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샘의 교실이야기 22] 2018 교실을 향한 ‘586’의 자소서
[유니샘의 교실이야기 22] 2018 교실을 향한 ‘586’의 자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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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다했다면 부채의식 아닌 당당함으로 살자
역사는 현재진행형...과거에만 매몰되어선 안 된다
‘패션’만으로 살기엔 해야 할 일이 더 많아
진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아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기말고사까지 마치고 여유가 생긴 수업시간. 날씨는 더워지고 긴장감은 느슨해지고. 학기말이야말로 교사들이 수업하기에 가장 힘든 시간이다.

한 학생이 신문을 가지고 발표하다 ‘6・29선언’과 민주화를 들먹였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느냐고 물었더니 부모님께 들었다고 했다. 시민들이 쟁취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 아니었느냐고 되려 필자에게 반문했다.

광장에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생각을 집단으로 표출하고, 그렇게 얻어낸 것이야 말로 값진 민주주의라 믿는 신념은 다시 ‘촛불’로 대를 이을 것이 뻔해 보였다. 그런 생각은 ‘광장에 쏟아져 나온 집단이야말로 민주화의 주력’이라 확신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리 오래 살아온 삶은 아니어도 바로 그 역사적인 시기를 살아온 필자의 이야기가 혹시 역사의 증언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늘은 날도 더운데 옛날이야기나 해줄까요?"
"와와! 선생님 센스 짱짱맨! 좋아요!"

● 최루탄 연기 속에서 고교 졸업. 최루탄 가스와 함께 대학 생활.

“선생님은 재수 안한 82학번입니다. 고 1때 10・26이 났고, 고2 때 5・18이 터졌어요.”

나이를 계산하느라 분주한 눈치였다.

“헉. 선생님 우리 엄마보다 나이 많으시다!”
“명동 성당 바로 옆의 학교를 다닌 통에 그 무렵엔 하루도 빠꼼할 날이 없었습니다.

최루 가스와 시위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지켜보며 고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들어가니 소위 운동권이 맹위를 떨쳤어요. 선생님은 여대를 다녔지만 총학생회 학생장은 남학생처럼 짧게 커트머리를 하고 두루마기를 입고 걸쭉한 목소리로 학우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대학 1년.

고 3때 광주에서 ‘5・18’을 지켜보고 입학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며, 우린 다 같이 숨을 죽이고 마른 침을 삼키며 공포와 분노에 전율했습니다. 최루가스를 피하려고 얼굴에 치약을 바르고 랩으로 감는, ‘이독치독’의 ‘최루 가스 피하는 법’을 체득해가며 대학을 졸업했지요.”

책에서 글자로 익혔던 현대사의 또 다른 장면을 당시의 유경험자인 교사의 입을 통해 듣는 순간, 평소 교과서로 익히는 이야기들엔 심드렁해하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 민주주의를 몸으로 익혔다는 착각의 세대, 586!

“그렇게 대학 생활을 마치고 성인이 되었고, 전두환이란 군인 출신 대통령이 그 다음으로 정권을 물려주면서 또 다시 군사정권을 물려줄까봐, 세계에서도 손꼽힐 막강한 대통령 권한이 명시된 헌법을 재현 할까봐 시민들은 그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국민들이 원한 것은 ‘5년 단임제’(당시는 임기 7년의 임기와 중임도 가능했음)와 대통령 직선제였지요. 전두환 대통령도 이미 ‘단임제’는 누차 강조해 왔지만, 집접적으로 대통령을 뽑게 되면 당시 집권당에서 대통령을 선출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호헌, 즉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헌법’을 그대로 지키겠다고 한 거였어요. 그러니 시민들은 헌법이 고쳐지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던 거지요.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뽑는, 당시의 헌법을 보호하려는 생각(호헌)에 반대하며 ‘호헌철폐’구호를 외치면서 거리에 쏟아져 나온 거에요. 대통령의 집권 기간을 줄이고,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인파는 서울의 광장마다 종로, 퇴계로 을지로 등 중앙의 대로를 가득 메웠고, 부산도 중앙동과 부산역, 서면 거리까지 가득가득 시민들로 가득 찬 뜨거운 6월을 보내게 된 거랍니다.

넥타이를 맨 시민들로부터 교수, 학생 등에 이르기 까지 시민들의 저항이 거셌고, 당시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선언한 것이 이른바 ‘6・29선언’이었던 것이지요.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고,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보장하고, 김대중 씨 등 정치범을 사면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시민들의 광장에서의 강력한 저항은 자신들이 워하던 것들을 쟁취하게 됩니다. 이것이 6월 항쟁이었습니다.

1987년 6월, ‘6・29’ 까지.

선생님은 성인이 되어 대학도 졸업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인파를 보면서 나의 두 눈으로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을 목도했습니다. 그렇게 ‘민주화’라는 급류가 바꾸어 놓는 세상을 온 몸으로 경험한 세대가 되겠네요. 그 때 대로를 가득 메우고 쏟아져 나왔던 세대가 바로 ‘5.8.6. 세대’입니다. 지금 50대, 8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대체로 60년대에 출생한.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지켰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엉뚱한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서 그 일련의 사건을 자신들의 뇌리에 각인시켰어요. 그것을 우리는 ‘87체제’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거리에서 민주를 외치지 않았다고 해서 ‘민주 시민’이 아닌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도 ‘그 때 거기’ 있던 사람들끼리는 묘한 동질감과 동지애를 갖게 되었어요. 그것은 역으로 그 자리에서 호헌철폐를 부르짖는 민주시민의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은 왠지 무임승차라도 한 듯한 미안함과 빚을 진 듯한 부채의식을 동시에 가지게 했는데 그것이 오늘 선생님이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채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을 것이건만 말이지요.

