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이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면 사회정의가 우르르 무너질 것
조국 법무장관의 가슴 속에도 과연 양심의 법정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

김주성 객원 칼럼니스트

조국게이트는 어마어마하다. 조국, 부인, 딸, 아들, 모친, 동생, 이혼한 제수, 5촌 조카 등 온 가족이 연루되어있다. 의혹사항도 광범위해서 모두 기억하기도 어렵다. 소위 3대 의혹으로 불리는 딸의 입시부정의혹, 웅동학원의 비리의혹, 그리고 사모펀드의 투기의혹은 그 하나하나가 초현실적이다. 딸은 고등학생으로 인턴 2주 일만에 의학전문학술지의 제1저자가 되었는가하면, 웅동학원의 100억 원대 유산에 대한 상속세가 단돈 6원으로 판명되었고, 민정수석이 되자마자 사모펀드에 전 재산보다도 많은 투자액을 약정하기도 했다.

조국을 비롯한 가족의 언행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과연 가슴 속에 양심의 법정을 지니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모른다’로 일관하는 아빠, ‘증거인멸’까지 서슴지 않는 아내, 부모를 ‘빼닮은’ 딸을 보면, 조국 가족은 가슴 속에서 양심의 법정을 모두 걷어내고 탐욕의 마당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존재의 가벼움”에 “구토”를 못 참게 되는 것도 아마 대한민국 역사 이래 처음인 듯싶다.

양심의 법정이 사라지면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공과 사의 경계가 사라진다. 거짓과 진실이 삶의 실존문제라면 공과 사는 사회정의의 본질문제이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가 무너지면 실존이 사라지고, 공과 사의 경계가 사라지면 사회정의가 무너진다. 조국가족이 진실되게 살던 거짓되게 살던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법무장관인 그가 공과 사의 경계를 넘나든다면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다. 곧바로 사회정의가 우르르 무너질 것이고, 뒤에 사회정의를 다시 세우기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다.

장관이 되기 전에 일으킨 공·사 넘나들기는 과거의 문제이지만, 법무장관이 된 뒤에 일으키는 공·사 넘나들기는 현재의 문제이자 미래의 문제이다. 법무장관으로서 조국의 행동거지를 살펴보자. 그는 법무장관이 되자마자 모두를 충격에 빠드렸다. 후보시절 가족의 수사문제에 간여하지 않겠다고 철썩 같이 되뇌이곤 했기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국은 가택수색이 이루어질 때 천연덕스럽게 담당검사와 통화했던 것이다. 통화내용은 잘 알려져 있다. “장관입니다” “네 특수부 ㅇㅇㅇ입니다.” “아내의 건강상태가 안 좋으니 압수수색을 조속히 끝내주세요” “네, 절차대로 수행하겠습니다.”

통화내용이 알려지자 즉각 수사개입이란 논란이 일어났다. 조국장관은 명언을 남겼다. 전화한 것은 “인륜문제”라는 것이다. 남편으로서 아픈 아내를 배려해달라는 인륜의 요청이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남편으로서 통화했다면 첫마디가 “장관입니다”가 아니라 “정경심의 남편입니다”이어야 했을 것이다. 법무장관으로 자신을 소개하면, 담당검사와 자신의 관계는 남편과 담당검사라는 사인과 공인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장관과 담당검사라는 공인 사이의 관계가 된다. 그렇기에 담당검사는 관등성명부터 대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은 뻔뻔스럽게 사인으로서 부탁할 수 있는 “인륜”문제라고 우겼다.

사실 인륜이라고 하더라도 법을 비켜갈 수는 없다. 공인의 삶에서는 인륜의 요청과 법의 요청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잠언으로 정리하였다. 공인이라면 인륜의 요청을 억제하고 법의 요청을 받들라는 것이다. 사적 규범인 인륜으로 공적 규범인 법의 영역을 침해하면 그것이 바로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는 부당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규범을 다루는 조국장관은 가족애란 인륜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공적인 수사행위라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과연 조국 법무장관의 처사는 인류의 법인식에 맞는 것인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살피기 위해서라도 아예 인류문명이 무르익기 시작한 2500년 전의 법인식에 비추어보자. 동양의 예를 먼저 본다면, BC 6세기 말에 중국 초나라의 재상으로 석사(石奢)의 삶을 들 수 있다. 지방순찰에 나섰다가 살인사건을 접했는데, 추적해보니 살인자는 뜻밖에도 자신의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를 풀어주고는 스스로 결박하고 나아가 왕에게 간청하였다. “법대로 아버지를 처형하면 인륜을 저버리는 일이고, 법을 무시하고 살인자를 놓아주면 국가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국사범인 저에게 극형을 내리소서.” 왕이 처벌을 미루고 달래려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륜은 지켰지만 차가운 법의 눈을 피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만일 조장관이 초나라의 석사였다면, 전화를 끝내자마자 직권남용에 대한 처벌을 자청했을 것이다.

