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재 칼럼] 그 많던 안보팔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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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01.21 13:57:22
  • 최종수정 2020.01.22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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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정치판에서 선거철만 되면 ‘안보’는 기본 메뉴
안보팔이들은 정작 ‘파로호’ 이름 지키자는 말 뿐...누구도 행동하지 않아
우파는 우릴 이용만 했고, 좌파는 우릴 외면했다
경제는 살리고, 안보는 지키자? 뭘, 어떻게?
새로운 경제, 새로운 안보가 무엇인지를 보여달라!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솔직히 필자는 ‘안보’에 별 관심이 없었음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하려 한다.

문화전쟁을 치르는 사람으로써 문화와 밀접한 ‘역사’와 ‘경제’ 공부를 하기에도 버거웠고,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보수정당에서 허구한날 ‘안보’를 외쳐대니 굳이 내가 아니어도 그렇게 안보는 지켜질 줄 알았다.

그리고, 필자는 여전히 거의 사막에 가까운 척박한 우파문화가 더 시급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김한나 선생이 여자의 몸으로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를 위해 고군분투를 할 때 그녀를 도우면서도 단지 뭔가 대단히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래도 안보에 대해 그렇게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정치판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안보’는 기본 메뉴였고, 여전히 보수진영은 안보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보를 외치던 그 많던 안보팔이들은 다 어디로 갔지?

필자는 지금도 변함없이 안보보다는 척박한 우파문화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왜? 보수진영 어디에서고 관심 없는 분야가 ‘문화’이기에 필자가 안보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배고픈 놈이 배부른 놈 위해주는 웃기는 짓이라고까지 생각했었다.

“정치판과 그 많은 사람들이 ‘안보’를 외치는데 뭐.”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좌경화 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답은 ‘문화’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던 필자가 꼭지가 제대로 돌아버린 일이 발생했는데, 그게 바로 문화계 좌파들이 독립운동사를 완전히 왜곡시키기 시작하면서 그 시작점으로 ‘김원봉’을 띄우는 걸 보면서부터였다.

역사는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알기에 그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용남 교수와 함께 4년 전부터 자유경제원, 바른사회시민회의와 등과 함께 ‘문화안보’라는 이름으로 문화전쟁의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고 알리기 시작했다.

이용남 교수는 ‘문화안보’를 이렇게 정의했다.

‘문화안보’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종북좌파의 이념과 문화에 대항해 대한민국의 이념과 문화안전을 보장하는 것을 말한다.

누가 무엇이 국민을 선전·선동해 신화를 만드는지, 누가 왜 신화를 이용해 사회분열과 분란을 조장하는지, 누가 대한민국의 이념을 위협하는지 그리고 정확한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간파해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수호하는 것이 문화안보의 핵심이다.

더불어 이념 편향성 없는 건강한 문화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그에 따른 과제다.

문화는 인간을 ‘사고’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다. 문화는 ‘신화’를 만든다. 그 신화가 ‘잘못된 믿음’이 되면 지금 같은 광기의 시대를 만든다.

나치와 유대인 대학살을 보라.

대한민국 문화안보 이래서는 안 된다. 좌파 문화권력이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해 왜곡된 반(反)대한민국 정서를 국민에게 전파하고 있는 현실에서 안보와 안보의식 범위는 ‘국가’와 ‘통일’에서 ‘문화’로 확장되어야 한다.

국가·통일안보와 더불어 문화안보의 문제화 과정을 통해 국민 개개인이 문화안보의 주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문화계도 전쟁이기에 그 전쟁 이후의 ‘문화안보’가 필요했으며, 그것은 반드시 역사에 기반해서 문화를 통해 현실을 투영하는 것이었다.

그 ‘문화안보’를 통해 좌파들이 대중 선전선동용으로 선거철만 되면 양산해내는 ‘선거용 기획영화’들의 실태와 매스미디어의 문제, 그리고 탄핵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문광부 ‘블랙리스트’의 문제점에 대해 문제제시를 하며 문화전쟁의 새로운 방향을 전개했다.

하지만,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며 우파에서 외면당했다.

그러려니 했다. 문화라는 것이 우파에서 이해시키기는 어려운 분야고, 안보라는 큰 틀은 여전히 반공과 북한정권의 타도를 기반으로 했으니 말이다.

각 영역이 다르니 그렇게 열심히 싸워가면 된다라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던 필자가 안보팔이들에게 분노를 느끼게 한 일이 생겼다.

중국이 화천에 있는 ‘파로호’의 이름을 바꿔주길 요구하고, ‘대붕호’라는 이름으로 바꾸려 하자 우파 내부에서 격렬한 반대의 목소리와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중국의 눈치나 보는 현 정부를 비난하고 욕만 했지 그 누구도 행동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필자의 머릿속엔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그 많던 안보팔이들은 다 어디 갔지?”

