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칼럼] 대한민국에서 기업가로 산다는 것
[남정욱 칼럼] 대한민국에서 기업가로 산다는 것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몇 달이 지났는데도 이 사진만 보면 짜증이 난다. 지난 7월 인도 뉴델리에서 있었던 삼성전자 노이다 공장 준공식 사진이다. 사진 중앙은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다. 그렇다면 존경해 마지않는 문재인 대통령의 왼쪽은 누구일까.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옆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그 다음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었고 이재용 부회장은 세 번째였다. 외교부는 영어 말고는 아는 게 없어 그렇다 치자. 대체 세계 최대 모바일 공장 신규라인을 갖추게 된다는 노이다 공장과 ‘중소’ 벤처기업부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일까. 그 언행이 안드로메다 급으로 심히 우주적이어서, 존경을 안 할 라야 안 할 수 없는 문재인 대통령이 자기 옆에 서라고 해도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개념 없는 돌 머리는 아닙니다.” 고사했어야 한다. 이런 행사에서 자리 배치는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다. 이 자리 배치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인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직유법으로 보여준다(잔치를 열었더니 식객들이 기어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그 자리가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짜증만발이었을 것이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존경할 것을 생각하면 기쁘다 못해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문재인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인도에만 갖다 바치지 말고 한국에도 투자 좀 하라고 했다. 같은 시간 한국에서는 검찰이 삼성전자(이사회 의장 사무실)를 신나게 털고 있었다. 언행 비 일치도 이 정도면 재능이다.

지난 9월 평양방문 때는 북한에서 경제를 담당한다는 리용남이 이재용 부회장을 대놓고 조롱했다. 리용남은 이 부회장에게, “여러 측면에서 아주 유명한 인물이던데”라고 운을 뗀 뒤 평화 번영 통일을 위해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길 바란다며 경제협력을 요청했다. 이 말을 풀어쓰자면 “비록 다각도로 과오는 있었으나 앞으로 조국 통일 관련 사업을 위해 매진해 주기 바란다. 이상!”이 될 것이다. 이게 요청하는 자의 자세인가. 이렇게 함부로 말을 뱉는 심리적인 기저에는 경제에 대한 정치의 자신감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너는 기업을 하고 있지만 나는 정치를 하고 있거든. 겪어봐서 알겠지만 너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니야. 누가 판을 끌고 가는지 잘 판단하고 행동하란 말이다’라는 말을 에둘러 한 것이다. 리용남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북한 경제의 수장이라면 이재용 부회장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었다. 남한 정치인들을 윗목으로 밀고 이 부회장을 아랫목에 앉히며 깍듯하게 굴었어야 했다. “이재용 선생, 그 동안 무개념 종자들 때문에 고생 많으셨지요? 공화국은 선생의 뜻 있는 결단과 투자를 희망합니다.”라고 공손하게 말했어야 한다. 아마 그랬더라면 남한 쪽 정치인들도 어, 이거 봐라 하면서 찔끔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이 대목에서 나는 대한민국의 좌익과 북한 전체주의가 ‘우리끼리’를 외치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둘은 같은 것이다. 생각하는 바도 같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같다. 같으니까 그토록 편하고 쉽게 ‘우리끼리’라는 말을 태연하게 해 대는 것이다.

남북 ‘우리끼리’가 공유하는 이 정서는 대한민국이 아직 봉건성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몸은 21세기를 살고 있으면서도 머리는 19세기 무렵에 머물러 있다. 봉건 잔재가 하나도 가시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관官은 민民에게 봉사하는 직종이라는 생각이 없다. 민民은 그저 관官이 지도하고 지시하며 가끔 때리면서 이끌어가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 관官이 대체 어떤 생각으로 자기와 세상을 바라보는지 이야기 해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사법 연수원에서 한 대법관은 이런 요지의 강연을 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특히 언론을 경계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학교 다닐 때 1,2 등을 하신 분들이지만 기자들은 3,4 등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다보니 법조인에 대한 자격지심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문장만으로는 말의 온도를 알 수 없기에 이게 정색하고 한 말인지 아니면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한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중에 유골이고 지나가는 말에 진심이 담겨있는 법이다. 나는 이 말이 절대 농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의 DNA에 뿌리 깊게 새겨진 사농공상 질서에 대한 확신은 결코 쉽게 지워질 성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에 대해서도 이 정도인데 다른 직종에 대해서라면 어떨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만들고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은 이들에게 여차하면 손 봐 줄 수 있는 ‘아랫것들’이고 툭하면 재벌을 두들기는 행태 역시 끈질긴 봉건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소생의 생각이다. 대한민국, 참 살기 힘들다. 돈도 눈치 보며 벌어야 하고 잘 사는 것도 표 안 나게, 몰래 잘 살아야 한다. 표 안 날 수 없는 기업인들은 그래서 많이 불쌍하다. 자기 땅에서 자기 노력으로 힘들게 돈 벌고도 눈칫밥을 먹고 있다.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3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