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의원 평가 하위 20%에 비명(비이재명)계가 대부분 차지한 데다 경선 여론조사 업체의 불공정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더불어민주당 내 계파 갈등은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25일 오후 8시부터 심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3시간여 토론을 벌였으나 문제의 본질을 외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채널A 캡처]
[사진=채널A 캡처]

여론조사 공정성 논란 등 공천으로 인한 내홍 수습책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는 회의 뒤 기자들에게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도부의 안이한 대처인지 아니면 현실 외면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당내 반발이 격화되면서 이재명 대표 중심의 민주당 지도체제가 근본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은평을 사태= 친문계 강병원 의원이 친명계 김우영 강원도당위원장과 경선...홍익표가 지적한 문제점을 공관위가 외면

이 대표는 최고위가 끝난 뒤 기자들의 ‘공천에서 비이재명계가 불이익을 받는다’는 의견에 대해 “민주당은 1년 전에 확정한 특별당규에 의해 시스템 공천을 하고 있다”며 “각종 위원회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데 낙천되신 분이나 경선에 참여를 못 하는 분들은 매우 억울하실 텐데 위로 말씀을 드린다. 불가피한 부분은 이해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 안팎의 공천 파동 우려를 일축한 셈이다.

이날 최고위에 참석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도부는 ‘여론조사 공정성 논란’의 후속대책을 마련하거나, 향후 민감한 공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관해 거의 논의를 하지 않았다. 실제로 회의 뒤 권 수석대변인은 “공천 재심 및 전략지역 의결 등 각 지역구에 대한 토론과 의결 내용이 많아 토론하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은평을 지역을 두고 지도부 간 설전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은평을의 현직은 친문계 강병원(재선) 의원이다. 여기에 현직 강원도당위원장인 친명계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이 공천을 신청해 경선을 치르게 된 상황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당 지도부가 ‘도당위원장이 타 지역에 출마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김 전 구청장에게 ‘주의’ 조처를 내렸는데도 공관위가 은평을 경선을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이견을 냈다. 홍 원내대표는 “지도부가 김 전 구청장에게 출마 선언도 하지 못하게 주의를 줬는데 경선을 치른다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2.25.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가 25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4.2.25.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홍 원내대표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강 의원이 지난 24일 김 전 구청장의 경선 참여가 부당하다고 당에 낸 재심 신청은 재심위원회와 이날 최고위 회의에서 잇달아 기각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공당이길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25일 최고위 회의를 끝낸 뒤 ‘시스템 공천’이라는 논리를 고수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안이한 이 대표의 인식에 대해 당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고민정, “이재명 대표 등 태도 변화없으면 최고위 회의 불참” 선언

고민정 최고위원은 26일 오전 최고위 회의에 불참했다. 전날 밤 열린 심야 회의에서 당내 공천 파동에 관해 “시스템 공천을 하고 있다”는 이재명 대표 등 친명 주류 쪽의 인식을 확인한 뒤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계인 고 최고위원은 이재명 대표 등 당 주류의 변화가 없으면 향후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으로 확인된다.

고 최고위원은 “더는 지도부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재명 대표 등의 공천 관련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당분간 지도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당무를 거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고위 구성원 중 비주류에 속하는 고 최고위원은 최근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는 당내 공천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민정, 홍익표에 이어 은평을 사태 강력 비판...“강원도당위원장의 은평을 출마는 당 정체성 훼손”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이 25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최고위원이 25일 오후 8시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5일 밤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고 최고위원은 현직 강원도당위원장인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이 비명계 현역인 강병원 의원(재선)과 경선하는 서울 은평을 지역 공천에 대해 문제의식을 전했다. “김 전 구청장이 도당위원장의 직분을 버리고 은평을에 나온 건 당 정체성 훼손”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경선 방침을 철회하거나, 김 전 구청장에게 감산 등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고 최고위원은 홍익표 원내대표와 같은 입장을 보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의 의견은 친명계 지도부에서 소수파에 그쳤고, 은평을 공천 문제는 공천관리위원회가 결정한 대로 정리됐다. 친명계 지도부에선 김 전 구청장의 처신이 부적절하다는 데엔 동의했으나 당헌당규상 이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당내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이 대표의 정치적 멘토인 이해찬 전 대표도 같은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총선 승리를 위한 ‘원팀’을 위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서울 중성동갑 공천을 용인해야 한다는 뜻을 이 대표에게 전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전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이 전 대표가 지금 시스템 공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면서 “그런 우려를 이 대표 측에 전한 것으로 알아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9대1 시스템’이라고 조롱

26일 채널A에 출연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민주당의 공천에 대해 “시스템 공천이 맞다. 9대 1 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최 전 부원장은 “민주당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0%에 포함됐던 31명 중 28명이 비명”이라면서 “대략 90%가 된다”고 설명했다. 비명은 90%인 반면, 친명은 10%에 불과하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심야 최고위 회의가 끝난 이후 기자들에게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채널A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5일 심야 최고위 회의가 끝난 이후 기자들에게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채널A 캡처]

연이어 최 전 부원장은 “공천과정에서 비명횡사 찐명횡재라는 말이 있다. 비명은 경선, 친명은 단수(공천)”이라고 설명했다. 최근까지 단수 공천이 결정된 51명 중에 45명이 찐명이고, 비명은 6명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최 전 부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단수 공천 비율도 딱 9대1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최 전 부원장은 “시스템 공천이긴 한데 비명 찍어내기 9대1 시스템 공천이다. 그런 점에서 좀 문제가 많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연구를 담당하는 당내 조직이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중 한 명인 김용 씨도 민주연구원의 부원장을 맡았다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후 2022년 11월에 사퇴했다. 그만큼 민주연구원은 당의 핵심 조직에 해당한다. 민주연구원 최 전 부원장의 ‘9대1 시스템 공천’은 그만큼 당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공천 반발 기류를 드러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