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민 객원기자
정지민 객원기자

 

'탄핵 정변'이 한창 진행 중이던 작년 2월 22일 방영된 MBC의 PD수첩에서는 태극기 집회에 돈을 받고 참가했다는 한 인물을 모자이크 처리하여 인터뷰하였다. 이 인물은 ‘탈북민은 2만원, 일반 시민은 5만원, 추운 날은 조금 더 받는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종종 그러했듯 악의는 충분하나 철저하지 못한 방송이었다. 해당 인물이 일명 노란색의 세월호 리본을 가슴팍에 달고 있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던 것이다. 세월호 사고 발생 후 7시간의 행적에 대한 온갖 음해성 추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여론조성을 위한 여러 루머의 주축을 이룬 바 있고, 따라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던 당시의 태극기 집회에 세월호를 기리는 리본을 달 만한 인물이 집회의 취지에 공감하여 참가하였다거나, 관련해서 사실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상식적인 결론이다.

약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돈을 받고 태극기 집회에 나갔다는 폄하적이고도 실체가 없는 주장이 무색하게도,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오히려 성금을 내가면서 참여했다는 사실이 공권력의 손을 통해 직접 공개되었다. 약 2만 명의 시민들의 계좌정보를 열람한 것이다. 이러한 개인정보 요청은 생각해보건대 형사소송법 제 199조 제1항, “수사에 관하여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 그리고 제2항의 “수사에 관하여는 공무소 기타 공사단체에 조회하여 필요한 사항의 보고를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에 의거한 것이라고 보인다. 동시에, 개인정보보호법은 은행과 같은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상황 중 하나로,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를 지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8일 이주민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다음과 같은 발언들을 하였다. "회원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를 확인”, “개인 식별을 위해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만 확인했다"며 "이것도 영장을 통해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서 살펴봤다”, “후원금을 낸 시민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은 것이 아니다. 회원인지 아닌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기초자료일 뿐이지 개인정보 유출 문제 또는 무분별한 개인정보 확인 등은 아니다”. 동시에, 영장을 발부받아서 정당한 절차를 따랐다는 취지의 발언도 하였다. 정리하자면, 수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민 개개인의 계좌열람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경찰은 그 시민들이 수사의 대상은 아니라고 하였다. 수사 대상은 아니나 수사에 관련되었다는 막연한 범주에 넣어서 계좌 열람을 하였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나름의 떨떠름한 해명인 셈이다.

위 사건은 몇 년 전 동일한 방식으로 경찰에 의한 계좌 열람을 당한 한 지인의 경우를 떠올리게 한다. 그 역시 개인계좌의 열람이 발생한 후 수 개월이 지나서 정보를 제공하였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의 경우는 상조보험 사기의 피해자였는데, 피의자의 계좌 내역만 보아도 피해자가 입금을 정기적으로 한 사실이 있는데, 왜 굳이 피해자의 계좌까지 열람했는지 의아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굳이 이해를 하려고 노력해보자면, 경찰의 입장에서는 그 피해자가 정말 피해자인지, 또는 피의자와 결탁, 모집책으로 활동하면서 입금을 한 공모자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진정한 피해자들로부터 입금을 받아서 피의자의 계좌로 송금한 것이 아니냐는 일말의 의심이 있어서 확인해보았을 수 있다. 거기에 비추어 보면, 경찰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다른 곳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흔적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찰청장의 해명에 따르면 입출금 내역이 아닌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를 확인하였고 동시에 단체의 “회원인지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찰청장에 의해 공개된 사항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앞뒤가 딱 맞지 않는 모양새다. 시민들이 수사의 대상은 아니나, 수상에 관하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 요청을 했고, 그럼에도 단체 회원 가입 여부, 그리고 이름 등의 개인정보를 알기 위해서 하필이면 계좌를 조회했다는 것이다. 조사를 하더라도 누구나 수긍 가능한 이유를 대야 마땅한데, 실패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얼마 되지도 않은 문재인 정권 하에서, 대통령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비판적 발언으로 실직하거나 고소를 당한 경우를 여러 번 목격한 바 있다. 따라서 개인의 발언, 언론의 자유는 이미 제대로 서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편파적인 제도권 언론들은 거짓에 근거하여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을 돈 받고 나오는 이들로 폄하하는 등, 당시 탄핵 추진 세력의 입맛에만 부합하는 내용들을 방영하였다. 언론이 개인들을 탄압하는 것이다. 대통령 신년사에서는 촛불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국민은 아예 배제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이 나라의, 이미 훼손된 자유공화주의의 모양새나마 유지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는 무엇일까. 그것은 투명하고 보편적으로 수긍 가능한 절차라고 본다. 공권력이 편파적으로 수사에 필요한 대상을 정하더라도, 최소한의 이해 가능한 명분과 그에 따른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무너진 것이다.

정보공개 또는 조회와 관련하여 반드시 있어야 할, 투명한 절차라는 것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은 최근 개인적으로도 목격한 바 있다. 얼마 전, MB 정권 하에서 국정원이 한 시민 단체장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을 취소해달라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필자는 영문으로 된 그 서신을 최종적으로 수정한 사람으로서, 국정원과 직접 연락한 적이 일절 없다. 단지 친분이 있는 기자가 그 서신의 영문을 봐달라고 하여 목적과 격에 맞는 영문으로 수정해주었고, 해당 기자는 시민단체장과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누구인지 당시에 들은 바도 없다. 수고비도 일체 거절했다. 따라서 계좌 조회를 통해 필자가 관여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필자가 최종 번역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군소 좌파 언론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 기자와 필자의 이메일 계정 압수수색이 아니고는 검찰에서 알 방법이 없는데, 어디서 정보가 샌 것일까 생각해보면, 현재의 국정원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만일 검찰에서 조회한 것이라면 최소한의 영장발부 등의 절차는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최소한의 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개인 이메일 내용에 드러난 정보를 열람하고 또 공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태극기 집회 참가자 계좌 조회에 관해서도 공권력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끔찍하게도, 우리는 지금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 공정하고도 일관된 절차라는 것이 점차 없어져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정지민 객원기자(2008년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왜곡을 폭로한 번역작가)
jjm@pennmike.com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