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건국과정을 묘사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드디어 백만관객을 넘어섰다. 이는 위대한 선지자 이승만 박사의 존재를 관객으로하여금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으며, 그동안 좌파들의 종북, 인민민주주의식 전체주의 교육에 찌든 젊은 세대의 영혼을 일깨웠다. 그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스라엘의 출애굽에 비교되는 기적의 역사였다.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건국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하느님께서 홍해바다의 기적을 일으켰듯이,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크게 도움받은 것이다. 유대민족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여 번영을 누린 것은 모세라는 한 걸출한 예언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는 레위기(19,18) 및 신명기(6,5)에서 야훼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유대민족에게 가르쳤다. 시내산에서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 십계명을 내려받아 이를 이스라엘의 정신적 가르침으로 삼아 하느님 사랑과 형제애를 일으켜 유대민족의 기틀을 다졌다.

신명기 34장 10-12절은 다음과 같이 모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중략) 모세가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그  모든 위엄과 그 모든 대업을 보아서도 그러하다.”

대한민국은 5,000년의 역사에서 끊임없는 외적의 침략과 지배층의 수탈로 백성들은 간난(艱難)의 세월을 보냈으며 근세에는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事大主義)와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쩔어 지향할 바를 잃고 끝없이 표류하기만 하였다. 마침내 조선왕조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의 희생물이 되었고 일본제국주의의 종말과 함께 찾아온 광복에서 나라는 또다시 혼돈에 빠졌다. 

해방이후 조선왕조체제를 답습할 것인지 사회주의를 받아들일지 아무도 나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지니지 못한체 오로지 북의 김일성과 소련이 합작한 공산체제에 거의 흡수되는 길을 걸었다. 상해임시정부는 삼균주의(三均主義)라 하여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화라는 사회주의 이념을 받아들었으며 해방후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나 박헌영의 남로당이 대한민국의 정체(政體)를 거의 결정할 뻔 하였다. 

국민은 바람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한몸을 맡길 뿐 그 누구도 자신이 역사의 주체가 되지못하고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전무한 상태였다. 5천년 역사에서 민초들은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1946년 군정청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귀하가 찬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답한 8천명 중에서 77%가 사회주의 · 공산주의를 찬성했다. 당시 여운형이 주도한 건국준비위원회가 박헌영이 만든 조선공산당의 책동에 따라 1945년 9월 6일 '조선인민공화국'을 조직 구성하여 9월 15일자 매일신문에 이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의해 국가를 건설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과 같은 기적의 역사였다. 이는 하느님이 이승만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대한민국에 보내주셨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이승만 박사는 자유와 평등, 자유민주주의 등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로 삼았고, 평생동안 부동의 신념으로 가슴에 새겨 왔다. 이승만 박사야말로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뿌리 내리게 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미 군정 당시 인촌 김성수 선생은 사회주의가 만연하여 투표를 실시하면 대한민국이 남로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될 것을 우려하여 미 군정으로부터 직접 정권을 이양받으려고 하였으나 자유민주의 사상이 투철하였던 이승만 박사가 이를 거부하고 5.10.총선을 실시하여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하였다. 

이승만 박사는 1949년 토지개혁을 성공시켜 소작농이 70%나되던 한국농경사회의 지주계급을 타파하였고 자기 토지를 부여받은 소작농들이 한국전쟁 시 목슴을 걸고 자유대한을 지킴으로써 공산화를 막았다. 그후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고래와 새우간의 상호방위조약이라 할 수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1953년 미국과 체결하여, 이후 70년간 전쟁없는 한국 사회를 만듬으로써 경제번영의 기틀을 다졌다. 전쟁 중에도 미래 인재를 교육시키기 위해 유학생을 뽑아 미국에 보냈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계기를 만들었으며, 문교예산의 40%를 들여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초등교육의 의무교육화를 실현시켰다. 당시 초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철저한 반공교육으로 후대 나라를 지키는 주춧돌이 되었다. 

이처럼 이승만 박사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선지자요, 위대한 독립운동가요, 위대한 외교가요, 저널리스트요, 위대한 정치 전략가였다. 이러한 위대한 이승만 박사를 대한민국의 국부로 모신 것은 하느님의 은혜요, 축복이었다. 

한국전을 승리로 이끌어 ‘한국군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얻었던 미8군 사령관 벤 플리트(Van Fleet)는 “그는 그의 몸무게만큼의 다이아몬드와 같은 존재이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학자, 정치가 및 애국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고 회상했다. 이승만 박사의 정치 고문이었던 로버트 T. 올리버 박사는 “20세기를 통틀어 이승만만큼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조직력과 지도력, 예언자의 비전을 두루 겸비한 참으로 훌륭한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많은 정치가들을 배출한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가로 기록될 것이다.”이라고 극찬했다.

이승만 박사가 모세라면 박정희 대통령은 다윗 성왕에 비견(比肩)되는 인물이다. 출애굽 이후 약 300년뒤 다윗이 이스라엘을 굳고 강건한 나라로 만들었듯이 박정희가 조국근대화라는 기치하에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불어넣어 대한민국이 반세기의 짧은 역사에 세계 10대 부국으로 올라가게 된 것은 세계 역사에서 한국이 유일한 예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느님 사랑을 잊고 고아, 과부, 이방인을 보호하라는 신명기의 정신을 잊어 결국 야훼 하느님의 분노로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대한민국도 이승만 박사의 건국이념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잊고 자유라는 단어를 헌법에서 삭제하고저 했던 문재인이라는 역사상 최악의 암군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겨 나라가 거의 거덜날 뻔 하였다. 또한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종북 주사파 집단과 손잡고, 주한 중국대사인 싱하이밍에게 머리를 조아린, 비겁한 사대존화(事大尊華)주의자, 형수에게 인간이하의 욕설을 퍼부은, 인륜과 천륜을 배신한 인간에게 하마트면 나라를 맡겨 바빌론에게 멸망한 이스라엘의 전철을 걸을 뻔 했다. 

국민이 우리에게 귀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주사파들의 선전 · 선동에 귀와 정신이 혼란스럽게 되면 어떠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가는 작금의 상황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잠자는 대한민국 국민의 이성을 일깨워주었다.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참으로 오묘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무조건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천만관객의 영화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가오는 새 봄에 주사파 세력이 장악한 대한민국의 국회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자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민의(民意)의 전당으로 변신할 것임을 굳게 믿는 바이다. 

김원율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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