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가 쓴 쓴 이승만 평전인 ‘이승만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글은 평생을 사실관계를 추구해 온 존경받는 언론인이 쓴 글이라기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어

#.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

대한민국 언론의 자유의 상징물이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 세워진 굽히지 않는 펜이란 조형물이다. 거대한 펜과 함께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초대 사장을 역임했던 언론인 송건호의 말을 새긴 것이다.

조형물 건립을 추진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관계자들은 조형물에 송건호의 글귀를 새긴 이유를 일평생 언론 자유를 외친 송건호 선생의 지론을 돌판 위에 새긴다는 것이 조형물 건립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데 많은 사람이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오정훈, 프레스센터 앞 굽히지 않는 펜’: 언론 자유의 상징물로 서울 도심에 우뚝 서다).

 

#. 송건호의 이승만 죽이기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이 화제를 몰고 오면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붐이 일고 있다. 그런데 이승만 모욕하기의 궤적을 추적해 올라가면 괴물과 같은 이승만 이미지를 창작해낸 대표자 중의 한 사람이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고 외친 언론인 송건호라는 사실이 발견된다.

프레스센터 앞에 세워진 '굽히지 않는 펜' 조형물.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송건호의 글을 새겼다.
프레스센터 앞에 세워진 '굽히지 않는 펜' 조형물.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는 송건호의 글을 새겼다.

 

송건호는 1953년 대한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하여 조선일보 논설위원, 경향신문 편집국장,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겨레신문 초대 대표이사를 역임한 언론계의 전설이다. 이 정도 커리어를 쌓은 언론인이라면 언론의 사명이 팩트 파인딩(사실관계 추적)이란 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가 쓴 이승만 평전인 이승만의 실체를 밝힌다’(송건호, 한국현대인물사론)라는 글은 평생을 사실관계를 추구해 온 존경받는 언론인이 쓴 글이라기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위의 글에서 이승만이 범한 많은 과오 중에서도 민족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외세의 국가이익 추구에 편승하여 이 나라를 분단하는 데 앞장섰다는 것, 일제 시대 때 민족을 배반한 친일 역적들을 싸고돌아 민족정기를 흐려놓은 점과 12년의 통치기간에 이 나라를 자주 아닌 열강 예속으로 전락시켰다는 사실이라고 못을 박았다.

결론 부분에서 송건호는 오늘 한반도가 겪고 있는 민족의 수난은 다름 아닌 이승만의 지도노선에 일단의 책임이 있다는 것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통탄했다.

 

이승만을 독재자,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는 데 앞장선 주인공은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고 주장했던 언론인 송건호였다.
이승만을 독재자,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는 데 앞장선 주인공은 "역사 앞에 거짓된 글을 쓸 수 없다"고 주장했던 언론인 송건호였다.

 

송건호의 이승만의 실체를 밝힌다는 친일파를 싸고 돈 민족반역자, 외세와 결탁한 분단의 원흉 이미지를 창조해낸 원전(原典)에 해당한다. 문제가 되는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8·15 직후 서울은 좌익의 장악 속에 있었고 미군 당국은 이들 좌익과 대항하기 위해서 반공으로 이름난 이승만이 필요해진 것이다. 그래서 그간 철저히 무시하고 상대조차 않던 이승만을 맥아더 장군의 지시에 따라 갑자기 한국 민족의 영웅으로 대접하게 되어 이승만은 거의 힘 안 들이고 민족의 지도자로서 민중 앞에 군림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미 극동정책의 필요에 따라 한국 민족의 영웅으로 환국하게 된 것이다. 36년간 식민통치하에 신음하는 국내 민중과 사실상 연락이나 유대가 없었고 따라서 일반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영웅으로 추대되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승만의 행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유리한 여건 속에서 이승만의 환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얼마나 고집불통이고 자기중심적이고 그래서 그가 가는 곳마다 말썽이 일지 않는 곳이 없는 문제의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는 미국에 머물고 있을 때부터 자기 생활을 위해 직장을 갖거나 다른 돈벌이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인물이다. 이승만의 생활비는 재미동포들이 마련해주는 돈으로 충당했다.

이승만은 친일파를 끝내 숙청하지 않고 감싸고돌았다. 이승만이 친일파를 숙청하라는 빗발치는 여론 앞에서 그들을 감싸고 돈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하지 중장의 증언이 참고가 될 것이다.

