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일 칼럼] 억지와 궤변의 역사관이 나라를 뒤집고 있다
[류근일 칼럼] 억지와 궤변의 역사관이 나라를 뒤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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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기에 일어나는 역사관 전쟁
대한민국 건국사를 누더기 만들고
여순 반란을 여순 항쟁으로
인천상륙전의 ‘주민 피해’ 부각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되는 건 시간문제
류근일 언론인

소련이 해체되고 과도기를 지나 다시 푸틴의 권위주의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통을 받은 것은 애꿎은 러시아의 근현대사였다. 권력투쟁은 이데올로기 투쟁이고 이데올로기 투쟁은 역사관과 역사서술 투쟁이이기 때문이다. 소련이 해체되자 러시아 역사학계엔 ”볼셰비키 혁명은 역사의 필연(inevitability)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레닌, 스탈린 시대를 지배했던 헤겔-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허무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볼셰비즘이 끝난 시기의 글라스노스트는 오래가지 못했다. 새로운 차르(황제) 푸틴이 등장하면서 러시아 현대사는 다시 푸틴 제국의 영광을 찬미하는 목적론적 역사관으로 포장되었다. 스탈린의 독재는 미-소 냉전 때의 미국의 도전을 막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푸틴은 그런 불가피한 선택의 연장선상에 있는 오늘의 계몽전제 군주라는 식이다. 

푸틴 스스로 역사교사들 앞에 서 이렇게 설파했다. “러시아 역사엔 약간의 문제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점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경우는 오히려 덜한 편이다. 혹독함에서도 러시아는 훨씬 덜하다. 우리에게 죄의식을 강제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 권력집중의 스탈린 통치는 시대의 요청이었다는 뜻이다. 푸틴의 어용 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는 이런 관제 이데올로기를 ‘주권적 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라고 불렀다. 골바초프는 러시아의 안보 벨트, 동구를 포기한 실패작으로 격하되었다.

역사를 뒤집고 뒤트는 작업은 혁명적 정권교체기에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과거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주민의 머리에서 지우고 새 지배집단에 대한 찬미와 찬양을 대신 불어넣고 새로운 국가 어젠다에 역행하는 관념들을 새로운 역사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작업은 부인(否認, denialism)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과거사를 없었던 것으로 치거나 간과해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이 문화 패권주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식으로, 역사를 새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맞춰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 경우 대개는 국수적-배타적 민족주의가 동원된다. 그러면서 지나친 단순화로 간다. 흑백, 좋은 x 나쁜 x, 선과 악, 정의와 적폐(積幣)를 첨예하게 나눈다. 그리고 배외(排外)주의 캠페인을 한다. 오늘의 한국에선 친일(親日)몰이가 예컨대 그런 것이다. 

오늘의 한국 ‘촛불혁명’ 시기에도 똑같은 역사전쟁이 불붙고 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대한민국 건국사가 누더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찬탁은 민족통일이고 반탁은 반통일 꼴통이란다. 신탁통치를 했더라면 좌-우 합작 정부가 섰을 것이고, 좌-우 합작은 반드시 좌익 독재로 넘어간다는 게 1940년대 후반 동유럽의 교훈이었다. 이승만 박사와 김구 선생이 이걸 통찰하고 반탁운동을 벌였기에 그나마 남한 지역만이도 간신히 공산주의로부터 건져낸 것이 바로 대한민국 건국사다. 이게 잘못 됐다니, 그럼 어쩌자는 것인가?

여순반란 사건 때 사형을 당한 인물들을 재심해주기로 대법원은 결정했다. 그 만한 법리적 근거와 이유가 있을 것이긴 하다. 그렇다고 여순 반란을 여순 항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과연 대한민국이란 기준에서 합당한 일일까? 제주 4. 3 사태를 ‘최초의 통일운동’이었다고 한 사학자도 있었다. 6. 25는 남침 아닌 북침이라더니 이제는 인천상륙작전의 월미도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자는 조례가 생길 판이다. 피해자들은 물론 유감스러운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인천상륙작전을 안할 수는 없지 않았나? 

전쟁의 가해자란 점에서는 6. 25 남침을 자행한 김일성이 원조이자 원흉이다. 인천상륙작전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주려면 먼저 6. 25 남침을 일으킨 김일성과 그 후계자 김정은에게 청구서를 들이밀어야 할 일이다. 진주만을 기습한 일본을 탓하기 전에 미국이 일본 땅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만 탓하는 식이다. 먼저 때린 자는 내버려두고 얻어맞은 자가 반격을 한 것만 나무라는 게 과연 공정한 논리인가?

억지와 궤변의 역사인식이 성행하고 있다. 유엔이 “대힌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합법정부다”라고 결의한 것에 대해서도 “그건 남한지역에만 해당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런 주장은 북한 노동당 강령이 “전체 조선반도에서 주체혁명을 완수하고...”라고 하는 데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모든 게 거꾸로 가고 있는 요즘이다. 태영호 전 북한 공사를 체포하겠다는 해프닝이 있질 않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하는 국방장관이 나오질 않나, 박왕지 씨 피살을 ’남북관계의 통과의례“라고 한 사람이 통일부 장관 내정자로 나서질 않나, 이러다간 대한민국 대통령도 ‘남측 대통령’으로 영영 굳어지고 태극기도 인공기가 그대로 있는 가운데 한반도기로 영영 바뀌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나라가 나라답지 않게 되기란 한 순간의 일인 모양이다.

류근일(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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