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 “특조단 구성 공정히 하라”
또 다른 ‘침묵하던 다수’도 입 열까 ‘주목’

김명수 대법원장이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에 대한 3차 조사에 나선 것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 정면으로 비판하는 의견이 나왔다. 김 대법원장 체제 출범 이후 한쪽으로 쏠리기만 하던 사법부 내에서 반대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51·28기)는 14일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내에 사찰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기를 희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3차 특조단 구성의 정당성과 공정성 등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 내용이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소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진상조사위원회, 올 1월 추가조사위원회에 이은 3번째 자체 조사다.

김 부장판사는 3차 특조단의 공정성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사위원이) 특정학회나 특정성향으로 분류되어 온 상황에서, 이번 인선에서도 그러한 것들이 충분히 불식되었다고 볼 만한 노력의 흔적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조단 조사위원 총 6명 중 3명이 좌파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으로 구성된 데 대한 비판이다. 김 대법원장은 두 연구회 회장을 모두 지냈다.

명확하지 않은 특조단 조사의 대상과 범위, 방법에 대해서도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김 부장판사는 “블랙리스트만 다루겠다고 출발한 1‧2차와 달리 3차는 아예 범위의 제한도 없애버렸다”며 “검‧경의 수사나 행정기관의 내부 징계 절차도 이런 식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절차는 대게 고소‧고발이나 구체적 사건의 발생과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가 있어야 하고, 그 부분에 한해 수사가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또 “검찰에서 혐의 관련성이 잘 확인되지 않은 모든 자료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면 저인망식 수사라고 비판하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법관들의 엄중함이 이번에는 왜 이리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가”라고도 했다.

2차 추가조사위 활동 당시 ‘위법’ 논란을 샀던 판사PC 강제 개봉이 재현될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러면서 “굳이 몇 분 안 되는 위원 중에 전산정보관리국장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예 처음부터 강제개봉을 천명하고 시작하는구나’는 예측을 암시한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앞서 2차 추가조사위가 법원행정처 판사의 PC를 강제개봉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 체제 출범 이후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우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주장과 대개 배치되는 내용이다.

김 판사는 이날 올린 글에서 ‘반론이 없이는 조직이 건강할 수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현직 부장판사가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 조사 활동을 비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서경환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52·21기)는 “당사자 동의 없는 컴퓨터 강제 조사는 위법하다”는 글을 올린 바 있다. 부장판사급인 이숙연 부산고법 판사(50·26기)도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파일의 작성 및 관리가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에 해당하려면 해당 파일에 기재된 법관들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이 있어야 한다”며 “불이익 조치의 존재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소명된 바가 없다”고 지적했었다.

결국 ‘블랙리스트는 없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은 2차 조사위가 위법성 논란을 둘러싸고 강력한 비판을 받았음에도, 김 대법원장이 3차 특조단을 꾸리며 법원 안팎의 비판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 지방법원 판사는 “김 대법관이 지나치게 자신감에 차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무리한 방식으로 법원 내 갈등을 조장하면 이를 반길 판사들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다음은 김태규 판사의 글 전문이다.

<특별조사단이 사법부 내에 사찰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기를 희망합니다.>

두 번의 글을 올렸고,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조사위원회 활동에 동조하시는 판사님들의 목소리는 꽤나 있는데,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법부 구성원의 의견이 통일되어 있고, 그런 정도로 조사위원회의 존재가 정당해서 반론이 없는 것인가, 그래서 저는 온전히 광인의 기질로 외로이 이렇게 목청을 돋우는 것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반론이 없이는 조직이 건강할 수 없다’는 명제에 터 잡아 다소 불편한 글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적어도 3차 조사위원회는 그 명칭만은 ‘조사단’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종전의 1차나 2차 위원회와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잘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종전 두 차례의 조사위원회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고 두려움의 강도도 더 합니다.

