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때 반대했던 박정희를 나이 들며 재발견했다[송명자] ... 좌파 탈출기⑭
20대때 반대했던 박정희를 나이 들며 재발견했다[송명자] ... 좌파 탈출기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전형적인 아줌마,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 경험
박정희 덕분에 돈 벌었지만 대학생들 시위 보며 박정희 비난
한때 노무현에 환호해 '노빠'가 되기도 했다
나이 50 넘어가면서 한국인 빈곤탈출시킨 박정희의 업적을 깨닫다
송명자 씨.

1. 본인의 성장배경

본인은 1959.9.8(주민등록상 1960.04.01생)일생으로 대한민국 전형적인 아줌마입니다. 매우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서 실제 태어난 날 다르고 출생신고한 날이 달라 이들을 꼭 구분해서 기억해야만 했습니다. 조선말 조상님들이 큰 벼슬을 하여 서울에 거주하다가 다소 많은 땅을 하사 받아 자리 잡은 곳이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인근에서 태어나서 어렵지만 곤지암에서 상업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 회계지식을 기초로 하여 직장생활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에서 독학을 하며 나름 건전하게 열심히 살아오며 1988년에 평범한 직장인을 만나 결혼도 하고 한 가정을 꾸려오며 어렵지만 현재에도 회계공부를 한 인연으로 현재까지 중소중견기업의 회계총무담당업무를 하며 아직까지 사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조상님들 덕택에 부자는 아니었지만 보통은 조금 과하다 싶은 정도의 농지를 소유 할 수 있어 배고픈 사연까지는 모르고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선대 때부터 소유 경작 해 온 농지에 부모님들께서 추가로 구입한 토지들로 인하여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 요지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계획적으로 군청과 당시 토지문서를 보관하고 있던 용인 세무서가 폭격당하는 과정에서 토지관련 문서들이 모두 불타 없어진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서울인근에 수많은 농지 소유권 관련하여 수많은 법적분쟁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말부터 대대로 소유경작 하던 농지들도 6.25때 집이 불타고 피난길에서 공무소가 북한군에 의거 불에 타 버린 상황을 악 이용한 땅 소유권다툼이 매우 많았었습니다. 그때에는 당시 조선총독부가 보관하고 있던 토지조사부(토지원천취득문서)를 정부가 공개하지 않아 토지 원천취득의 입증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이를 이용하여 입증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전쟁 후유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라면서 조부 및 부모님들로부터 일제 강점기의 국민들이 나라를 잃고 핍박 받은 사실들은 물론 6.25전쟁의 실상을 수없이 많이 몸에 생긴 상처를 확인하고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기면 겪게 되는 슬픔 핍박 및 전쟁 후유증 등 국민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 것인지 개인적 차원에서 많은 것들을 검증하며 살았다 할 것이어서 그동안 국가로서 국민들을 전혀 보호해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불만이 매우 크다 할 것 입니다,

따라서 반공을 해야 하고 정치인들은 국가의 안전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살아왔고 남북이 대체하고 있으면서 그동안 북한진영에서 보여준 크고 작은 일들을 보아왔습니다. 더하여 작은 토지 및 재산이지만 이 토지를 소유관리하며 국토의 소중함은 물론 재산을 지니고 살아가는 길이 어떤 것이라는 것 토지란 것이 매년 끊임없이 생명체를 잉태하여 인간에게 필요한 선물을 제공한다는 원리 한 가정 한 국가가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토지 등의 소중함을 몸소 깨달게 되었고 지금까지 주로 한 기업의 운영시스템 전체를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위치이다 보니 이제는 나이도 나이 이니만큼 국가의 위기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도입니다. 어려서부터 부모님들은 농지를 많이 소유하신관계로 매일 일만 하는 부모님 생신 날 조차도 바뿐 일손들 때문에 건한 생일잔치나 가족여행 한번 못해보고 일만 많은 어린 시절엔 농지가 많은 탓이라며 매우 싫었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2. 반공이념-박정희 독재정권