그 생각과 함께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명예를 위해 홀로 싸워 온 김한나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 ‘대붕호 평화문화제’라는 것을 좌파문화인들이 나서 선전선동을 시작했고, 그것을 계기로 필자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준비에 착수해 ‘파로호 승전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필자는 ‘안보’라는 개념보다는, 행동하지 않는 안보팔이에 대한 분노의 개념이 더 강했다.

그런 필자의 행동에 그 많은 안보팔이들이 나서주길 바랬다.

하지만, 펜앤드마이크를 제외하곤 누구도 나서서 싸우는 사람이 없었다. 여전히 욕만 해댈 뿐….

우파는 우릴 이용만 했고, 좌파는 우릴 외면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필자에게 안보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문화전쟁을 치르기에도 정신 없는 마당에 ‘문화안보’조차 아직 우파의 마인드로는 시기상조라는 자괴감을 가지고 그저 내 할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필자를 다시 한번 격하게 분노하게 만들었고, 한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든 일이 생겼다.

바로,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 ‘전준영’ 회장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KBS의 천안함 왜곡에 대한 보도에 분노해 방송에 나와 눈물을 흘린 전준영 회장을 인터뷰할 일이 있었고, 그 인터뷰에서도 역시나 전회장은 별명인 ‘울보’답게 천안함을 얘기하면서 울먹였다.

그 인터뷰 내용 중에 그는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보수는 우릴 이용만 했구요, 진보는 우릴 철저히 외면했어요.”

그 뒤로 이어지는 얘기들은 말 하나 하나에 날 죄책감에 빠지게 했고, 그의 눈물을 보면서 필자가 우파라는 것이 미치게 창피할 정도였다.

다시 한번 우파의 ‘안보팔이’들에게 분노를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파로호 행사 때와는 그 분노심이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저 그 동안 천안함은 제대로 보상받고 나보다야 사람들에게 더 대우받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신경 쓰지 않았던 내 자신에 대한 자책이 더 들기 시작했다.

미안했고 뭐라도 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이후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다가 2020년 3월 26일이 ‘천안함’10주년이라는 얘기를 듣고, 그 이후에 해군은 조촐하게, 일반시민들은 누구도 천안함 10주년을 위해 행사를 준비하는 곳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다른 날이면 모르겠지만 10주년이 아닌가?

하지만, 우파 어디서고 그걸 기념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히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3월 26일이면 대한민국 전체가 그저 ‘총선’에 함몰되어 다른 것들은 보이지도 않을 시간이기 때문이었고, 올해 총선은 더욱 더 심각한 정치에 함몰된 상태로 사회를 이끌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또 이번에도 팔을 걷어 부쳤다.

전준영 회장과 의기투합해 필자가 운영하는 자유문화팀 작당들의 이름으로 천안함 10주년을 기념하는 ‘천안함 10주년 기념 안보견학’을 새해 첫 행사로 치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나, 기존의 딱딱하고 정보 전달하는 형식의 안보견학이 아닌 천안함의 생존자였던 전준영 회장의 살아있는 설명과 그 어디서고 들을 수 없는 생생한 에피소드들은 참가자 모두를 울게 만든 감동의 순간 순간들이었다.

천안함 그 자체, 전사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세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었고, 그들의 기억을 전달하는 생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있는 영웅들이었다.

그런 감동을 기록하고 전달하고자 참가자들은 그 자리에서 모임을 결성해 3월 26일 천안함 10주년 행사를 준비하기로 하고, 이후에도 꾸준히 이런 자리를 만들기로 다짐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그저 말만 하는 안보팔이들은 제외하고 작은 힘이나마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동참하는 사람들로만 구성하고, 천안함도 승전의 역사로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우파가 잊고 있었던 승전의 기록들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자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필자의 안보에 대한 생각은 무관심에서 분노의 감정으로, 분노에서 죄책감의 감정으로, 죄책감에서 살아계신 생존자들과 전사자 가족들에 대한 감사함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경제는 살리고, 안보는 지키자? 뭘, 어떻게?

행사를 마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와 뉴스를 켜자마자 그냥 피식~하고 웃음짓게 만드는 장면이 펼쳐진다.

자유한국당의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들어 왔는데 이런 내용이었다.

경제는 살리고 안보는 지키자!

얼마 전 모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행사에서 강연 중에 이런 문구들을 대놓고 비판한 적이 있다.

경제를 살리자는데 도대체 무슨 경제를 살리겠다는 거냐? 였다.

물론 ‘희망경제’니 ‘민부론’이니 꺼내는 말들은 있지만 그것이 과연 국민들에게 전달이 되나?

좌파들도 ‘경제’를 외치고, 그것도 더욱 확실하게 ‘서민경제’라는 누가 봐도 한눈에 이해되는 용어를 던진다.

