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오는 4·10 총선에서 서울 중구·성동구갑 출마 의지를 불태우다 '컷오프(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4일 당의 결정을 받아들인다며 잔류를 선언했다. 이와 관련해 과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으로서 '독재 타도'를 외쳤던 그가 정작 당내 독재에는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그저그런 정치인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다.

임 전 실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당의 결정을 수용합니다"라는 한 문장의 글로 자신의 입장을 대신했다. 이는 당의 컷오프 결정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잔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이러한 임 전 실장의 입장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라며 "당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해준 데 대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당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서 본인이 원하는 그런 공천을 해드리지 못했고, 이 점에 대해서는 임 전 실장 입장에선 매우 안타까웟을 것"이라면서 "정권 심판이라고 하는 현재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 힘을 합쳐주면 더욱 고맙겠고, 모두가 힘을 합칠 수 있도록 우리 당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임 전 실장이 고개를 숙임에 따라 이 대표의 이 발언은 임 전 실장에 한해서는 정당성을 갖게 됐다. 이 대표가 말하는 "본인이 원하는 그런 공천을 해드리지 못한" 모양새가 임 전 실장의 수용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가 '임 전 실장의 역할론'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것이 없다"고 말해 임 전 실장이 '정권 심판'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임 전 실장이 불쏘시개로 쓰일 가능성마저 현재로서는 없는 것이다. 

결국 임 전 실장이 낙마 과정에서 보여준 무기력함이 '이재명 사당화'를 돕는 꼴이 됐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임 전 실장은 얼마 전까지는 공천 탈락에 불복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것 같은 메시지를 남겨 주목받은 바 있다. 그는 이틀 전 페이스북에 "기동민 의원을 컷오프하면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유감이다. 홍영표 의원을 컷오프하면서 이제는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 유감이다"라며 "심야 최고위를 열었는데 임종석의 요구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재명 대표의 속내는 충분히 알아들었다"고 썼다. 이낙연 대표의 새로운 미래가 임 전 실장에게 연락한 것도 이러한 '여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사진=페이스북]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지난 2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 [사진=페이스북]

 

그런데 마치 행동에 나설 것 같던 임 전 실장이 며칠 지나지 않아 꼬리를 내려버린 결과 그가 이른바 '쫄보 정치인'의 수순을 밟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임 전 실장은 1988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됐고 일년 후인 1989년엔 전대협 3기 의장으로서 운동권의 상징이 됐다. 그는 특히 그해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이뤄졌던 임수경의 방북을 도왔단 이유로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의 판결을 받기도 했다. 

한때 '독재·파쇼정권 타도'를 기치로 내걸었던 운동권 출신인 그가 일부 친명에 의해 전횡단다는 지적을 받는 당내 공천 문제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 것은 모순된단 지적이다. 공천은 정당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공정함이 사라지는 순간 당내 민주주의는 요원해진단 이유에서다.

그가 침묵하는 동안 문학진 전 의원, 노웅래·윤영찬·이수진·홍영표 의원 등은 컷오프에 강력 반발하며 일부는 실제 탈당하기도 하는 등 결기를 내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이날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등 '이재명식 독재'에 맞서 실질적인 대응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모양새다. 일부 야권 지지자들은 김 부의장의 행태가 '철새적'이라고 비판하지만, 개혁신당·새로운미래 등 제3지대 정당들도 영입을 타진했음이 알려지면서 그와같은 지적은 빛이 바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민주당의 공천 학살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한 임 전 실장에게서 이른바 '86운동권'의 모순된 행태가 발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들은 윤석열 정부가 '검찰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고 타도, 심지어는 탄핵까지도 부르짖지만 이 대표의 공천 독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남한의 독재를 비판하며 민주화를 꿈꾸었던 그들이 정작 독재 '끝판왕' 북한을 추종했던 역설적 행태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스스로를 구성원 개개인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배급받을 수 있는 '인민의 낙원'이라고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허울 뿐인 사회주의의 탈을 쓰고 '양두구육'하는 세계 최악의 독재 국가임이 속속들이 밝혀진 상황이다. 

전대협 결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이인영 의원 역시 당내 공천 파동에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임 전 실장과 다를 바 없단 평가도 제기된다. 이 의원은 지난 1일 민주당 공관위의 제9차 공천 심사 결과 구로갑 단수공천자가 됐는데, 민주당에 유리한 이른바 '꿀 지역구'로 공천받을 수만 있다면 당내 부조리엔 얼마든지 눈감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적으로 상정한 세력의 모든 행위는 독재, 반면 이를 몰아낸다는 주장이 '대의'로 포장되면 우리 편의 독재쯤은 눈감아줄뿐만 아니라 기꺼이 순응까지 해버리는 운동권의 왜곡된 집단 의식이 원내1당이자 제1야당, 공당인 민주당에게서 여전히 엿보인다는 것이다.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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