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系 기업인 ‘500닷컴’으로부터 300만엔 금품 제공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25일 체포
前 국토교통副相 아키모토 의원, “전혀 기억이 없다”... ‘수뢰 혐의’ 전면 부인
日외환법 위반 등으로 체포된 ‘500닷컴’ 측 관계자, “아키모토 의원 외에도 5명의 日의원에 금품 제공” 진술
‘일본유신의 會’ 소속 시모지(下地) 중의원 의원, 금품 수령 인정...지난 7일 오전 탈당신고서 제출

아키모토 쓰카사 일본 중의원 의원.(사진=아키모토 쓰카사 의원 공식 웹사이트)

‘카지노’ 합법화로 여러 논란이 제기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아베 내각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등 정부 여당이 야심 차게 추진해 온 ‘종합형 리조트’(IR) 프로젝트가 난관에 봉착했다. IR 관련 법안의 입안에 앞장서 온 ‘자민당’ 소속 일본 중의원 의원인 아키모토 쓰카사(秋元司) 씨가 지난해 12월25일 수뢰 혐의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아키모토 의원은 IR 관련 법안 입안을 추진해 왔으며 아베 내각의 각료로서 관련 프로젝트의 진행을 직접 주관하기도 했다. 이에 ‘관광입국’(觀光立國)이라는 슬로건 아래 ‘아베노믹스’의 중점 사업으로 ‘관광산업 개발’을 추진해 온 아베 내각의 향후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전망이다.

아키모토 의원은 IR 프로젝트와 관련해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 의사가 있는 중국 기업에 편의를 봐 주는 대가로 300만엔(한화 약 3200만원 상당)과 함께 홋카이도 가족 여행 경비 70만엔(한화 약 750만원 상당)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아키모토 의원의 뇌물 혐의가 특히 논란이 되는 점은 그가 아베 내각에서 일본 국토교통부상(國土交通副相·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차관’에 상당)을 맡으며 IR 관련 프로젝트 추진의 선봉에 서 왔다는 점이다. 아베 내각의 각료로서, 고위 공무원으로서, 그것도 자신이 담당해 온 대규모 설비 투자 사업과 관련해,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체포된 아키모토 의원에게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일본 현지 언론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유치 신청도 이뤄지지 않은 단계에서 일어난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500닷컴
수 명의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뇌물성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500닷컴’의 공식 웹사이트. ‘500닷컴’은 지난 2001년 중국 선전(深圳)에 설립된 기업이며 인터넷을 기반으로 복권 판매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이미지=‘500닷컴’ 공식 웹사이트 캡처)

“전혀 기억이 없다.”

의원 측 변호인에 따르면 아키모토 의원은 해당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바가 전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25일 일본 도쿄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체포된 당일 그는 소속 정당인 ‘자민당’을 탈당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키모토 의원에게 증회(贈賄·뇌물을 줌)했다고 지목한 중국 기업은 ‘500닷컴’(500.com)이다. 이 기업은 중국 선전(深圳)에 거점을 두고 지난 2001년 설립됐다. 이 기업의 주된 사업내용은 인터넷 기반의 복권 판매 사업 등이며, 지난 2017년에는 도쿄에 법인을 설립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키모토 의원 외에도 ‘500닷컴’의 임원 정시(鄭希) 씨 외에도 동(同) 기업의 고문 곤노 마사히코(紺野昌彦) 씨와 나카자토 가쓰노리(仲里勝憲) 씨를 뇌물 제공 혐의로 체포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기업은 일본 국내로 2000만엔(한화 약 2억1200만원 상당) 이상의 현금을 불법적으로 들여온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일본의 외한 관련 법률에 따르면 100만엔을 초과하는 현금을 해외에서 들여올 경우 세관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이를 위반했을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 혹은 50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아키모토 의원에게 제공된 300만엔의 뇌물성 금품도 여기에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좌로부터 이와야 다케시 전 방위상, 나카무라 히로유키 전 문부과학정무관, 미야자키 마사히사 전 법무정무관, 후나바시 도시미쓰 중의원 의원.(사진=일본 자유민주당 공식 웹사이트)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중이다. 체포된 ‘500닷컴’ 관계자들은 아키모토 의원 외에도 ‘일본유신의 회(會)’ 소속 시모지 미키오(下地幹郞) 중의원 의원, ‘자민당’ 소속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전(前) 방위상(우리나라의 ‘국방부장관’에 상당), ‘자민당’ 소속 나카무라 히로유키(中村裕之) 전(前) 문부과학정무관, ‘자민당’ 소속 미야자키 마사히사(宮崎政久) 전(前) 법무정무관, ‘자민당’ 소속 후나바시 도시미쓰(船橋利實) 중의원 의원에게 각각 100만엔 전후의 현금을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이 가운데 시모지 의원은 ‘500닷컴’으로부터 곤노 용의자로부터 100만엔(한화 약 1050만원 상당)을 제공받았음을 시인했다. 시모지 의원은 지난 2010년 결성된 ‘국제관광산업진흥의원연맹’(IR의원연맹)의 부회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IR의원연맹은 일본 중의원 의원들의 ‘초당파’ 결사체로 IR 관련 법안의 입안 등을 추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번에 체포된 아키모토 의원은 이 연맹의 부(副) 간사장을 맡기도 했다.

시모지 의원은 “(선거 자금 운용에 있어) 투명성을 갖지 못 하고, 사건에 관계된 인물로부터 자금 제공을 받은 점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지난 7일 오전 ‘일본유신의 회’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 당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유신의 회 소속 시모지 미키오 중의원 의원. 시모지 의원은 지난 7일 일본유신의 회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일본유신의 회’ 소속 시모지 미키오 중의원 의원. 시모지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소속 정당에 탈당신고서를 제출했다.(사진=위키피디아)

일본 정부 여당이 추진해 온 IR 프로젝트는 지난 2016년 관련 법안을 제정해 일본 국내에서의 ‘카지노’ 운영을 합법화하면서 본격화됐다. 지난 7일 내각부 외국(外局)으로 ‘카지노 관리위원회’가 발족했다. 본디 계획대로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일본 정부는 2021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및 사업자들로부터 유치 신청을 접수해 최대 3개소에 IR을 건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IR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지바현(縣)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치 포기’를 선언했으며 홋카이도(道)는 유치 계획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에 제기된 아키모토 의원의 수뢰 혐의와 관련해 일본 국내에서는 IR 프로젝트를 추진함에 있어 후보지와 사업자 선정에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편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관광입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아베노믹스’의 중점 사업으로 ‘관광산업 개발’을 추진해 왔다. 지난 2014년 방일(訪日) 외국인 관광객 수가 최초로 1000만명을 넘어선 이래, 지난 2018년에는 300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일본을 찾았다. 일본 정부의 2020년 연간 방일 관광객 유치 목표는 4000만명이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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