그렇게 되면 좌파는 ‘서민’을 위한 경제가 되고, 그냥 경제만 외친 우파는 무의식적으로 서민을 제외한 ‘기득권’의 경제가 되는 프레임 전쟁임에도 ‘희망’이니, ‘민부’니 뭔 소린지도 모를 헛소리나 해대고 있다고 강렬하게 비판했다.

‘적폐’라는 단 한 단어로 보수를 무너뜨린 문화전쟁중의 중요 요소인 ‘용어전쟁’에서, 완전히 박살 나는 것을 보면 지금 당장 자유한국당에 필요한 것은 ‘카피라이터’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사진 출처: 폴리뉴스 구글 이미지)

그 일이 있고, 천안함 견학을 하면서 말만 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거 없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자유시민 스스로 행동하자 라고 의기투합한 후에 만나는 자유한국당의 슬로건은 허무나 그냥 의미 없는 웃음밖에 제공해주지 못했다.

타겟층도 보이지 않는 두루뭉실한 슬로건도 문제지만, 그것들이 수십 년간 전혀 변하지 않는 식상해도 너무 식상하고 진심도 전달되지 않는 공허한 외침이라고 느끼는 것이 비단 필자뿐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불과 몇 년 전 내걸었던 슬로건 ‘경제가 안보다’가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경제와 안보팔이다.

그러니까, 무슨 경제고 무슨 안보냐고요? 라고 질문을 던져 본다.

‘민부론’ 찾아보란 말 하지 말고 슬로건을 봤을 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자유우파의 경제와 안보가 뭐냐고 묻는 것이다.

좌파는 ‘서민경제’니, ‘사회적경제’니 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을 확실히 하면서도 국민들에게 정확히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을 전달한다.

그래서 먹히는 것이다. 아무리 우파가 그게 공산주의로 간다고 해봐야 이미 끝난 게임이다.

경제는 그렇다 치고 그럼 안보는 또 무엇인가 묻고 싶다.

반공과 북한정권 타도만 외치면 안보인가?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 영웅들이 죄인처럼 살게 방관하는 게 보수의 안보인가?

전사자 가족들에 대한 무관심과 방관이 과연 보수의 안보인가?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그건 네 인생이니 알아서 하라는 게 과연 보수의 안보인가?

좌파가 외면할 때 천안함을 이용만 하면서 안보팔이들 배만 불려주는 게 보수의 안보인가?

도대체 무슨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영화계 자유우파 선언 1호인 필자가 보이게도 비웃음이 나오는 안보 슬로건이라면, 우파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화인이 안보까지 챙겨야 한다면 그건 분명 대단히 뭔가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경제, 새로운 안보가 무엇인지를 보여달라!

경제와 안보는 자유시장주의를 받아들인 한국에서,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에서는 아주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이다.

전혀 새로울 것도, 새로울 필요도 없는 것들을 다시 또 반복한다는 것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는 것이고 변화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결론만을 제공해줄 뿐이다.

그래서 뉴스를 보는 내내 허탈하고 씁쓸한 미소가 나왔다.

안보에는 너 나 없다는 자유한국당의 슬로건을 보면서 ‘그러니까 굳이 말할 필요 없잖아?”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죽어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경제와 안보를 너 나 없는 것이라면, 우리가 늘 마시는 공기와도 같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다.

미세먼지가 있어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 듯 뭔 소린지 모르는 내용 없는 경제와 안보가 아닌 좌파의 ‘사회적경제’처럼, 자유우파 역시 자유라는 미세먼지 가득한 슬로건이 아니면 안 된다.

하지만,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필자의 바람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들고 나왔을 때 누구도 아닌 우파 내부에서 비판이 일었었다. 뭔 소린지 모르겠다고…..

재미있는 사실은 필자 같은 문화인들은 ‘창조경제’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했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필자에게(우파로) 넘어오려는 문화인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물론 우파내부에서의 무개념 때문에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꿈은 좌초됐고, 다시 그들은 생계형 좌파와 좌파 문화권력의 홍위병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슬로건은 유권자, 국민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다.

정확하고 그 슬로건을 통해 자유한국당의 의지와 방향에 대해 인지를 하게 된다.

지금 이대로라면 안 된다.

‘경제’를 말하는데 변함없이 기득권만을 챙긴다고 생각하고,

‘안보’를 말하는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이 오히려 허탈해 한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뭐라도 좋으니 제발 새로운 경제, 새로운 안보의 모습을 보여달라!

그래야 비록 한 표지만 필자의 한 표를 기꺼이 줄 것 아니겠는가?

천안함의 어뢰피격 부분을 보면서, 조각난 천안함의 단면을 보면서 이대로 가다간 저 모습이 대한민국 자유우파들의 가까운 미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천안함 생존자인 ‘울보’ 전준영 회장의 눈물을 닦아주는 안보를 만들어 달라.

천안함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감동하고 더욱 더 나라를 사랑할 안보를 만들어 달라.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 제발 부탁이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영화감독 / (주)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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