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 공모' 혐의로 9일 경찰에 소환된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 회장이 조사를 받기 전에 기자들에게 자신의 무고함을 호소하면서 한국의 의사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이 부당함을 지적하는 수치로 제시한 것이다.

전공의 집단사직 공모 의혹 전면 부인하면서 의사 증가율 1위로 어젠다 전환 시도?

노 전 회장은 "선배 의사로서 전공의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SNS에 표현한 것 외에 전공의 단체나 의협과 전혀 접촉한 사실이 없다"면서 자신을 포함해 전·현직 의협 간부가 고발된 데 대해 "독재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노 전 회장은 이어 "이렇게 많은 의사가 나서서 정부의 대규모 증원 정책을 강력히 반대하는 건 이 정책이 대한민국 의료를 근본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라면서 "대한민국의 의사 증가율은 OECD 38개 국가 중 1위이고 평균 증가 수치의 2배가 넘는다. 의사 밀도도 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높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정보는 절대 국민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전공의 집단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9일 오전 전공의 집단사직 공모 의혹과 관련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마포구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로 출석하기 전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 전 회장이 전공의 단체 등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는 주장의 진위 여부는 경찰 조사 등을 지켜봐야 규명될 수 있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니면 경찰이 잘못된 정보로 노 전 회장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것인지는 앞으로 명확하게 판명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사 증가율이 OEDC 국가들 중에서 최상위권인데 의대증원을 추진하려는 정부정책이 의료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OECD 통계를 통해 진위를 규명할 수 있다.

펜앤드마이크가 10일 의사 증가율 및 의사 밀도 관련 노 전 회장의 발언을 검증해본 결과에 따르면, 노 전 회장의 주장은 진실을 가리는 선동적 수치 인용인 것으로 평가된다.

팩트체크 1= 한국이 의사 증가율 1위라고?...한국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OECD 최하위권

우선 노 전 회장은 한국의 OECD 회원국 중 인구대비 의사 수가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2022년 7월 초에 발간된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국내 임상의사 수는 인구 1천명당 2.5명이다. OECD 국가 중 멕시코 2.4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다. OECD 평균 3.7명보다 1.3명이나 적은 셈이다.

2011년 기준 인구 1천명당 의사 수의 경우 OECD 평균은 3.2명, 한국은 2.0명이었다.

지난해 11월 OECD가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Health at a Glance 2023)에 의하면 2021년 기준 한국의 1천명당 의사 수는 2.6명이다. OECD 평균은 3.7명이다.

2020년에서 2021년까지 1년 동안 한국의 1천명당 의사 수는 0.1명이 늘었지만 OECD 평균은 현상유지 상태이다.

노 전 회장의 주장처럼 인구 1천명당 의사 증가 속도는 한국이 OECD 평균보다 빠르다. 하지만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최하위권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또 의사 밀도가 OECD국가 3위라는 노 전 회장의 주장은 거짓인 것이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인구 1천명당 의사 증가 수의 경우, 한국은 0.6명이고 OECD 평균은 0.5명이다. 10년 동안 OECD 평균보다 0.1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1천명당 의사 수가 꼴찌에서 두 번째라는 상황을 감안하면, 대단한 증가 속도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의 의사 수 증가 속도가 OECD 1위라는 점만을 강조하는 노 전 회장의 주장은, 한국이 현재 속도라면 ‘1천명당 의사 수 OECD 최하위권’ 탈피가 요원하다는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팩트체크 2= 서울 등 수도권 쏠림 현상이 문제?...한국은 의사 수 자체가 절대 부족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놀라운 것은 이처럼 한국이 불명예스럽게도 꼴찌에서 두 번째 의사 수를 유지하는 게 서울 등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인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한국의 근본문제이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 등 수도권의 2021년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2.73명이다. OECD 14개국 도시 지역 평균 의사 수 4.5명의 절반 수준이다.

각국 주요 도시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따져보면 서울 등 수도권은 의사 수 면에서 부끄러울 정도이다. 체코 프라하 7.72명, 오스트리아 빈 7.04명, 미국 워싱턴DC 6.56명, 독일 함부르크 6.40명, 덴마크 코펜하겐 지역 5.14명, 벨기에 브뤼셀 4.09명 등이다. 튀르키예 앙카라(3.67명), 멕시코 멕시코시티(3.03명) 등조차도 한국의 수도권보다 많다. 한국의 수도권 의사 수 2.73명은 OECD 14개국 농촌 지역 평균 의사 수 3.2명에도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

팩트체크 3= 한국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린다고?...대신에 소득은 OECD 1위

한국의 의사 수가 OECD 최하위권인 탓에 한국의 의사 소득이 OECD 최고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한 것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고 비판하는 다수 여론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 따르면 한국의 의학 계열 졸업자는 10만명당 7.22명으로 일본 6.94명과 이스라엘 6.93명 다음으로 적다. OECD국가 중 꼴찌에서 세 번째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4.7회로, OECD 국가 중 1위이다. OECD 평균 5.9회의 2.5배 높은 수준이다. 입원환자 1인당 평균 입원 일수는 19.1일이다. OECD 평균 8.3일보다 열흘 이상 길다. 회원국 중에서는 일본 28.3일 다음으로 2위이다.

이처럼 소수의 의사가 많은 진료를 담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의사들은 격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대신에 의사 소득은 OECD 1위로 나타났다.

전문의 중 봉직의 임금 소득은 연간 19만5천463 US달러, 개원의는 연간 30만3천 US 달러로 모두 OECD 국가 중 1위이다. 따라서 2021년 기준 한국 의사의 연평균 총소득은 고용 형태와 일반의, 전문의 등의 기준에 따라 전체 노동자보다 2.1∼6.8배 많았다.

격무에 시달리는 한국 의료계의 고질병, 의대증원만이 유일한 해결책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바쁘게 움직이다 서로 부딪히고 있다. 2024.2.28. [사진=연합뉴스]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의 집단이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바쁘게 움직이다 서로 부딪히고 있다. 2024.2.28.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의대정원은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동결된 상태이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단체를 달래기 위해 의대정원을 단계적으로 10% 줄인 이후 원상회복도 못한 상태이다. 의약분업과 의대정원 감축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안인데 당시 정부가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 행동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의사 수 부족은 예견된 재앙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2년 연말 발표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공급 등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2035년에 2만7천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됐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사의 평균 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게 시장논리이다. 하지만 한국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린다는 악명을 떨쳐낼 수 있다. 의사 수는 늘리지 않으려고 집단행동을 하면서 격무에 시달리는 의료계 현실도 개선해달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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