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정치는 친구와 적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이다
[김영호 칼럼] 정치는 친구와 적을 분명히 구분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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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적은 경쟁 대상, 군사적 적은 궤멸 대상...南北관계, 경쟁관계 아니라 적대관계
북한은 대한민국의 생존 위협하는 ‘실존적(實存的) 적(敵)’
4·27판문점 선언, 文대통령의 8·15경축사 모두 '민족공조론'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
北核 문제 전혀 진전 없는 상황에서 文정부 과속, 韓美관계 긴장상태로 몰고 갈 것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

정치는 친구와 적을 구분짓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유명한 정치사상가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에 관한 정의이다. 정치는 선과 악의 구분을 중시하는 도덕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적 사고,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분하는 미학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독자적 영역을 갖고 있다. 정치를 우적(友敵)관계로 규정하는 그의 정의는 우리에게 ‘지적 쇼크’를 준다. 정치는 친구가 누구이고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거기에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한국 국내정치와 남북관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가 말하는 우적(友敵)관계는 개인적 원한 관계가 아니라 우리와 남으로 구분되는 집단적이고 공적(公的) 차원의 의미이다. 여기에 덧붙여 ‘적’(敵)은 ‘정치적 적’과 ‘군사적 적’ 두가지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적은 경쟁의 대상이고 군사적 적은 절멸 혹은 궤멸의 대상이다. 국내정치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같은 정치이념을 신봉하고 딛고 서 있는 여당과 야당의 관계는 정당한 ‘정치적 경쟁 상대’로서의 적이고 궤멸의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는 보수궤멸론과 적폐청산론에서 보는 것처럼 상대 정치세력을 ‘군사적 적’으로 보는 극한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군사적 적대관계에 해당되는 것은 정치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관계이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이고 북한은 전체주의체제이다. 북한 노동당 규약은 남한을 혁명적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그 혁명에 걸림돌이 되는 남한 국내 세력을 ‘원수’라고 부른다. 북한이 말하는 원수가 바로 군사적 적에 해당된다. 이때 북한이 말하는 원수로서의 적은 절멸 혹은 궤멸의 대상이다.

북한은 수십개 핵무기를 갖고 대한민국의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실존적(實存的) 적(敵)’이다. 여기서 실존적이라고 하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라는 의미이다. 이런 북한의 실체가 ‘종족적 민족’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북한이 집요하게 내세우는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론이라는 선전과 선동은 북한이 우리의 실존적 적이라는 의식을 마비시킨다. 4·27판문점 선언과 문재인대통령의 2018년 8·15경축사는 모두 민족공조론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치를 우적관계로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갈등의 존재를 그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등의 존재는 폭력의 행사 가능성을 수반한다. 그런 양상은 중앙정부가 없는 무정부상태인 국제정치현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국은 제국적(帝國的) 위상을 갖는 강대국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구한말부터 지금까지 이들 사이의 패권전쟁이라는 고래들 싸움에 등이 터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제정치를 빼놓고 생각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문재인대통령은 건국 이후 70년간 대한민국이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 하에서 정치발전과 경제적 번영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다. 그는 2018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국은 남북관계 개선을 북핵 문제 진전과 보조를 맞추어줄 것을 문재인정부에게 수차례 요구해왔다. 한국은 이런 요구를 뿌리치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북핵 문제가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과속(過速)은 한미관계를 긴장상태로 몰고 갈 것이다.

남북관계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적대관계이다. 우리와 정치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북한이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에서 전쟁과 갈등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를 갈등 없는 상태로 보는 비현실적 사고가 팽배하다. 평화에 대한 이런 잘못된 인식은 대북한 유화정책(宥和政策)을 낳고 한미관계를 악화시킨다. 한미동맹은 대북한 위협인식을 공유할 때 유지될 수 있고 대북한 억지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문재인정부 하에서 그 위협인식에 커다란 괴리감이 생기면서 한미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가 적이 누구인지를 선택하지 않으면 적이 우리를 적으로 규정하여 궤멸시키고 절멸시킬 것이다. 북한은 남한을 엄연히 타도의 대상인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국방부가 국방백서에서 주적 개념을 삭제한다고 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적관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행동하는 집단에게 그렇지 못한 집단은 패배하거나 잡아먹히고 만다.

북핵 문제 해결에 아무런 진전이 없는데도 북한에 퍼주기 위해서 4·27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밀어붙이려는 문재인대통령과 여당의 무리수는 납득하기 어렵다. 상식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그런 국회 비준 요구는 핵을 가진 북한에게 굴복하여 조공(朝貢)을 갖다 바치려는 굴종적인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는 적폐청산도 슈미트의 이론틀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적폐청산은 우적(友敵) 개념 구분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문재인대통령이 국내정치와 남북관계에서 완전히 다른 적(敵) 개념의 구분을 혼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민족공조론의 안경을 쓰고 남북관계를 보는 문재인대통령에게는 남북관계가 적대적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포착되지 않는다. 그의 대북 유화정책에서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는 자기기만적 편향성마저 역력히 드러난다. 문재인대통령의 적폐청산과 개헌이 북한과 연방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무리수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식으로 국내정치와 남북관계에서 우적관계를 혼동하면서 적폐청산과 반미노선(反美路線)을 계속 밀고나갈 경우 세금주도성장의 완전 실패에 따른 경제 파탄과 함께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한미관계는 앞으로 악화일로를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호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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