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이야기가 있는 역사, 이야기가 없는 역사
[김정산 작가의 펜앤투어] 이야기가 있는 역사, 이야기가 없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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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인수분해하면 유적과 이야기로 구성...5천 년 우리 역사에 이야기가 빠져 있어
이야기 많을수록 풍성한 역사...지금 벌어지는 분열의 정치 속에는 어떤 이야기 숨어있나?
김정산 작가
김정산 작가

여행객을 인솔해서 역사기행을 다니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역사를 무척 알고 싶어 하는데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줄 자료가 제도권에 너무도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 심지어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한 사람조차도 역사를 알고 싶다고 말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읽은 책을 말하고, 누군가는 연표를 외고, 최근에 본 드라마 내용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동명의 우리 시대 필독서 저자인 ‘에드워드 카’의 주장처럼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라고 학구적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쉽게 말해 역사란 유적과 이야기다. 역사를 인수분해하면 유적과 이야기로 남는다. 두 인수가 결합할 때 역사는 비로소 완전체가 된다. 완전체가 된 역사는 엄청난 전파력을 갖지만 둘 가운데 하나가 빠지면 불완전한 역사, 허무맹랑한 역사, 재미없는 역사가 되어 결국 전파되지 않고 소멸하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국토가 그나마 잘 보존돼왔으므로 고도를 찾아가면 유적이야 수두룩하다. 지자체에서 사활을 걸고 ‘닦고 조이고 기름칠 한’ 유적들이 수두룩하고, 그 앞에서 문화해설사들이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도 해준다. 그런데 왠지 허전하다. 듣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남는 것은 그냥 그곳에 갔다는 정도다.

하긴 우리가 자랄 때도 그랬다. 크게 다를 바 없이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가고, 부여를 가고, 서울 경복궁과 덕수궁, 창덕궁을 다녀갔었다. 그런데 뭐가 남았던가? 돌아보면 가물가물하다.

책에서 강조하던 5천 년 역사는 어디로 갔나? 우리 역사는 무엇인가? 역사를 알고 싶은데 왜 우리는 결국 아무한테서도 역사를 배우지 못하나?

원인은 바로 이야기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야기란 작가들이 멋대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드라마 작가들이 마구잡이로 역사에 버무려 넣는 사랑 타령과는 더욱 무관하다. 당대의 이야기, 기록에 남은 이야기, 지역에서 오래 구전되는 이야기, 사료를 교차해보면 충분히 근거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이야기 등을 말한다.

언필칭 5천 년이나 되는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우리에겐 바로 이 이야기 부분이 빠져 있다. 없어도 너무 없다. 이야기를 모르니 딱히 롤모델로 삼을 영웅도 없다. 국민 대다수가 이순신 아니면 세종대왕, 김구 아니면 아버지다. 그러나 아버지를 빼고 그네들 역시 누구인지, 뭘 했던 사람인지, 조금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모르긴 마찬가지다.

근본도 모른다고 애들을 나무랄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역사 속에 숨은 값진 이야기들을 찾아내서 많이 들려주는 게 옳다. 그래야 나라 전체가 옳은 방향으로 가는 데 보탬이 된다. 인간은 자료와 정보를 바꿔주면 생각이 달라지는 존재라고 한다. 개인이 고수하는 소신과 철학도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란다. 그냥 자료와 정보를 업데이트해주면 저절로 바뀐다고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말한다.

일례로 그냥 무열왕릉을 찾아가서 보는 것과 무열왕에 얽힌 절절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그가 큰딸을 얼마나 아꼈는지, 큰딸의 잘린 목이 택배로 배달돼왔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때부터 장장 18년간 백제를, 의자왕을 멸하기 위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다 알고 무열왕릉 앞에 서면 감동의 무게가 달라진다.

태종무열왕릉
태종무열왕릉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흐르고 이야기 역시 계속된다. 조국은 왜 법무장관이 되었나?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범죄자를 장관으로 앉혔나?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인가? 언제부터 알았으며 어떻게 친해졌나?

이야기는 반드시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야기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들 둘의 관계는 당대 수많은 사람의 입초시에 오르내리다가 정권이 끝나거나 어느 한 사람이 사라지면 저절로 흐지부지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가능성도 있다. 이런 건 역사가 아니다. 역사가 안 된다. 역사로 남을 수 있는 요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홍길동전을 썼다고 알려진 허균의 최후는 매우 처참했다고 한다. 당시 임금은 광해, 두 사람은 한때 절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역사는 알지 못한다. 광해가 한때 그토록 좋아한 허균을 왜 사지를 찢고 껍질까지 벗겨 죽였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 사이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허균의 지나치게 참혹했던 죽음은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았고, 호사가들 사이에 정황과 추측만 무성할 뿐, 교훈과 가치를 지닌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다.

대통령과 조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면 사건이지 역사가 아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은밀한 이야기가 후에라도 세상에 밝혀진다면, 햇빛에 드러난다면 결과는 아주 달라진다. 강력한 전파력을 가진 역사가 되어 후세에 길이 전해질 것이다. 요즘 시대에 유적, 즉 증거와 자취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대 국민이 양쪽으로 얼마나 분열했는지, 반대하는 목소리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불과 3년 만에 민심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방송 화면에, 신문 지면에, 수많은 국민의 핸드폰 속에 그야말로 고스란히 저장돼 있을 테니 이야기만 제대로 붙는다면 가공할 위력을 얻어 다음 세대로 맹렬히 전파될 것이다.

그들에게선 과연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그것은 역사에 또 어떤 교훈을 남길까? 시일을 두고 한번 지켜볼 일이다.

김정산(펜앤투어 대표작가) penntour@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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