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잠시 좀 실례하겠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취미인 A씨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라이딩을 마친 후 귀가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집 어귀에 도착했을 즈음 평상복 차림의 남자 두 사람이 A씨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가? A씨를 멈춰세운 남자 두 사람은 자신들을 일대 관할 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라고 소개하며, 최근 접수된 자전거 도난 신고의 용의자 인상착의와 A씨의 인상착의가 비슷해 몇 가지 물어볼 게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도난’에 대해선 알지도 못하는 A씨,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데…….

경찰관이 행인(行人)을 멈춰세우고 직무상 질문을 하는 행위를 ‘불심검문’(不審檢問)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대와 경찰에 대한 문민(文民) 통제가 강화된 이후로는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불심검문’을 경험하는 것은 드문 일이 됐다.

하지만 지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중국발(發)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기, 문재인 정부가 서울 도심 일대에서의 집회·시위 개최를 원천 봉쇄하면서 경찰은 특히 광화문광장 일대를 통행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불심검문과 신체·소지품 검사를 실시했다. 이때 시민들은 경찰의 불심검문과 관련한 법률 내용과 판례를 잘 알지 못해, 경찰의 ‘불법적 불심검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다.

불심검문 중인 경찰관의 모습. 본문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불심검문 중인 경찰관의 모습. 본문 기사와 관계 없음. [사진=연합뉴스]

◇불심검문은 ‘임의절차’… 경찰 지시에 협조할 의무 없어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는 “수상한 행동이나 그 밖의 주위 사정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볼 때 어떠한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제1호) 또는 “이미 행하여진 범죄나 행하여지려고 하는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을 안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대해 정지시켜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전자(前者)의 규정은 형법 내지 형사소송법상 ‘피의자’에 상당하는 인물에 대한 것이고 후자(後者)의 규정은 ‘참고인’에 상당하는 인물에 대한 것이라고 하겠다. 즉, 경찰관은 아무 때나 ‘불심검문’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한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관의 불심검문에 대해 그 대상자는 무조건 협력해야 할 의무를 질까? 그렇지 않다.

같은 법률 제7조가 “질문을 받거나 동행을 요구받은 사람은 형사소송에 관한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신체를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그 의사(意思)에 반하여 답변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형사 절차상 범죄 혐의자에 대한 수사는 ‘임의 수사’가 원칙이다. 수사기관은 법원의 영장(令狀) 없이는 체포도 압수도 수색도 할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수사가 개시되지 않은 불심검문 대상자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한다고 해서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하거나 동행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없다.

◇불심검문 실시하는 경찰관, 제복 입었어도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 ‘반드시’ 제시해야

A씨의 사례에서는 경찰관들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그렇다면 A씨로서는 자신을 검문하겠다는 사람들이 ‘진짜’ 경찰관들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질문을 하거나 동행을 요구할 경우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를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질문이나 동행의 목적과 이유를 설명하여야 하며, 동행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동행 장소를 밝혀야 한다”(제4조)고 정하며 불심검문을 실시하려고 하는 경찰관들에게 그 대상자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강행규정으로 두고 있다. 이때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란 경찰관에게 발급된 공무원 신분증을 말한다.

A씨의 사례에서 경찰관들이 A씨에게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적법절차 위반에 해당하게 된다.

이는 제복을 입은 경찰관들에게도 해당된다. 제복 경찰관들이 신분증 제시를 하지 않은 채 불심검문을 당했다는 이유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된 다수의 인권 침해 사례에서 동(同) 위원회는 제복 경찰관에게도 신분증 제시 의무가 있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려왔다.

다만 제복 경찰관의 경우 불심검문 대상자가 해당 경찰관이 공무수행 중임을 인식할 경우 단순히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위법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2014도7976)가 있다는 점에서 사복 경찰관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경우와 구별된다.

지난 2020년 10월9일, 경찰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행인들을 대상으로 집회 용품 소지 여부 등을 검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0년 10월9일, 경찰은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 경찰이 검문소를 설치하고 행인들을 대상으로 집회 용품 소지 여부 등을 검사했다. [사진=연합뉴스]

◇소지품 검사는 ‘흉기’로만 한정돼

지난 2020년부터 2021년 사이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실시된 경찰의 ‘집회·시위 차단 작전’ 중 경찰은 행인들을 대상으로 집회 용품을 소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사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명백한 불법 행위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제3조 제3항은 불심검문 대상자가 흉기를 가지고 있는지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 소지품 검사 대상을 ‘흉기’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공무를 집행 중인 경찰관 또는 주위의 제3자에 대한 생명·신체의 안전을 위한 긴급행위로 인정된 것이다.

다수설은 불심검문 때의 소지품 검사는 ‘흉기’ 소지 여부에 국한되며 일반 소지품 검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무 때에나 흉기 소지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심검문 대상자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해야 한다.

박순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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