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라크마'전서 해외 컬렉터 압도
윤범모 "불굴의 의지로 기운생동 표출"
미술애호가 BTS RM도 박대성 팬 
가나아트서 24일까지 기념전 

박대성, 한라산, Ink on paper, 400×500㎝, 2019. [가나아트 제공]
박대성, 한라산, Ink on paper, 400×500㎝, 2019. [가나아트 제공]
바닥에 종이를 깔고 작업하는 박대성 화백의 모습. [가나아트 제공]
바닥에 종이를 깔고 작업하는 박대성 화백의 모습. [가나아트 제공]

지난 2022년 7월 17일  미 서부 최대 미술관인 LA 카운티 미술관(라크마·LACMA)에서 개막한 소산 박대성 화백(79)의 초대전 ‘고결한 먹과 붓’(Virtuous Ink and Contemporary Brush) 현장을 찾은 현지 미술애호가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불국설경'을 비롯해 '경주 남산', '청산백운', '우공투양도' 등 500호에서 1000호에 이르는 작품은 모두 8점에 불과했지만 관람객들은 일단 작품의 크기에 압도당했다. 

이뿐 아니었다. 그들을 더욱 매료시킨 것은 한국화나 동양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깨는 작품의 파격적인 구도였다. 전시는 원래 정했던 일정보다 약 두 달간 연장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박 화백의 작품이 보여주는 몽환적 비경에 반해 처음에는 전문가 중심으로 발길이 이어지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관람객이 대거 몰렸다. 

라크마에서의 그같은 반응에 힘입어 박 화백은 지난해까지 하버드대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및 메리워싱턴대학까지 미국 동부와 서부를 아우르며 초대전을 열었다. 

라크마 이전에 열었던 독일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등 유럽의 한국문화원에서의 전시까지 합치면 모두 8곳의 해외 기관에서 순회전시를 한 셈이다. 

박 화백의 작품은 미국과 독일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한국 수묵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에대해 화단에서는 박화백이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박대성, 삼릉비경, Ink on paper, 446.7 x 792 cm, 2017.
박대성, 삼릉비경, Ink on paper, 446.7 x 792 cm, 2017.
박대성, 만월, Ink on paper, 125.5 x100.5cm, 2022.
박대성, 만월, Ink on paper, 125.5 x100.5cm, 2022.
박대성, 신라몽유도, Ink on paper, 197.4 x 295.3cm, 2022.
박대성, 신라몽유도, Ink on paper, 197.4 x 295.3cm, 2022.
박대성, 현율, Ink on paper, 238.2 x 296.5cm, 2024.
박대성, 현율, Ink on paper, 238.2 x 296.5cm, 2024.
박대성, 구룡폭포, Ink on paper, 460x150cm, 2019.
박대성, 구룡폭포, Ink on paper, 460x150cm, 2019.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박대성 화백의 전시장을 찾은 시민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 박대성 화백의 전시장을 찾은 시민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고 있는 '소산비경'전은 한국 산수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이 해외 순회 전시를 마치고 금의환향해 열리는 특별전이다. 

박대성 화백은 해외 순회전을 돌아보면서 "겸재 정선으로부터 이어져온 우리 진경산수화의 큰 흐름에 저는 현대화된 서구의 모더니즘 기법을 가미했습니다. 해외 컬렉터들이 제 그림에 공감하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얘기도 들려주었다. 

"동양화는 정신성이 첫째고 그다음에 조형으로 들어가지만, 서양화는 닮았나, 안닮았나를 먼저 보는 것 같아요. 저 사람들(미국과 유럽 관람객)은 제 작업을 보면 놀라서 넘어져요. (먹으로) 검은 걸 해놨는데 뭔가 느낌이 오니까요."

박 화백의 설명은 가나아트에서 전시 중엔 작품들에서 여실히 확인되고 있다.  풍경을 그릴 때도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강조, '산수화'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깨트리며 추상화와도 같은 낯선 체험을 선사한다. 

경주의 유적들이 표현된 '신라몽유도'에는 각 유적의 비례가 파괴된 채 일부 유적이 크게 강조돼 있고 경주 남산의 모습도 기하학적 추상처럼 단순, 왜곡된채 그려져 있다. 

'만월'의 구도 역시 파격적이다. 집 위에 떠 있는 달빛의 모습이 마당에 삼각형으로 표현돼 있다. 또 '현율 연작에서는 과장법이 적용돼 서구 현대미술의 반추상작품을 방불케 한다.  

대형 산수화 위주로 구성된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 풍경을 그린 2017년작 '삼릉비경'이다. 경주의 자택 정원 풍경을 그린 가로 8.3m, 세로 4.8 m 크기의 그림 속 달빛이 마치 전시장을 비추고 있는 듯하다. 

박대성 화백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나아트 제공]
박대성 화백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가나아트 제공]

'삼릉비경'은 전시장 천장 높이보다 커서 할 수 없이 작품의 일부분이 바닥에 코트 자락처럼 끌린다.

이 같은 독보적인 화법의 탄생에는 역설적으로 박 화백이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실이 한몫하고 있는지 모른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당시 부모를 여의고 왼쪽 팔까지 잃는 아픔 속에서도 그림이 좋아 외롭게 연습을 거듭하며 고행의 길을 걸었다. 제도권 교육은 중학교 2년 중퇴가 전부다.

집안 어른의 소개로 18세 때부터 노당 서정묵(1920~1993)으로부터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83)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1927~2013) 교수의 조언을 가르침 삼아 독학으로 붓을 잡았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신체적 불구를 극복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그림에 매달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그처럼 독학으로 화단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만의 화법을 개척했다. 

특히 1994년 미국 뉴욕에 머물던 1년이 그의 작품에 큰 변화를 야기했다. 전통의 범주 안에서 실력을 다지던 그는 뉴욕에서 현대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수묵화의 현대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가 작품에 현대성을 부여하는 방법은 다양한 기법의 차용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현율'의 경우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점의 부감 구도를 적용, 근경, 중경, 원경 등을 따지는 전통적인 동양화 구성에서 벗어나 있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한 컬럼에 다음과 같이 썼다. 

"소산(박대성)은 6·25전쟁 시기에 팔 하나를 잃었다. 그같은 역경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어서 것은 젊은 세대에게 분명 귀감이다. 그는 붓을 주먹 쥐고 잡는다. 그리고 손목을 움직이는 대신 팔뚝을 움직이면서 그린다.  이를 통해 필획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붓끝으로 옮기고 있다. 기운생동의 경지라 할 수 있다. 붓 하나로 세상과 대결하고 있다."

한편 박대성 화백의 전시장에는 젊은 관객들도 많이 찾는다. 미술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여러 차례 그의 전시장을 찾아 '인증사진'을 남기면서 '

RM 미술관투어' 코스를 따라가는 관객들도 많다.

화백은 "RM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독일 전시 때는 (RM 영향으로) 파키스탄에서 온 관객도 만났다"고 전했다.

박 화백의 서울 전시에서는 순회전을 펼치며 각국에서 그린 스케치도 함께 걸려 있다. 그는 낙서와 같은 스케치를 1년이면 수천 장 그린다. '끄적끄적' 일기처럼 그린다고 한다. 이와관련  박 화백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고 화려하게 변해갑니다. 하지만 나는 역으로 그 모든 것을 한 걸음 물러서서 조용히 관람하죠. 그런 관망의 과정을 통해 나는 세상의 빈 곳을 채워갑니다." 

전시는 24일까지 계속된다. 

이경택 기자 sportsmunhwa@naver.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