첫째, 그 구성에 있어서의 공정성의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오랜 기간 법관으로 성실하게 재직하여 오신 분들에 대하여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불경스럽고 못마땅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분들의 실제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특정학회나 특정성향으로 분류되어 온 상황에서, 이번 인선에서 그러한 것들이 충분히 불식되었다고 볼 만한 노력의 흔적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번에는 향후 외부인사의 개입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지난번에 글을 올리면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우려로 지적하였던 부분입니다.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해서 인용하지요. “① 법원 내부의 갈등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시켜 마치 법원 스스로는 문제해결의 능력이 없는 것처럼 명분을 축적하는 것, ② 그리고 이러한 명분 위에 외부인사가 참가하는 것, ③ 그 다음에 그 외부인사로 정치적 성향의 인사들을 채워 법관의 인사를 포함한 법원의 행정사무가 그들의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는 것입니다.” 예상했던 우려의 단초를 보는 듯해서 씁쓸합니다.

둘째, 조사의 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관한 한계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특별조사단이라는 명칭 앞에 “사법행정권의 남용의혹 관련”이라는 수식어구가 있어 특별조사단의 활동범위를 다소 한정하기는 하였으나, 사법행정권과 관련한 것이면, 적어도 현재의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는, 조사의 대상과 범위, 방법 등이 전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검․경의 수사나 행정기관의 내부 징계절차도 이러한 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수사절차는 대개 고소․고발이나 구체적인 사건의 발생이 있어야 하고 또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자료가 있어야 그 부분에 한하여 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징계절차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검찰에서 수사대상자에게 지워진 혐의점과 관련성이 잘 확인되지 않은 모든 자료에 대하여 영장을 청구하면 저인망식 수사라고 비판하면서, 영장의 범위에 대하여 그리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법관들의 엄중함이 이번에는 왜 이리도 중심을 잡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법원이 법의 최종 판단자라 더 신중해야 한다고 이미 지적한바 있습니다. 법원의 내부싸움으로 비춰지고 법관들이 성향에 따라 갈리어져 있다고 의심받는 상황이라면 더 더욱 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대하여 신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애초 주되게 문제제기를 했던 부분은 영장주의 위반의 의심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차 위원회는 법관 개인용 PC의 강제개봉이라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2차 위원회도 결국 강제개봉을 단행하기는 하였지만 적어도 출발시점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3차 위원회는 그 구성원 안에 아예 법원행정처 전산정보관리국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PC를 강제 개봉할 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굳이 몇 분 안 되는 위원 중에 전산정보관리국장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강제개봉을 천명하고 시작하는구나.’는 예측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여담으로 이번에 여당으로 지방선거를 준비하시는 어느 변호사님조차 “그렇게 강제로 열어본 컴퓨터 파일이 나중에 증거가 될 수 있겠느냐”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재야법조인조차 갸우뚱하고 있습니다.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속담을 다시 한 번 더 인용하겠습니다.

넷째, 조사의 차수를 더한다고 더 정당해지지 않습니다. 더 혼란스럽고 새로운 논란만 야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법원의 심급이야 심급이 상향할수록 법관의 숫자도 늘어나고 법관의 경륜도 더 높아지는 등으로 그 실질적인 권위가 더해지고 여기에 법률에 의한 근거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 2, 3차 위원회는 그 위원의 숫자나 구성방식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고, 법률에 후위 차수의 조사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할 근거도 없습니다. 논의의 범위라도 한정되어 있으면 적어도 더 많은 자료가 쌓였다는 점을 장점이라고 하겠으나, 블랙리스트만 다루겠다고 출발한 1, 2차와 달리 3차는 아예 범위의 제한도 없애 버렸습니다. 더 많은 정당성을 부여할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행정처장님께서 지휘하시고, 법관대표자회의 대표가 포함되어 있으며, 윤리감사관이 포함되어 있으니 좀 더 달리 봐야 될까요. 그 차이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것은 저의 짧은 단견을 탓일지 의문입니다.

