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 지지자에게 투표포기를 권유하는 망언을 해놓고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원내 1당인 거대야당 대표가 상대편 유권자를 겨냥해 헌법이 보장한 투표의 권리를 포기하라고 권유하는 충격적 행태를 보인데 대해 논란이 격화되고 있지만, 묵살전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후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 인근 번화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오후 청주시 서원구 충북대학교 인근 번화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국민비하 망언’ 논란 거세져도 사과 안해...‘2찍 발언’은 사과했지만 이제는 버티기?

‘2찍’이라는 유사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지 1주일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에 더 심하게 국민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이 대표가 4.10 총선 직전까지 민주당을 위협하는 최대 뇌관이 됐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더욱이 ‘2찍’ 발언을 한 뒤에는 국민에게 사과했으나, 투표포기 망언에 대해서는 논란이 격화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힘 지지층은 국민으로 여기지 않고 무시해도 된다는 발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 비하를 노골화하는 이 대표의 인식이 처음 드러난 것은 지난 8일이다.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서 선거 운동을 하던 도중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젊은 남성과 인사를 나누다가 "설마 2찍, 2찍 아니겠지?"라고 질문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2찍'은 지난 대선에서 기호 2번이었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했던 유권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주로 ‘개딸’로 지칭되는 이 대표 강성 지지자들이 커뮤니티 등에서 사용해왔다. 상대방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정치 양극화의 상징적 단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그런 극단적 혐오의 표현을 유세 중에 사용함으로써, 스스로가 ‘개딸’의 극단주의에 동승하겠다는 태도를 숨기지 않은 셈이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결국 이 대표는 ‘2찍’이라는 ‘혐오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저의 발언은 대단히 부적절했다.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사과는 진심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2찍’보다 더 심한 국민의힘 지지층 비하발언을 6일 뒤에 토해냈다.

이재명, ‘2찍’ 발언 6일 후에 “2번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 망언해

이 대표는 지난 14일 세종시 조치원읍 세종전통시장을 방문해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충격적 연설’을 했다.

이 대표는 자신을 둘러싼 지지자들에게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잘했다, 나라 살림 잘했다, 살 만하다, 견딜 만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더 많은 고난 줘서 나라 살림 파괴해야 되겠다 싶으면, 가서 열심히 2번을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라고 말했다.

나라를 망치고 싶으면 2번을 찍거나 투표를 포기하라는 논리였다. 나라를 망치고 싶은 유권자란 바로 국민의힘 지지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어떤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있으니 표를 달라는 요구가 아니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을 나라 망치려는 세력으로 규정하는 ‘흑색선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 대표는 "집에서 쉬는 것도, 2번을 찍는 것과 같다"고 부연설명까지 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일제히 이재명 망언에 비판 가해...“내로남불은 이재명 여의도 독재의 밑바탕”

국민의힘 지도부가 일제히 이 대표 망언에 비판을 가함으로써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국민의힘 4·10 총선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은 16일 페이스북에서 “살 만하다 싶으면 2번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는 이 대표의 발언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본도 안된 전체주의자의 표본 그 자체에 가깝다"면서 "총선은 막말꾼과 망언 제조기를 뽑는 게 아니고, 우리 국민의 대표들을 선출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결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대변인은 15일 ‘민주당 망언의 끝판왕은 역시나 이재명 대표였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해 "이재명 대표의 막말은 국민을 갈라치는 저열함을 넘어 민주주의 파괴 위협"이라며 "공당의 대표이자 대선 후보였던 인물이 국민에게 '투표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데 앞장선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따졌다. 박 대변인은 "자신들을 지지하면 유권자로서 반드시 한 표를 행사해야 하고, 국민의힘을 지지하면 국민도 아니라는 말인가?"면서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이 대표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한심하다"라고 비판했다.

특히 "인천에서 '2찍'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고, '정중히 사과드린다'고 했던 말은 결국 허언이었음이 드러났다"라고 꼬집었다.

장동혁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15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우리 당 후보들의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민주당이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라면서 "국민을 '2찍'이라 지칭하고, '살만하면 2번을 찍든지, 집에서 쉬라'는 이재명 대표의 발언 역시 국민 갈라치는 망언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자기 내부의 문제들은 적당히 웃어넘기고 상대 당은 집요하게 물어뜯는 내로남불은 이재명식 여의도 독재의 밑바탕이 되었다"면서 "22대 국회에서는 이러한 여의도 독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한동훈, “여야 지지층 모두 4.10총선 투표 참여해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후 광주 남구 광주실감콘텐츠큐브(GCC)에서 열린 입주업체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5일 오후 광주 남구 광주실감콘텐츠큐브(GCC)에서 열린 입주업체와의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광주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망언에 대해 "대한민국을 후진시키는 대단히 후진 생각"이라면서 "나는 1번 찍으실 분이든 2번 찍으실 분이든 모두 꼭 투표에 참여해주시라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은 "그것이 우리 공동체를 전진하게 하는 일이고 저희는 이 대표와 민주당의 그런 후진 정책에 맞서 전진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여야 지지층 모두 4.10 총선 투표에 참여해야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강조함으로써 이 대표의 ‘망언’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노인 폄하’ 발언 정동영은 총선 사흘 전에 당의장직 사퇴...이재명은 사퇴는커녕 사과할 생각도 없어?

이재명 대표는 ‘정동영계’의 일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2007년 12월 실시된 제17대 대선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비서실 부실장으로 일했다.

이 대표의 ‘국민비하 망언’은 2004년 총선을 앞둔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 편하’ 발언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시 정 의장은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라는 발언을 해 ‘노인 폄하’ 논란을 자초했다.

이 논란은 2004년 총선뿐만 아니라 2007년 대선에서도 정 의장의 발목을 잡았다. 2004년 당시 열린우리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정동영 의장은 사과를 했지만 여론을 달래지 못하자 용퇴를 결정했다.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2004년 4월 12일 정 의장이 당 의장직과 공동선대위원장직 사퇴를 선언한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정 의장은 국민이 무서운 줄 아는 정치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년 뒤인 2024년 이 대표와 민주당의 대응은 전혀 다르다. 민주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이 대표도 사퇴는커녕 사과할 생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른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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