그러나 당시 절대다수국민들의 절대적인 빈곤상황에서 탈출시키기(즉 굶지 않기)위한 경제발전을 주도하던 박정희 정권은 수많은 대학생들과 야권인사들이 독재정권이라며 모든 것을 부정하며 천하에 몹쓸 정권취급을 하며 밤낮없이 최루탄이 발사되고 일명 데모라는 것이 항시 일어나고 당시 대학가를 지나가려면 조용히 지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시네 곳곳 지방도 마찬가지이고 집회시위현장에 최루탄 가스를 마시는 일은 생활화 되며 많은 부담을 안고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 됩니다.당시 본인은 일명 주경야독을 하며 박정희정권의 수출 드라이브정책에 힘입어 당시 베이비붐 세대들의 일자리가 수없이 만들어 졌습니다. 덕분에 꽤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어 부모형제들에게 여러 가지 경제적인 많은 보탬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곳곳에서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온갖 독재자란 누명을 뒤집어 씌워 당시에는 젊어서 뭐가 뭔지 모르고 따라서 독재를 비판하고 박 정권의 퇴진을 바라며 그들과 함께 보수를 거부 했었습니다. 당시 신문방송은 장악되지 않았으나 곳곳에서 밥 먹듯이 일어나는 대학생들의 데모 시위 거기에 야당 정치인들까지 합세하여 독재정권을 타파해야 한다는 선동이 있었으므로 내 나이 20시절이었지만 아무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나의 무식한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독재 정권 시기에 국민들은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사회자체가 돈 없고 백그라운드 없으면 더욱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에 정치권이나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위압감으로 인한 반감을 가지고 국민들이 살 수 박에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이 하는 데모 등 사회적인 저항의 모습은 마냥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대학생들이 많이 배워 뭔가를 알고 한다고 그런 순수한 대학생들이 독재라 하고 물러가야 한다고 하니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 와중에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대통령 정부를 맞이하게 되었고 말 잘하는 노 전 대통령 그 톡톡 튀는 발언과 뭔가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 행동 등 새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고 꾀 많은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고 매혹적인 지지를 했고 기득권 보수들에게 환멸을 느낄 정도이었습니다. 일명 “노빠”가 된 것이었습니다.그러면서도 김대중 정부에서 부터 서민들에게 많은 부담이 되도록 여러 가지 세금 및 4대 보험 등의 인상 및 개혁이 단행되어 불편한 부분이 있었어도 정권이 바뀐 부분에 대한 고마움뿐이었습니다.

3. 재개발이야기

본인은 1988년 홀어머님을 모시고 살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였으나 이해할 수 없는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하여 1993년 10월경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서울에서 가장 못사는 낙후 된 동네)로 하루아침에 분가를 하게 됩니다. 갑작스런 분가로 인하여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도 양육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를 지내면서도 신길동에 자그마한 주택까지 구입하며 살아가던 중 2006년부터 당시 서울시장 이명박은 신길뉴타운이란 재정비촉진구역 지정 준비를 하게 되고 본인 집도 포함되어 개발 준비를 하게 되자 당시 주민들은 매우 환호하며 6.25이후 처음 맞이하는 개발의 기회이므로 헌집을 새집으로 공동이 토지를 투자하여 새집을 지을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그 당시 감동 그 자체이었습니다. 2006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재개발 문화가 그러했듯이 대형건설사들이 주민들을 이끌고 금전을 살포하며 위법하지만 안전하게 시공사로 선정되어 개발진행을 하려 하였습니다. 즉 위법하지만 미리 각 통반장들과 조직하여 자금을 공급하고 그 자금을 통하여 주민들의 환심을 산 후 결국 건설사들의 엄청난 이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삼아 재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이었습니다. 반면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이익을 침해 받는 구조로 진행되었고 조합원들 자체도 이를 달리 대항 할 능력도 소송비를 마련한다는 경제적기반도 열악하고 재개발지역 주민들 자체가 고령화와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거주하므로 달리 조합원들 스스로 위법한 진행에 대하여 대항하지 못하던 때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조합원들은 사업진행상 위법함을 들어 소송(시공사, 정비사업전문관리업자 및 조합장 임원 대의원 선임무효)을 시작하였고 본인도 함께 성공적으로 소송 진행을 위하여 열심히 보조하였는데 1심을 승소하고 나자 기존 소송원고들은 건설사와 야합하여 항소 대응을 포기하며 원고들이 변심하여 더 이상 소송 진행을 못하도록 부추기는 반대세력을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일부 뜻있는 원고들과 합심하여 항소심 상고심을 진행하여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설사들은 기존 위법한 임대의원들과 공모하여 계속 일을 저지르게 되어 이를 막아내기 위해 현재까지 수 십 건의 소송 진행을 마무리 하였고 현재는 행정소송(정비구역직권해제처분취소)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결국 재개발재건축 상 대형건설사들의 무지막지한 횡포로부터 조합원들 스스로 막아낸 대한민국재개발 역사를 다시 쓴 신길1X구역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이었습니다.

