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평생을 통해 수많은 정권이 몰락하고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류근일 칼럼] 평생을 통해 수많은 정권이 몰락하고 붕괴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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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권들의 몰락 이면에는 ‘지나침의 업보’가 공통되게 깔려있어
자칭 ‘진보’ 권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심대한 지나침일 것
대다수 여당 의원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강경한 ‘조국 사수론’으로 치달아
조국이 대체 뭐기에 그러는가? 자칭 ‘진보’가 왜 조국 하나에 목을 걸어야 하는가?
이 정부가 조국을 붙들고 늘어지는 한 이 정부의 위기는 좀처럼 가셔지지 않을 것
류근일(언론인)
류근일(언론인)

자칭 ‘진보’ 정부도 역사적 부침(浮沈)의 일반적인 양상에서 예외가 아닌가? 그들은 20~100년 집권을 호언했었다. 그러나 불과 2년여만에 그들의 실정(失政)에 대해 고려대생들과 서울대생들이 촛불을 들었다. 안암골과 관악산 밤하늘에 저항하는 젊음의 청순한 절규가 길게 메아리쳤다. 이튿날인 8월 23일 광화문 광장엔 또다시 ‘휘날리는 태극기’ 해일이 일어났다.

필자는 평생을 통해 역대 정권들이 병들고 주저앉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모든 정권들이 한 때는 다 막강하고 기세등등했다. 다수 국민들의 지지도 확보하고 있었고,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 기관들을 휘어잡고 있었고, 짱짱한 참모들과 여당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자유당이란 여당을 만들면서부터 야당 민국당의 강력한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3공, 4공(유신 정부)을 통해 산업화 수혜계층인 신중산층의 지지와 강력한 정보정치에 힘입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전두환 정권도 경제적 호황(好況) 속에서 반체제 운동의 파고를 5년~7년 이상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철옹성 같던 정권들이 어느 한 순간 어이없이 무너졌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야, 100년은 갈 것 같던 정권이 저렇게 무너지다니!”라며 경이로워하곤 했다. 자유당 정부가 3. 15 부정선거로 무너졌을 때, 유신 정부가 ‘궁정동 만찬장’에 미친 부마사태의 파장으로 무너졌을 때, 전두환 정부가 ‘남영동 분실’의 박종철 군 고문치사로 기우뚱했을 때, 세상사에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우주적 인과(因果) 같은 게 작용하고 있음을 소름 끼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주적 인과란 과욕, 지나침, 무리수, 억지, 뻔뻔스러움, 오만방자함, 교활, 우매함에 대한 이치(理致) 또는 법도(法道)의 노(no)라 할 수 있다. 역대 정권들의 몰락 이면에는 바로 그런 ‘지나침의 업보’가 공통되게 깔려있다. 이 원리가 자칭 ‘진보’ 권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심대한 지나침일 것이다. 자신들이 말하는 ‘진보’는 무오류의 진리이자 유일한 정의이기에 그런 진리-정의의 세력은 우주적 이치와 법도라 할지라도 결코 어쩌지 못한다고 자처하는 것은 오만방자함의 극치일 것이다.

오늘의 자칭 ‘진보’ 권력은 바로 그런 오만방자함으로 질주하는 징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대다수 여당 의원들은 박용진, 송영길, 금태섭 의원 등 일부 성찰론자들을 물리치고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다”라는 강경한 ‘조국 사수론’으로 치달았다고 한다.

이걸 보면서 대뜸 연상되는 것은 최인규 내무장관과 장경근 의원 등 자유당 강경파, 차지철 경호실장 등 유신 강경파, 그리고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고 한 5공 강경 공안부서의 지나친 과격성이었다. 이들은 모두 “여기서 밀리면 내리막이다”라는 정서에 사로잡혀, 절제와 유연성과 신중함을 잃고 있었다.

자유당 말기에도 당내에는 이재학 의장 등 온건-합리파가 있었다. 유신 정부에서도 차지철의 “캄보디아에서는 3백만 명을 죽였다”는 강경 진압론에 대해 “저건 좀 심한데...”라고 우려한 인사들도 있었을 것이다. 5공 정부가 6. 29 민주화 선언으로 전환한 데도 강경론과 온건론의 긴박한 내부논쟁이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사례에서 똑같이 목격되는 것은, 정권 내부의 분위기가 일단 강경 일변도로 잡히면 상황은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외통수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으로 극적으로 되살아난 경우도 전혀 없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상황임엔 틀림없다. 자칭 ‘진보’ 정권이 지금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심히 안 된 일이다.

조국이 대체 뭐기에 그러는가? 자칭 ‘진보’가 왜 조국 하나에 목을 걸어야 하는가? 그가 그렇게 유일무이한 존재인가? 언제부터 자칭 ‘진보’가 그렇게 일개인에게 묶여버렸는가? 자유당 전체가 이기붕 한 사람에게 몰빵 했다가 꽈당한 것에서 역사적인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자칭 ‘진보’도 이젠 퍽 늙어버린 모양이다. 경직된 586, 그들은 이젠 한 개 초조해진 기득권 집단일 뿐인가?

‘진보’ 정부는 결국 궁지에 몰렸다. 자초한 일이다. 한일 군사정보협정(GSOMIA)를 파기하는 등 ‘조국 정국 탈출’을 위한 묘기(妙技)를 부리기는 하지만 별수 없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소미아가 뭔지는 몰라도 조국 사태가 자신들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조국 일가 이야기를 들으며 정유라를 연상하는 민심, 지소미아 파기는 이 민심을 둔화시키는 논점이탈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이 정부가 조국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무슨 약점이라도? 하지만 그를 붙들고 늘어지는 한 이 정부의 위기는 좀처럼 가셔지지 않을 것이다.

류근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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