓말 문화는 국가 위기를 초래함을 경고한다.

강제냐 자발이냐로 양단할 수 없는 전시동원의 복합성

전작에 이어 이번 『투쟁』에서도 현안인 전시 노무동원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박경식 교수가 “강제연행”이란 용어를 쓴 이래, 노무동원 연구자들은 흔히 일본이 조선인 노무자를 “폭력연행”하였고, 이는 “반인도적 전쟁범죄”였다고 규탄한다.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이 “강제연행”설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모집과 관(官)알선에서 동원에 응한 조선인의 자발성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반일 종족주의』 비판자들은 납치와 같은 수단을 써서 조선인 노무자를 동원했다는 일본인 관리의 진술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투쟁』 필자들은 전시동원에 강제성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의 요청을 받은 총독부 관리리가 조선 농민에게 모집과 관 알선에 응할 것을 강력 종용하고, 결국 농민이 그를 수락하는 식이었다. 특히 조선인이 기피하던 탄광 광부 동원에서 그러하였다. 반면, ‘징용’ 배상 소송 원고의 경우는 자발성이 더 두드러졌다. 동원지가 공장, 제철소였기 때문인데, 원고들은 5:1의 경쟁을 뚫기 위해 ‘빽’도 동원해 가며 모집에 응했다.

이처럼 노무동원은 조선인 노무자가 관헌의 강한 권유와 회유에 떠밀리듯이 모집에 응하는 것이었고, 거기에는 자발성과 강제성이 혼합되어 있었다. 일제말 노무동원의 이러한 복합성을 인식하자는 게 『투쟁』 필자들의 입장이다.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포스터.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포스터.

독도 문제에 관한 본격적 조명

『투쟁』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독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전작 『반일 종족주의』에서 독도 파트는 1개 장 24쪽이었으나, 이번 『투쟁』에선 4개장 77쪽에 달한다.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은 조선왕조가 독도를 영유했음이 17세기 말 안용복 사건 후 확인된다고 주장한다. 『동국문헌비고』(1770)나 『만기요람』(1808)의 “우산은 왜가 말하는 송도”라는 서술이 그 증거라 한다. 하지만 조선왕조는 “왜가 말하는 송도”인 우산도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규모나 상태가 어떤 섬인지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울릉도와 같은 크기의 또 하나의 섬이 동해 어딘가 있는데, 그걸 일본인들이 송도라 부른다고 했을 뿐이다. 이는 우산도가 존재한다는 믿음만 강화된 것일 뿐, 그 우산도를 영토로 파악한 게 아니었다.

비판자들은 대한제국 칙령41호나 일본의 독도 편입에 대한 대응 등을 들어, 대한제국도 독도를 영토로 인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가 펴낸 지리서에서 대한제국 국토의 동쪽 끝은 울릉도 부속 죽도였으며, 독도가 아니었다. 또 『증보문헌비고』(1908)에서도 울도군의 한 섬으로 우산도를 인지하였지만, 독도가 일본에 편입되었음을 인지한 후이므로, 이 우산도는 독도일 수 없다.

비판자들은 『증보문헌비고』의 이 서술을 일본이 빼앗은 독도에 대한 영토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강변하나, 그들의 말대로라면 “일본이 독도(우산도) 영유를 주장하나 대한제국 땅이다”라는 서술이 『증보문헌비고』에 들어갔어야 한다. 대한제국이 망할 때까지도 우산도는 여전히 어디 있는지, 크기가 어떤지 모르는, 환상의 섬이었을 뿐이다.

『반일 종족주의』와 『투쟁』의 핵심 논지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이 독도를 영토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태정관문서에서 독도를 한국 영토로 봤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영토의 제1요건은 해당 국가가 영토로 인지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독도가 일본 땅이니 돌려주자는 게 전혀 아니다. 독도는 이승만 정부가 한국 영토로 편입했다.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노태우 정부가 했던 것처럼 독도를 둘러싼 한일 대립을 조용히 잘 관리하자는 것이다.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항의하고 요란을 떨면, 다케시마가 어디 있는지, 그 존재도 몰랐던 일본인들이 다케시마가 일본 땅임을 알게 되고, 실제 분쟁이 일어난다.

