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통 "볼턴 방한 목적은 방위비 요구 때문"..."美내부에서 액수는 조정 불가(non negotiable)"
작전지원, 전략자산배치, 연합훈련 등 4개 항목 등에서 비용 추가된 듯...주한미군 필요성 직접 판단해보라는 의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4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3에서 24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한 목적은, 이전보다 5배 높은 50억 달러 상당의 방위비 분담금을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데 있었다고 중앙일보가 30일 보도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이 같은 내용을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강경화 장관은 (방위비 분담금의) 구체 액수는 협의되지 않았다고 이날 밝혔다.

중앙일보는 미국 워싱턴 외교·안보 소식통의 말을 인용, “미국이 차기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서 한국에 요구할 방위비 분담금 총액을 50억 달러로 책정했다”며, “이는 국무부에서 개발한 새 계산법에 따른 것이고, 액수는 조정 불가(non negotiable)’라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볼턴 보좌관 방한의 주목적은 중동 호르무즈 해협 동참 요구도, 한·일 관계 개선도 아닌 방위비 분담금에 있었다”고 전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소식통이 중앙일보에 전한 정보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증언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4일 볼턴 보좌관은 서울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각각 만났다. 당시까지만 해도 볼턴 보좌관의 방한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갈등에 초점을 두되, 그 연장선에서 한·미 동맹강화 방안과 관련한 차기 한·미 SMA 협상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의 방한은 대폭 증액된 방위비 분담금을 요청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이 있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국내의 한 소식통은 이 문제와 관련, “볼턴 보좌관은 우리 측과의 만남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하면서 증액 필요성을 강조했다”며 “우리가 이 정도로 생각하니 여기에 최대한 맞춰 달라는 뉘앙스였다”고 전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볼턴 보좌관이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라는 취지로 언급했다”면서도 “정확한 수치나 액수를 거론했는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강 장관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부인하며 “지난주 볼턴 방한 당시 원칙적 의견교환이 있었다”며 “구체적 액수에 대한 협의는 없었다”고 국회 외교통상위 전체회의에서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의 분담금 협상 방식과 다른 새로운 미국 측 내부 검토가 있었다”고 밝혀 대미 협상 국면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앞서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과) 볼턴 보좌관의 면담에서 구체적 액수는 언급되지 않았다. 당일 배포한 보도자료에 나왔듯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향으로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는 점만 말씀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2월 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을 정한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에 공식 서명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3월 8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주한미군 주둔비용 가운데 한국이 부담해야 하는 몫을 정한 한미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에 공식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산정했다는 50억 달러는 올해 2월 타결된 1조 389억 원(전년대비8.2%인상)의 5배를 뛰어넘는다. 이미 한·미는 방위비 협상을 두고 시한을 넘기는 등 진통을 겪은 바 있다. 결국 한국은 미국이 관철한 협정 유효기간 1년을 수용하는 대신, 미국의 요구 액수였던 10억 달러(1조 1305억 원)보다 낮은 1조 300억 원대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내부에선 방위비 협상이 교착상태에 이르자,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가 언급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50억 달러는 지난 협상에서 신뢰를 잃은 한국에 주한미군 주둔의 필요성을 스스로 판단해보라는 압박의 의미로 책정됐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도 분석된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대선후보시절에는 한국과 일본을 ‘방위비 무임승차국’이라 표현한 만큼, 이번 방위비 인상은 일본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본은 2016년부터 5년 동안 적용되는 주일미군 방위비를 매년 약 20억 달러가량을 내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책정한 50억 달러가 협상을 앞둔 기선제압용이더라도, 일본 사례를 고려하면 내년 한미 방위비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다.

미국 정부가 50억 달러를 산정한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 협상에서 ‘작전 지원 항목’을 추가하며 이전보다 더 많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바 있다. ▶전략자산 배치 비용 ▶장비 순환배치 비용 ▶연합훈련 비용 ▶주한미군 역량(준비태세) 강화 비용 등 4개 항목으로, 당시에는 한국이 이를 거부해 최종 합의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새 협상을 앞두고 백악관이 산정한 50억 달러에는 이 항목들이 재차 포함됐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주한미군의 전력 유지 및 건설 비용을 과거보다 대폭 늘리고, 주한미군 자체 훈련 비용도 대거 늘려 책정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비용을 방위비 분담금에 추가했을 가능성도 높다.

워싱턴 소식통은 중앙일보에 “기본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에는 주한미군뿐 아니라 본토의 미군 자산도 한반도 방위를 위해 쓰이고 있지 않으냐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유사시 한반도에 투입되는 증원 전력 비용까지 추산해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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