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6일 양문석 경기 안산갑 후보의 ‘노무현 불량품’ 막말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해 민주당내 비명계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정치인이 정치인에 대해 말하는 게 무슨 문제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정치인을 양문석이라는 정치인이 비판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면서 양 후보를 적극적으로 엄호한 것이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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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양 후보는 이날 이 대표의 엄호 사격 직후 SNS에 글을 올려 자신의 과거 노무현 관련 막말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이 대표 주장대로라면 양 후보는 사과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양 후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 대표는 노무현 관련 비판이 정치인으로서 할 수 있는 발언이라고 감쌌지만 양 후보는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렸다.

이재명의 양문석 감싸기 1= 정세균의 ‘적절한 조치’ 요구를 거부...“정치인의 정치인 공격을 문제삼을 수 없어”

이재명 대표는 당초 양 후보 막말 논란과 관련해 ‘동문서답’ 전략을 택했다. 이 대표는 지난 15일 울산 수암시장에서 “양 후보가 ‘노무현 불량품’ 등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민주당이 노무현 정신을 강조한 것과 배치되는 발언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여러분 반갑다. 긴 시간 함께 해줘 반갑고, 울산 시민들께서 잊지 말고 행동해서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폭정을 멈춰주길 바란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노무현재단 이사장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개입하면서 이 대표는 ‘동문서답’으로 일관하기 어렵게 됐다. 정 전 총리는 지난 15일 민주당 지도부에 양 후보의 '노무현 불량품' 막말 논란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정 전 총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이 상황을 직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적절한 조치란 양 후보에 대한 공천 취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15일 심야 최고위원회의에서 양 후보 발언에 대한 후속조치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가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나 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 발언은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정치인이 정치인을 공격한 걸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총리의 ‘적절한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재명의 양문석 감싸기 2= 김부겸도 가세해 압박하자 “정치인 비판은 표현의 자유”라고 반박

그러나 민주당 내 논란은 거세졌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16일 '당이 공식 선거운동을 앞두고 가장 큰 위기에 처했다'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최근 과거 막말 논란이 이는 양 후보, 김우영 서울 은평을 후보 등에 대해 "다시 한번 검증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도태우, 정우택 후보에 대한 공천을 철회했고, 장예찬 후보까지 공천 철회를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 당이 이런 부분에서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면서 "다시 한번 선거를 앞두고는 국민의 눈높이에서 겸손하게 자세를 낮춰야 승리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양 후보 등에 대한 공천 철회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16일 오후 경기 하남시 현장 기자회견에서 또 다시 양 후보를 감쌌다.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실패한 불량품’ 등으로 비하했던 양 후보의 과거 기고문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했다고 비난한 정치인을 비판하거나 비토하지 않았을 것이고 저 역시 마찬가지”라면서 “표현의 자유이다. 다만 그 선을 넘냐 안 넘냐의 차이이다. 주권자를 모독하거나 기본 자질이 없는 친일 매국 발언을 한 것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채널A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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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 대해 온갖 험악한 언행으로 당내 언사가 많지만 제지하면 끝이 있겠는가. 그렇게 해선 안 된다”면서 “안 그래도 입이 틀어막혀서 못 살겠는데 표현에 대해 가급적 관대해지자. 무서워서 살겠는가. 제 욕도 많이 하라. 안 보는 데서는 임금 욕도 한다고 하는데 우리 사회가 독재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인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재명이 감싼 양문석은 장문의 사과 글 올려...‘고민 없는 감정적 표현’이라면서 발언 철회

하지만 양 후보는 16일 저녁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려 자신의 과거 기고문 내용에 대해 사과했다. 양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저의 글들에 실망하고 상처받은 유가족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이라크 파병, 대연정, 새만금 공사 재개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로서, 칼럼니스트로서, 깊이 있는 고민 없이, 감정적인 표현으로 여과없이 드러냈다”면서 “하지만 8년 전 민주당에 입당한 동시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가 아닌, 정치인으로서 정치 현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정치적 판단에 대한 수많은 고려 요인을 배워왔고, 그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치 현장에서 제가 겪었던 수많은 좌절의 순간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으로부터 위로받아 왔다”고 노 전 대통령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 대표는 양 후보의 노무현 비하 발언을 ‘표현의 자유’라고 했지만, 양 후보는 ‘고민없는 감정적 표현’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발언을 철회한 셈이다.

양문석=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에 걸쳐서 방송계 요직 맡아...한미 FTA를 노무현 원죄라고 주장

1966년생인 양 후보는 노무현 정부 기간인 2004년~2006년 동안 한국교육방송공사 정책위원, 2006년~2010년 동안 미디어오늘 논설위원, 이명박 및 박근혜 정부 기간인 2010년~2014년 동안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각각 지냈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기간에 걸쳐서 방송계 요직을 맡았던 것이다. 2018년~2019년 동안에는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2022년 5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경남도지사 후보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시장을 찾아 유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2022년 5월 당시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경남도지사 후보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시장을 찾아 유세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양 후보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막말 비난 칼럼을 쓴 것은 미디어오늘 논설위원이었던 2008년이다. 그는 그 해 5월 13일 인터넷 언론인 미디어스에 실은 ‘이명박과 노무현은 유사 불량품’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국민 60~70%가 반대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밀어붙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량품”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틀 뒤인 5월 15일 같은 매체에 기고한 ‘미친 미국소 수입의 원죄는 노무현’이란 또 다른 칼럼에선 “그는 씻을 수 없는 국가적 과오를 저지르게 되는데요. 그 과오의 알파와 오메가가 바로 한미 FTA를 추진한 것”이라면서 “낙향한 대통령으로서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 씨에 대해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가 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었던 노 전 대통령을 온갖 막말로 비난한 이유는 한미 FTA 추진이라는 것을 드러낸 대목이다.

정세균, 양문석을 ‘노무현을 욕보이고 조롱한 자’로 규정...민주당 내 갈등 격화 조짐

이재명 대표 뜻대로 사태가 호락호락 흘러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정세균 전 총리는 16일 이 대표가 양문석 후보를 감싼 데 대해 정조준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 전 총리는 "노무현의 동지로서 양문석 후보의 노무현에 대한 모욕과 조롱을 묵과할 수 없다"며 "양문석 후보에 대한 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노무현을 욕보이고 조롱한 자를 민주당이 당의 후보로 낸다는 것은 당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양 후보 카드를 거둬들이지 않을 경우,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인물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이 대표가 ‘표현의 자유’라는 논리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 정체성을 둘러싼 당내 갈등이 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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