이승만은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안 있어 일부 재산 많은 부유층의 영향을 받는 몸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일제 밑에서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에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하지 중장의 말은 이승만이 귀국 후 친일 기업가들한테서 적시 않은 정치자금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커밍스는 이승만은 그들의 기부금을 받는 대가로 장차 민족주의 정권이나 공산정권이 들어설 경우 일제에 협력했다는 죄로 재산을 잃게 될지도 모를 그런 계층의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유한 계층의 집단인 한민당과 그들의 산하에 있던 경찰까지도 자기 수중에 두게 되었다. 이승만이 한 일은 1927년 장개석이 상해의 은행가 집안과 정략 결혼한 것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다고 했다.

이승만의 이러한 통일노선(남한 단정)은 그것이 미·소의 협조가 아닌 대립을 전제로 한 것인 이상 통일은 실현 불가능할 뿐 아니라 결국 통일을 위한 일시적 분단이 아니라 분단을 영구화 하는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의 분단노선으로 해서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오히려 분단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다.

이승만은 미국인 이상으로 미국이 극동에 대해 품고 있는 여러 정치적 야망을 때로는 그들의 뜻을 어겨가면서까지 충실히 지켜온 철저한 친미 정치인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에 머물러 있는 동안 주로 캘리포니아 주 출신의 윌리엄 놀랜드, 오하이오 주 출신의 로버트 타프트, 아더 반덴버그 등 극단적인 반공주의 의원들과 사귀었다.

그의 체미 중 그가 미국의 대재벌들과 접촉이 많았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승만을 초청한 재벌 속에는 록펠러, 모간, 그로버 월렌, 화이어스튼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의 재벌들은 무엇보다도 후진국인 한국이 장차 그들의 경제적 진출을 위한 시장이 되어주기를 원했고, 그런 점에서 한국이라는 시장을 미국이 지켜줄 것인가가 미국 재계에서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사정으로 이들 미국의 군부와 재계는 이승만의 철저한 반공주의에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의 일치 때문에 아주 쉽사리 접근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성안중인 농지개혁법이 한민당에 의해 지연되어 유명무실하게 된 것을 방치했고 농민에게 불리한 양곡 도입법이 제정 공포되는가 하면.

6·25후 피난지에서 이승만 정권은 갖가지 추태를 연출했다. ‘국민방위군사건’ ‘거창사건’ ‘중석불사건, 연이은 의혹사건 속에서 이승만은 국회에서의 간접선거로는 대통령에 당선될 가망이 없다고 보자 야당의원 다수를 공산당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구속하고 대통령 국민직선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서 강제 통과시켰다.

 

#.  언론계 후배인 김삼웅이 바톤 이어받아

송건호의 이승만 마녀사냥이 얼마나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다른 내용인지는 다큐멘터리 건국전쟁한 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참 언론인의 표상으로 떠받들어져 프레스센터 앞에 그의 좌우명을 새기고, 그것을 지고지선의 가치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다.

언론인 김삼웅은 송건호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승만을 괴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사진은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란 부제가 달린 김상웅의 저서 "이승만평전".
언론인 김삼웅은 송건호의 유지를 이어받아 이승만을 괴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사진은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란 부제가 달린 김상웅의 저서 "이승만평전".

 

송건호의 이승만 악마화 작업은 그의 언론계 후배인 김삼웅(대한매일신문 주필) 등에 의해 화려하게 계승되었다. 김삼웅은 이승만 평전: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라는 저서에서 송건호의 언론계 후배답게 이승만을 다음과 같이 화끈하게 난도질했다.

"미국 망명 시절의 행적은 독립운동보다 친일에 가까운 언행이 적지 않았다. 독립운동단체를 분열시키고,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테러 행위라고 비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에서 두 차례나 쫓겨나는 불명예를 얻었다.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헌법과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영구집권을 획책하면서 3·15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과 학생들을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독재자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친일경찰을 등용하여 독립지사들을 탄압하고 경찰국가체제를 만들었고, 총독부 판사 출신들로 사법부를 장악하게 하고 숱한 독립지사와 민주인사들을 처형했다.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를 중용하여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짓밟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말로만 북진통일을 되뇌다가, 막상 인민군이 남침하자 혼자 도망치고 한강 다리를 폭파해 서울시민을 인민군 치하에 남겨두었다.

원조물자는 특권층에게만 안겨주어 국가 경제와 국민 생계는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외신도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기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라고 조롱했을 만큼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국격을 실추시켰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로 추앙받지 못하고 독재자, 권력을 좇는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이승만을 악마로 만든 김삼웅이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다는 것이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결국 김삼웅의 글도 팩트를 추적해 보면 역사적 사실과는 정반대 주장을 나열하고 있는 내용증명이다. 김삼웅 역시 사실 추구의 언론인이 아니라, 역사 왜곡·날조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송건호의 아류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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