일본이 『국방백서』 등에 다케시마가 자기 땅이라 서술한다고 해서, 한국의 독도 영유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독도 문제를 부각시켜서 일본과의 갈등을 새로 조장하고 격화시킬 합리적 이유가 없다는 게 이영훈 교수의 입장이다.

천박한 한국 지식사회의 자성을 촉구한다

이승만학당은 작년에 『반일 종족주의』를 내면서 한국 지식사회의 진지한 검토를 요망했다. 하지만 그 책에 대한 한국의 대학과 언론 등 지식사회의 반응은 한마디로 “비겁하거나 악하거나”였다. 대학과 언론에 적을 둔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 책에 보인 첫 반응은 침묵이었다. 『반일 종족주의』가 제기한 중요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책을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 사회의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다루고 논평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완전히 침묵했다. 7월 한 달 간 신문과 방송 중 어느 기성 미디어도 이 책을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국이 페이스북에서 책의 필자들을 “부역 매국 친일파”라고 격하게 비방한 후에야 이 책을 다루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이 책을 진지하게 검토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거친 비난이었다. 이영훈 교수를 일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인간어뢰(가이텐·回天)라 조롱한 사회학자도 있었고, 필자들은 이 책으로 “스스로 학문적 목숨을 끊었다”고 극언한 법학교수도 있었다.

어떤 이는 필자들을 ‘일본의 앞잡이’라는 “부왜노(附倭奴)”라 하였다. 필자들이 일제침략의 역사를 부정한다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홀로코스트 부정죄와 같은 죄목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자들도 여럿 나왔고, 집권당 산하 정책기관은 법률제정안을 작성했다.

신문과 방송의 기자들 역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역시 거친 비방을 쏟아냈다. 2019년 8월 12일자 SBS 저녁 8시 뉴스에선 “피해자 증언과 문건은 외면한 채 ‘강제동원 아냐’”란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한국에서만 자발적으로 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지금 전 세계 피해자들, 할머니들이 증언을 똑같이 하는데”라는 위안부 운동가인 정진성 전 서울대 교수의 코멘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증언만으로 역사학이 성립하진 않는다. 증언은 다른 증언과 문서자료를 포함한 여러 자료로 검증되어야 한다. 피해자의 증언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른바 ‘징용’ 배상 소송 원고 4인은 급여를 못받았다고 증언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급여를 제대로 못 받은 사람은 없다는 게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가.

또 비판자들은 공격에 급급한 나머지 이영훈 교수 등 필자들이 하지도 않은 말을 겨냥해서 비판했다. 『반일 종족주의』 책자 어디에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갔다고 써 있단 말인가. 남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도 않고 욕부터 하는 꼴이었다.

역사 책 내용이 틀렸으면 그 사실을 지적하면 되지, “부역매국 친일파”, “부왜노”는 무엇이며 역사 부정죄로 처벌하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분서갱유(焚書坑儒)를 2,000년 만에 재현하려는가. 가히 악하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한국 지식사회의 천박한 민낯이다.

이번에 출간된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은 전작인 『반일 종족주의』보다도 더 진지한 학술서다. 비판의 주요한 논점들을 골라 하나하나 논박한 책이다. 역사운동 집단도 좋고 학자도 좋다. 이 책이 담은 주제를 놓고 무제한 역사토론을 벌이자. 그래서 역사의 진실에 더 다가가자.

저자들은 5월 11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책의 발간 배경과 의미를 소개하고, 우리 사회에 드리는 성명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문의는 (02)779-0012 이승만학당으로 하면 된다.

성기웅 기자 skw42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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