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비난칼럼 배포한 시간강사 1·2심유죄 판결 파기환송
大法 "가르치는 자유는 학문의 자유 근간, 관행·질서 벗어나도 함부로 위법 판단 안돼"
"이전부터 활용한 방식 강의, 일방 전달도 아냐…긍정평가 학생도 있었다" 두둔
大法 관계자 "진리 탐구 학문적 과정인 교수의 자유 폭넓게 보장해 의의있다"

특정 선출직 정치인 후보에 대한 '강의실 낙선운동'에 대해 1·2심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의한 유죄 판결을 내린 사건을 대법원이 뒤집었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교수의 자유를 폭넓게 간주하면서 선거법에 따른 유죄 판단을 무력화했다. 앞으로 정치인·정당에 대해 어떤 내용을 다루든, 심지어 선거를 앞두고서라도 강의라는 형식을 빌려 학생들의 동조를 유도하면 무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지방의 한 대학 시간강사였던 유모씨(51)는 지난 2012년 2학기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 과목을 맡아 강의했다. 유씨는 수업 보조자료로 신문 기사를 활용했다. 

그는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 '유신 흔적 청산하지 않으면 변종유신 나올 수도 있다' 등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전자와 후자 모두 친북·좌파성향 매체로 분류되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에서 게재한 칼럼과 기사였다. 당시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전자는 좌익계열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1974) 주모자들에 대한 유죄 판결을 박근혜 후보가 부정해주지 않아 "사법의 암흑기를 인정치 않으려는 완고함이 읽힌다"며 '역사인식'과 '평균적 교양'에 못 미친다는 취지로 폄하한 칼럼이었고, 후자는 영화 '유신의 추억-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 를 제작한 김학민 엠2픽쳐스 대표의 "유신독재의 유령이 우리 사회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등 언급을 실은 기사였다.

한 수강생의 신고로 유씨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그는 대선을 앞두고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에 따르면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의 당락이나 특정 정당에 유·불리한 기사를 복사·배부해서는 안 된다. 또 '교육적 또는 직업 기관·단체 등 조직 내에서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유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대학교 내에서 학문의 연구와 교수(敎授)의 자유가 적용돼야 할 영역에 선거법을 적용한 것으로 공소권 남용"이라며 "신문기사를 활용해 강의에 부합하는 내용을 참고삼아 설명한 것일 뿐 선거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유씨의 이같은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 등에 해당한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1·2심 재판부는 "유씨가 나눠준 기사는 박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비판하는 내용인데다 유씨가 대학에 제출한 강의 계획서에는 이 사건 기사들을 활용할 것이 예정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학생들의 강의평가에는 유씨의 정치적 견해 표시에 불만을 나타내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뒤 대법원에서는 전혀 다른 판단을 제시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유씨의 상고심에서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헌법상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사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유씨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이 기존 관행과 질서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함부로 위법한 행위로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전제하며 "교수의 자유는 학문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것으로 교수행위는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이며 이 과정을 자유롭게 거칠 수 있어야만 궁극적으로 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교수 행위가 학문적 연구결과의 전달 등으로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정당한 행위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씨의 행위가 사전 선거운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씨는 이 사건 강좌 이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강의를 해왔고, 이 사건 교수행위 이후에도 역사적 사건과 사회 현안을 비판적으로 다룬 신문기사를 활용해 강의를 계속했다"면서 "더구나 유씨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발표를 통해 적극 참여하도록 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고 유씨 측 입장을 대변했다.

재판부는 "유씨가 강의에서 자료로 배부한 신문기사 중 일부에 박 후보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포함됐다는 사정만으로는 학문의 과정이 아닌 박 후보의 낙선을 도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이번 판결은 '교수의 자유'를 규정하고,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지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내린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대법원에서 교수의 자유에 관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놓은 바 없고, 학계에서도 논의가 정리되지 않았었다"며 "이번 판결은 이에 대한 의미와 그 한계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판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상 기본권인 학문의 자유의 근간으로서 그 자체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과정인 교수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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