애초 1차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질 당시 저는 그 결과가 무엇이 나오더라도 수긍하지 못한다는 일단의 비판이 쏟아져 나올 거라 예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2차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상도 나갈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거부터 근자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조직이든 그러했으니 우리 조직이라고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법원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차를 넘어 검찰수사나 다른 형태의 위원회가 출현할 거라는 제 불길한 예상은 그대로 현실이 되면서 실망은 저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다섯째, 법관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고, 국민들의 여망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하여 저는 이렇게 봅니다. 1년 여 전에 인권법연구회에서 ‘인권’이 아닌 ‘사법개혁’을 주제로 하여 설문조사를 하고 이에 대하여 학술토론을 한다고 하기에 저는 그 순수성에 다소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후 이런 저런 일들이 있더니 언론에서 법원행정처가 이러한 학회의 활동을 억압하는 것으로 화제가 되더군요. 법원행정처 처분의 당부는 별론으로 하고 그러한 이슈가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시작된 갈등은 1, 2차 조사위원회를 거치면서 블랙리스트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지게 되었고, 2차 조사위원회 결과가 나오면서 결국에는 원세훈이라는 이슈에까지 대중의 관심이 확장되었습니다. 아주 발화점이 높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슈들로 갈등이 확장되어 가니 사법부에 대하여 무언가를 태우고 싶어 하는 대중은 지속적으로 훌륭한 연료를 공급받고 있었던 셈입니다. 3차 위원회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3차 위원회에서 또 더 휘발성이 강한 이슈를 제공하여 대중의 에너지를 끌어낸다면 그즈음에는 법원 수뇌부가 희망하는 인사방향이나 제도변경 등을 이루어내는데 많은 장애가 해소될 수 있을 테지요.

여섯째, 의혹만으로 이러한 큰 갈등이 재현되지 않아야 합니다. 경향일보나 일부 법관들이 제기한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혹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제기된 것인지 여전히 의문이 있습니다. 일개 언론사의 언론기사에 기초해서 사법부가 격동 칠 만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구성원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그것은 조직이 여론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못하고, 법관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그 양심’보다는 여론에 휩쓸린다는 방증이 됩니다. 한국경제와 펜앤드마이크는 2차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대법원장님의 인선과정에 인권법연구회 내 일부 법관의 관여가 있었다는 자료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삭제하였다는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며칠 전 일요신문은 노무현 정부 당시의 국정원이 법원지휘부에 접촉하여 재판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다는 내용의 단독 기사를 내었습니다. 언론사의 의혹으로 조사의 범위를 확정하시려면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서도 함께 조사가 되어야 됩니다. 동향파악과 관련해서 거점법관으로 기획법관 출신들이 주로 활용되었다는 지적이 있고, 이러한 기획법관제도는 이용훈 대법원장님 시절에 전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당시 어떠한 의도와 과정으로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하여서도 조사가 필요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요. 이 모든 것들을 다 조사해서 진실이 밝혀 질 수도 있겠는데, 그즈음 대중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아마 이것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법원은 못 믿겠고, 판사들은 나쁘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들은 상상을 통해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이고, 그저 막연한 의심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더하여 훗날 그 예상들이 참으로 잘못된 것이고 근거 없는 상상에 기인한 것으로 최종적인 결과가 나타나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러나 위의 우려들이 융합하면서 대상과 범위, 방법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 강제조사가 현실화 된다면 그것은 사법부 내부의 대대적인 사찰입니다. 사법행정에 관여하셨던 많은 판사님들은 이제부터 자신에게 무언가 책잡힐 것이 없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변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부질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사무실 내 컴퓨터부터 정리를 해야 된다고 애쓸지도 모르지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조사단의 구성을 공정히 하시고 외부인 특히 정치적 성향이 강한 외부인의 참여를 꼭 배제시켜 주십시오. 조사대상은 최초 대상자로, 조사의 범위는 블랙리스트로 각각 한정하시고, 범죄혐의 등이 구체화되어 강제조사가 필요하다면 아예 수사의뢰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조사단 이후에 그 조사결과를 빌미로 또 새로운 기구를 만들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조사과정에서 발화점 높은 새로운 이슈를 쟁점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언론 등에 의한 의혹만으로 이러한 사태가 재현되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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