건설사들은 이권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법원의 가처분결정도 무시하고 시공사선정을 재 시도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계속 저지르자 일부조합원들은 계속해서 효력정지 및 직무집행정지등을 진행하자 건설사(3개의 대형건설사)와 관계가 깊었던 통반장을 주축으로 임.대의원 패소 판결을 받은 조합원들이 담합하여 자신들이 끌어들인 3개건설사들의 이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즉 법원판결을 무시하고 이 건설사들을 원상회복시키라며 그렇지 않으면 사업추진을 방해하겠다며 과반수의 개의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도록 뉴타운 망 타운이<자신들이 추진할 때는 뉴타운은 절대적인 꿀단지라더니>라면서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에 힘입어 조합해산을 선동하고 정비구역직권해제를 선동하여 약 5년 간 사업정상화 시작을 방해하며 2017년 3월 31일 결국 이들은 신길1X구역을 직권해제 시키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합설립과정에서 건설사들에게 빌린 돈 약30억 원을 다 쓴 상태이었습니다. 건설사들은 결국 원상회복(대여금 반환)을 이유로 추진위원회 당시 건설사에 연대보증을 선 조합원들의 집을 가압류 하며 소송을 진행하였으나 건설사는 패소하자 고법에서 조합을 상대로 부당이득금반환청구를 하게 되어 건설사가 일부 승소를 하여 대법원까지 마무리하고 현재 직권해제처분취소소송을 진행하고 있으면 절차상의하자로 인하여 승소를 예견하고 있습니다. 돈의 흐름, 이권, 주도권 싸움 및 토지를 이용한 이권개입 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해 보입니다.

4. 결어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진행하며,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6.25이후 더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말살하기 위한 북한의 대남 공작에 대항하며 국민들 대다수를 절대 빈곤 상황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피 눈물 나는 정책을 펴 나아가던 그 심정을 이제 내 나이 50초반에 알게 되어 당시 철없는 못사는 국민들 및 야당 정치인들 때문에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나의 20대 시절에 박 정권의 퇴진을 함께 추구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니 박정희대통령께 너무너무 미안하고 죄송함을 깨닫는 데 30년 이상이 걸렸다는 부분에 대하여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박대통령의 국민들을 위한 영혼이 가득담긴 국가정책을 펴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노력 철없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야당 청치인 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대, 삼성, LG 등을 도와 현재와 같은 굴지의 기업으로 서장시키도록 국가정책을 펼친 안목! 박대통령님!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미안 합니다! 라는 생각에 만나는 이들에게 나의 경험담을 말하며 살아가고 있던 나에게 어느 날 펜앤드마이크의 좌파탈출기 공모전이 눈에 띄어 이렇게 적어 보내게 되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서 쓰다. 국가가 영토를 안전하게 지키고 내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기능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이리저리 시험대에 올려놓고 아니면 말구 식으로 구경할 일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너무 잘 먹고 잘 살다 보니 지금 국민들이 뭔가를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돈의 흐름과 정치적 움직임을 분리 할레야 분리할 수 없고 결국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정권창출과 주도권을 갖기 위한 쇼를 하고 일반국민들은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으니 당연히 선동하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언로도 그 무엇을 위하여 선동하는 일에만 익숙해지는지 걱정입니다.

결론

좌파에서 탈출하기 위하여 30년이 걸렸으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여러 각계각층 지식인분들의 사회적 책임이 무겁다 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언론의 사회적 책임 일부를 펜앤드마이크에서 완성해 주실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송명자(59·중견유통기업 총무회계부장) ssong848@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6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