로마에 가면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콘세르바토리 미술관에서 눈이 부리부리한 청동제 두상을 볼 수 있다. 로마공화정의 원조인 루키우스 브루투스의 모습인데, 공화정말기에 독재를 막으려고 케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선조다. 그는 법의 엄정함과 애국심의 상징으로 지금까지도 미국과 유럽에서 최고의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그는 사적인 인륜과 공적의 법규범이 부딪칠 때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집정관으로서 꿋꿋이 공인의 삶을 살아냈다.

포악한 왕을 쫓아내고 BC 508년에 공화정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쿠데타 모의가 발각되었다. 주모자들은 쫓겨난 왕과 내통한 귀족집안의 자제들이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브루투스의 두 아들이 연루되었다. 재판이 시작되자, 그는 포로 로마노에 끌려나온 아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왜 아무 변명도 없느냐?”고 세 번이나 애타게 물어보았다. 대답이 없자 재판을 그대로 진행시켰다. 두 아들은 손을 뒤로 묶인 채 피가 나도록 매를 맞고, 쓰러지자 도끼로 목이 잘렸다. 모두들 얼굴을 돌렸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았다.

브루투스는 쫓겨난 왕이 주변의 부족들을 모아 로마로 쳐들어왔을 때 최전선에 나가 적군 장수와 일대일로 격투를 벌였다. 그는 로마에 승리를 안기고 격투 끝에 죽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애국의 투혼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만일 조장관이 로마의 브루투스였다면, 자신에 대한 의혹까지 겹쳐 자택까지 압수수색을 당할 지경에서는 양심의 가책과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을 고발했을 것이다. 공인으로서 어떻게 “인륜의 문제”라고 둘러대면서 지금의 상황을 “검찰과 아내”의 대치상황이라고 발뺌할 수 있겠는가?

석사나 브루투스는 행동은 달랐지만 모두 인륜과 법규범을 지키기 위해서 살신성인한 사람이다. 석사는 인륜을 앞세워 선사후공(先私後公) 했고, 브루투스는 법규범을 앞세워 선공후사(先公後私)했다. 석사는 인륜사항에 비추어 아버지를 처벌하지 못하고 법규범 때문에 죄인을 자처하며 죽음을 선택했고, 브루투스는 법규범에 비추어 아들들을 처벌하고 인륜사항 때문에 애국의 투혼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공인으로서는 인륜과 법규범은 차갑게 구별해야할 삶의 두 영역이라는 것이 역사 이래 확고하게 자리잡은 법인식이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조국 법무장관의 법인식은 2500년의 법 역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퇴폐적인 법인식이 아닐 수 없다. 그에게는 과연 법이성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서울법대 교수로서, 형법전공자로서, 반문명적인 법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법이성의 원천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심의 법정이다. 모든 의혹에 “모른다, 이제 알았다”로 일관하던 사람이 장관이 되고 나서 아내의 건강이 걱정스러워 살갑게도 검찰청법에 금지된 수사개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국 법무장관의 가슴 속에도 과연 양심의 법정이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조국 장관을 보고 있으면, 마치 대궐 담을 가볍게 타고 넘는 자객처럼 공·사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법무 낭인을 보는 것 같다.

‘칼럼을 다 쓰고 인터넷 신문을 열어보니, 조 장관이 일요일에 관용차를 타고 미술관을 방문했다는 소식이 떠있다. 기자가 미술관 방문목적을 물어보니 조 장관은 차에 오르며 “사적 모임”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조 장관의 미술작품 관람행위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휴일의 '사적인 모임'에 관용차와 수행비서를 동원한 것이 문제다. 정부의 공용차량 관리규정에 따르면 '각급 행정기관의 차량은 정당한 사유 없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지 못 한다'고 되어 있다. 관용차를 동원한 일요일의 미술관 출입은 역시 법무 낭인의 날렵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서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김주성 객원 칼럼니스트(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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