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조국은 조광조, 윤석열은 윤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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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3.26 10:27:30
  • 최종수정 2020.03.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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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조국 전 법무장관이 정암 조광조가 되었다.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중 한 분이 검찰개혁을 외치며 조국을 조광조에, 윤석열 검찰총장과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윤임과 윤원형에 비유했다. 성姓만 같으면 아무렇게나 갖다 붙여도 된다고 생각 했나본데 사람 웃기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조광조가 누구인가. 개혁을 한답시고 시도 때도 없이 중종을 괴롭혀 노이로제에 빠뜨린 인물이다. 말은 많아 남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고 젊은 만큼 체력도 좋아 사흘 밤낮 꿇어앉아 주청을 해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조광조가 입궐하면 중종은 머리부터 싸맸다. 그런데 조국이 대통령에게 그런 존재였나. 미적거리고 훈구파 눈치를 보는 대통령을 들들 볶는 그런 인물이었나. 조국이 조광조면 문재인은 중종인 셈인데 그 둘의 목적이 같았나. 티브이 사극으로 역사 공부를 한 사람도 그 정도는 안다. 중종은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고 조광조는 도학정치를 핑계로 자파 세력 확산이 목적이었다. 다만 훈구파라는 세력을 압박해야 하는 차원에서 둘은 전술적 동지였을 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조국과 조광조라니, 정말이지 어이없는 비유요 뜬금없는 갖다 붙이기다. 아, 조국과 조광조의 공통점이 하나 있기는 하다. 조광조는 현량과賢良科 설치를 밀어붙였다. 과거 대신 추천으로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다. 28명이 급제에 성공했다. 이 중 몇은 성균관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학생이 시험도 보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시험을 보지 않고 연달아 대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그 누군가가 떠오른다. 또 몇은 ‘아빠 찬스’였다. 벼슬하고 있는 아버지를 둔 자재들이 역시 시험 없이 관료가 되었다. 조광조 일당은 인재등용이라는 말로 사림 세력 확장을 꾀했고 각자 집안의 이익을 챙겼다.

윤임, 윤원형 비유는 더 황당하다. 연달아 있으니 마치 둘이 손발 잘 맞는 콤비 같아 보인다. 아시다시피 전혀 아니다. 쫓겨난 신씨 외에 중종에게는 두 명의 계비가 더 있었다. 둘 다 파평 윤씨로 첫째 계비 장경왕후 윤씨의 집안을 대윤大尹이라 부르고 둘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집안을 소윤小尹으로 부른다. 윤임은 장경왕후의 오빠다. 윤원형은 문정왕후의 동생이다. 사이가 좋았을까. 부모자식도 갈라놓는 게 권력이다. 그 정도 혈연관계는 훌쩍 뛰어넘어 진행되는 게 조선시대 권력투쟁이다. 두 윤尹은 문정왕후가 왕자를 출산하는 그 날부터 라이벌이 된다. 권력을 먼저 쥔 사람은 윤임이었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외삼촌은 최고의 실력자로 등장했다. 윤임은 사림에 호의적이었다. 윤임의 건의로 인종은 조광조 일파 등 기묘사화 때 죽은 사람들을 신원했다. 이름처럼 어진 왕이었던 인종의 치세는 짧았다. 불과 9개월 만에 덜컥 삶을 마감하신다. 명종이 즉위하자 이번에는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세상을 쥐고 흔들었다. 제일 먼저 한 게 윤임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윤임에게 누명을 씌워 당사자와 일당을 참살한 것이 을사사화다. 윤임과 윤원형은 같은 자리에 이 이름을 올리기도 싫었을 정적이자 원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과 윤대진이 그런 관계인가. 두 사람의 관계는 둘이 알고 세상이 알고 심지어 세상일에 둔감한 나도 안다. 비유를 하신 분은 윤임과 윤원형을 싸잡아 ‘권력을 남용하며 세도를 부렸다’고도 하셨다. 윤원형은 애첩인 정난정과 맞물려 후대의 평가가 별로지만 윤임은 다르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최립은 윤임에 대해 ‘옷차림은 검소하고 악을 미워하고 선을 선양하는 것으로 집안을 이끌었으며 거문고와 책을 두어 마치 문인 학사의 거처 같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청렴했다는 기록은 여럿이니 권력을 남용하여 세도를 부린 결과가 청렴이었다는 얘기인가. 제발 부탁인데 입을 열 때는 사실관계 정도는 파악하고 떠들어 댈 일이다.

우리는 다시 조선시대로 간다

엉망인 비유와 함께 당혹스러웠던 것은 그 비례대표의 세계관이다. 이 분은 정치를 아직도 조선시대 붕당, 당쟁의 수준에서 파악하고 있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그 수준이니 자신도 모르게 그런 비유가 나온 것이다. 서로 싸우고 모함하고 죽이는 일련의 과정을 정치로 파악하는 이런 분들이 모여 적폐 청산 같은 걸 소명으로 삼아 열정을 불태운다. 그 분이 정치를 한다면 아마도 누군가를 밟고 죽이기 위한 것이 목적일 것이다. 붕당, 당쟁 자체는 나쁘지 않다. 서로를 견제하며 악한 일을 맘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기능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게다가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인류 역사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조선의 붕당이 악질인 것은 붕당이 나라보다 윗길이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 장례인가 뭔가를 이유로 임금의 부름을 거절한 것은 기본이다. 일본의 침략이 빤히 보이는데도 붕당의 이익에 사로잡혀 서로 다른 의견을 냈다. 나라 망치고 백성을 잡는 붕당이었다. 지금은 다를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라의 운명보다 붕당의 이해를 앞세우고 상대당을 절멸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헌정 질서 같은 건 관심도 없다. 이 비례대표는 작년 조국 사태를 검찰의 쿠데타라고 했다. 범죄 혐의가 뚜렷해도 자기편을 건드렸으니 쿠데타인 것이다. 검찰 개혁 완수를 위해 (검찰과) 한 판 뜰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쯤 되면 중증이다. 조선시대의 악질 붕당 정치의 부활이다. 부활도 더 개악된 부활이다. 조선시대 붕당 정치는 가문끼리만 했다. 이제는 전 국민이 나서서 붕당정치에 몰입한다. 서초동 조국 수호 집회는 그 생생한 증거다. 산업화, 민주화 다음이 다시 조선朝鮮화라는 농담을 듣고 웃은 적이 있다. 농담이 아닌 것 같다. 어이없고 한심해서 눈물이 난다. 태연히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 그걸 좋다며 박수치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지금, 다시, 조선시대로 간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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