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전통시장 등의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2011년 12월에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정부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에게 월 2회 휴무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해 왔다.

동법 개정 조항에 따라 거의 모든 지자체들이 일요일을 휴무일로 지정하여 수많은 직장인들이 2012년부터 온라인 쇼핑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정부가 대형마트 의무휴무일 규정을 폐지하거나 의무휴무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이미 소매유통의 큰 흐름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쿠팡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시장으로 넘어가 버려서 이 문제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국내 유통망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주요 대형마트들은 이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는 지역 내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효과는 미미했던 반면 대규모 온라인 쇼핑몰들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자신의 돈을 특정 유통업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에 따라 나타난 부작용이 이렇게 크다면 국민들이 자신의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거나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비효율 역시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 했던 것에 대하여는 얻어내려 노력하지도 않고 크게 불만을 품지도 않는 법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평일에 은행 업무를 볼 수 없어서 불편하다", "주말에 신용카드 회사의 상담원과 통화할 수 없어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불평하면서도 금융기관들에게 주말에도 평일처럼 근무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못 하고 있다.

주5일제 근무를 철저히 준수하는 금융기관들의 방침에 따라 매주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에는 인구 밀집지역의 은행 지점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신용카드 회사의 콜 센터와는 전화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수많은 자사 고객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주면서도 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주말에는 영업하지 않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10년에 걸친 장기계약에 의하여 고정된 금액의 부동산 임대료를 납부하게 되어있는 시중 은행들의 입장에서 지역 내 가장 좋은 입지의 건물 2층에 위치한 은행 지점들을 주말에 비워두는 것은 큰 경제적 손실이라 할 것이다. 은행들이 경비 절감을 위하여 지점의 수를 줄여가야 한다면 같은 논리로 매달 임대료를 지불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공간들은 최대한 활용되어야 한다.

영업시간 증가에 따른 인력 수급의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금융노조원들의 강력한 단결력을 고려하면 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주말 영업은 기존 인력들의 근로시간 연장이 아닌 계약직 신규인력 채용을 통하여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대학 졸업생들 중 은행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 아마도 인문계열 학위를 가진 대학 졸업생들뿐 아니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하여 집에서 잠시 쉬고 있던 소위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금융기관 취업은 공직 진출 등과 함께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나은 몇 가지 대안들 중 하나일 것이다.

전산망을 점검할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심야시간에 수많은 전산 인력들이 철야 작업을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산한 수요일 하루 동안 지점의 문을 닫고 토요일에 영업을 하는 방안도 있다.

주말에 금융기관의 지점을 열어 둔다고 해도 추가적 매출을 올릴 가능성이 낮다? 현재 시중 은행들은 각종 보험상품들을 창구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신용카드 회사들과 긴밀한 제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은행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바쁜 평일에 은행 지점을 찾는 고객들보다는 한가한 주말에 방문한 사람들에게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도록 설득하는 것이 훨씬 용이할 것이다.

불과 15년 전 주요 은행들이 각 지점에서 식품 및 잡화를 판매해서라도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만들었던 시절을 돌이켜 보자. 만약 2017년 이후의 부동산 투자 열풍이 없었더라면 수없이 많은 은행, 증권, 보험사들이 저금리 시대의 낮은 수익률에 적응하지 못 하고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벌어진 대형마트들의 몰락과 온라인 쇼핑몰들의 약진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마트, 롯데마트 등이 한 달에 두 번씩 의무휴업을 하는 동안 쿠팡 등의 직원들은 1년 365일 쉬는 날 없이 고객들의 주소지를 방문하여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들을 문 앞에 놓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해 왔다.

주말 특근을 마다하지 않는 국내 제조업체들과 달리 국내 금융기관들이 앞으로도 주5일 근무 등 기존 관행에 기반한 영업을 지속하는 경우 그 여파가 단순히 고객들이 느끼는 일상 생활의 번거로움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기존 고객들이 느끼던 생활 속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새로운 유형의 기업이 단 하나라도 나타나면 기존 기업들은 예외 없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말로 국내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보유한 미국의 금융 핀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을 견디어 내지 못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주5일 영업이 아닌 주6일 영업 나아가 연중무휴 영업까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국내 금융기관들이 핀테크 기업들과의 경쟁 심화에 따라 운영비 절감을 위하여 지점들을 통폐합해야 한다면 영업시간을 늘려서 고객들의 불편함을 줄여주면 그만이다.

대한민국 기업들의 놀라운 성장은 천재적인 개인의 창의적 사고에 기반한 혁신적 사업 모델로부터 나왔던 것이 아니라 어렵게 확보한 고객들의 각종 불평불만을 해결하기 위하여 직원들이 함께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작은 혁신들이 반복되면서 이루어졌던 것 아닌가?

금융업계가 외국어 능력 강화, 금융 신기술 도입 등 조직 내부 논리에 따른 금융 혁신을 우선시하면서 기존 고객들의 일상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려는 노력은 경시한다면 국내 은행, 증권, 보험, 카드사들 역시 오늘날 대형마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못지 않은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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