그렇게 미안함과 부채의식을 갖게 된 그 연령대 사람들이 나름의 이념지향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확고한 이념지향은 아니고 겉옷을 걸치고 멋스러운 장신구를 걸치듯 그렇게 이념을 드러낸 것이기에, 소위 ‘패션좌파’, ‘패션우파’라 불리우며 그런 멋으로 이념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지요. 그들은 그저 자신도 깨어있는 시민이란 표현만 할 수 있으면 되었습니다. 투표장에서 문득문득 그 부채의식을 표로 행사하면서.”

“그 때 선생님도 거리에서 손을 흔드셨나요?”

아이들은 자기들 선생님의 ‘역할’에 궁금해 했고 ‘87체제’시기 사람들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하는 듯 했다.

“아니요. 난 그때 6월의 절반을 거의 병원에서 지냈어요. 큰 수술을 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건강했더라도 뛰어나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대학을 다닐 때도 그랬고, 목소리를 높여 거리에서 소리만 지른다고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 이어진 설명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그 시절 급류에 떠밀리듯 의식과 현실 사이의 엇박자 속에 당혹스러워 하던 세대는 그렇게 차근차근 세월을 건너왔고 이 나라의 구석구석에서 허리의 위치에 있게 되었다. 그다지 탁월하지 못했던 필자는 어정잡이로 공부하고 어정잡이로 직장인이 되어 이렇게 ‘지금 여기’ 교사가 되어 여러분 앞에 서있다. 그러나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게으르지 않으려 애쓰고 살아냈고, 세월 앞에 감히 자신 있다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으려 몸부림쳐 왔다. 그리고 그 시간이 쌓여 지금 여기에 있게 된 것이다. 최고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부채의식’ 따위는 없다. 최선을 다했다. 나보다 잘나고 유능한 사람이 부러운 적은 있어도 그를 미워하거나 질시로 증오한 적은 없었다. 나 보다 돈이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은 꼭 그 만큼의 신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이라 여기며 존경하며 살아왔고, 지력이 높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또 그대로 배우고 존경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각자 자신의 탈랜트가 다르게 주어졌을 뿐이다. 각자 제게 맡겨진 일을 위해 땀흘려온 시간에 ‘부채의식’을 가질 이유는 없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옛날이야기’에 간혹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이들도 있고 간간이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 ‘586세대’가 지금 알게 모르게 욕을 먹고 있으며 자신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를 ‘착각’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해야 했다.

● ‘촛불세대’는 ‘87세대’의 재연,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떼거리 민주주의만 대물림 할 수는 없다.

지금 50대, 8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대체로 60년대에 출생한 ‘586세대’는 집단의 힘으로 체제를 바꾸었고, 대중의 에너지로 무엇인가를 성취해본 경험을 늘 상기하면서 그러한 힘이 저항정신이고 정의롭다는 비약을 줄곧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광장에서 비이성적 물리력으로 쟁취한 것들은 또 다른 물리력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도무지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작년부터 이어진 작금의 현실은 어쩜 집단의 힘에 도취된 채 정권을 잡았던 ‘87세대’가 이 정권을 노리던 ‘87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은 아니었을지.

지난해 광장에 모여 촛불을 치켜들었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그 ‘586 세대’들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본다. 심지어 정권을 잡아 그들과 한통속이 된 지금의 집권층들 중에도 꽤나 있을 테다. 그러고 보니 온통 586의 원죄다!

그러한 ‘자기파괴적 힘’을 맛본 사람들은 충분히 그 대중적 에너지가 휘몰아치며 쓸어내는 광기의 성취감이 충만해져서 역사적 주체의식을 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감히 ‘광기’란 표현을 쓰는 것이 무리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단두대가 등장하고 온갖 욕설과 무력이 난무하는 광장의 모습을 지난 해 우리는 목도했다. 그 ‘떼’의 모습을 광기 말고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87체제’에서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로 무장하여 자신들의 뜻한 바를 이루어낸 집단 속에는 ‘숙려하고 고뇌하는 개인’은 없었다. 반자유주의적인 혹독한 ‘광기가 번득이는 집단’만 있었다. 그렇게 사회 구석구석 소위 사회 지도층에서 광장의 일개 시민에 이르기까지, 넥타이부대에서 촛불로 이어진 ‘광장민주주의’는 그것이 마치 직접민주정치의 결정체인 듯 착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필자는 지금도 진행 중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하게도 대한민국은 간접민주정치를 주로 하는 대의민주정치 국가인 것이다.

한편으로 치열하고 또 성실하게 살아낸 개인으로서의 시민들은 ‘주류’가 아닌듯한 소외감에 시달리며 지금 위태롭게 서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고 있다. 아울러 직접 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님도 알고 있다.

이제 ‘586’들은 ‘지대 추구’를 하던 고약한 버르장머리도, 노력에 비해 많이 누린 행운도 이젠 내려놓고 바통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집단의 힘에 매몰시킨 비이성이 준 현실마비의 환각이 꿈처럼 짜릿하고 ‘로빈훗이 된 듯한 착각’을 안겨줄 수 있었을지 몰라도 이젠 꿈을 깨고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정녕 그 꿈을 영영 깨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이 시대를 가는 것이 힘들다면 다음세대를 위한 ‘자명종’은 깨어있는 586, 우리가 울려야 할 것이다. 586이라고 똑같은 586은 아닐 것 이것만 한꺼번에 같은 시대로 취급당하는 것이 억울해서라도 각자 자기선 자리에서 자신이 지켜본 현대사의 진실을 고백하고 또는 반성하며,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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