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되면서 의료대란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의사나 보건복지부 직원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기는 출처불명의 괴담 그리고 막말들이 뒤섞여 난무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의 의료대란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2차 병원에 몰린 환자들. [사진=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의 의료대란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2차 병원에 몰린 환자들. [사진=연합뉴스]

따라서 정부와 의사들이 제로섬 게임을 연상시키는 극한 갈등 국면에서 탈피해 이성적 대화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괴담 유포 세력에 대한 긴급수사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의대 증원과 의료대란을 둘러싼 복지부와 의사간 갈등과 증오 부추기는 괴담, 막말이 난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 닷새째인 24일 전국의 의료현장에서는 상급종합병원에 가지 못한 환자들이 수술이나 치료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빅5’로 불리는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은 수술건수가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환자들조차도 제 때에 수술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더욱이 의대 증원 및 의료대란을 둘러싼 정체불명의 괴담과 막말이 뒤섞인 채로 증폭되고 있다.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거대 야당 대표인 이재명이 사태 초기부터 정체불명 ‘괴담’을 공식 유포...25일 재차 언급

놀랍게도 그런 괴담을 초반부터 공개적으로 살포한 사람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이다. 공교롭게도 이 대표가 출처를 알 수 없는 괴담을 민주당 회의석상에서 언급한 다음에 다른 괴담 그리고 복지부를 겨냥한 의사들의 막말 등이 터져나오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전공의들이 집단사직 후 근무중단을 시작하기로 한 20일 전날인 1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대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요구를 던진 다음에 혼란과 반발을 극대화시켜서 국민 관심을 끌어모은 뒤에, 누군가 나타나서 이 규모를 축소하면서 원만하게 타협을 끌어내는 정치쇼를 하려는 것 아니냐”라면서 “항간에 이런 시나리오가 떠돈다. 저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열흘 전쯤에 “의료대란으로 의사와 정부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면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개입해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됐다고 한다. 이를 통해 한 위원장이 통합의 리더로 자리잡아 4.10 총선을 국민의힘 승리로 이끌게 하고 나아가 차기대권 주자로 위상을 굳히는 내용이다”라는 취지의 지라시가 돌았다는 것이다.

정부와 국민의힘 인사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가짜뉴스”라고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야당의 대표가 심각한 태도로 ‘괴담’을 유포한 것이다.

이 대표는 25일 페이스북에서 "의사는 파업을, 정부는 진압쇼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면서 동일한 괴담을 또 다시 언급했다. 그는 "정부가 일부러 2000명 증원을 들이밀며 파업 등 과격반응을 유도한 후, 이를 진압하며 애초 목표인 500명 전후로 타협하는 정치쇼로 총선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시중의 의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면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의료계와 국민의 피해를 담보로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양평고속도로나 채상병 사건을 능가하는 최악의 국정농단 사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복지부 공무원과 그 가족들에 대한 ‘의료 보복’ 협박 게시물 유포돼

24일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의대 증원을 주도한 정부부처인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과 그 가족들에 대한 보복협박 게시물이 유포되고 있다.

최근 복수의 인터넷 사이트에 ‘복지부 공뭔 X끼들 꼭 봐라’란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그 내용은 섬뜩하다. "앞으로 내 외래에 너 본인이나 너네 가족 오면 내 처방 땜에 고생 좀 할 거다. 내가 일부러 독약을 처방해 주진 못하지만, 당화혈색소 6까지 내릴 수 있는 거 7.5 넘게 놔둬 줄 수 있고 혈압 130/80 나올 거 150/100 되게 해줄 수 있다. ㅎㅎ"고 적었다. "너네 자식들 목 땡땡 부어서 오면 시럽만 조금 먹여서 일주일이면 낳을 거 한 달은 고생시켜봐라. 너네 가족들은 평생 제대로 된 진단 치료 안 되게 최선을 다할게"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복지부 공무원 ○○ 하나 와서 복수해 줌’이라는 게시물은 복지부 공무원이 위장 내시경 검사를 하러 왔는데 정상 조직을 떼어낸 후 악성 종양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더니 안색이 안 좋아져서 나갔다는 경험담을 올리기도 했다.

의사들이 환자 치료 대신에 ‘살인행위’를 한다는 괴담 유포 세력과 목적은?

이런 게시물이 처음 올라온 것으로 알려졌던 의사 커뮤니티 관계자는 “그런 글 자체가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도 글의 출처를 추적중이다. 다른 커뮤니티에 떠다니다 삭제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러나 의사들이 의대 증원을 주도한 복지부 공무원과 그 가족들을 상대로 일부러 잘못된 치료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무작위로 유포됨으로써 국민적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아무리 의대 증원에 반대한다고 해도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면서 ‘살인행위’나 다름없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라 ‘괴담’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하지만 어떤 세력이 어떤 목적으로 그런 괴담을 유포하는지에 대해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사들 막말도 난무...“데이트 몇 번했다고 성폭력도 되냐”,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날이 있어도 박민수 옷을 벗길 것”

더욱이 의사들이 각종 시위와 집회에서 ‘괴담’과 유사한 맥락의 ‘막말’을 쏟아내고 있어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을 성폭행에 비유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행해도 되느냐"고 거세게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와 협의를 통해 의대 증원을 추진한다는 정부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22일 의협과의 협의를 통해 의대 증원을 추진한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박민수 복지부 차관, 나이가 비슷하니 말을 놓겠다”면서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된다는 말과 똑같지 않냐”고 고함을 질렀다.

좌 이사는 이날 서울시의사회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었던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2차 궐기대회에서 이 같이 말하고 “내가 피를 보고,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날이 있어도 네 옷을 벗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번 의대 증원 방안을 주도한 정부 인사이다.

또 "우리 말 듣지 않고 이렇게 정책 밀어붙이는 정부야말로 국민을 볼모로 삼은 것 아니냐. 환자가 죽으면 정부 때문"이라면서 "국민이 원해서 의대 정원을 늘렸다는데, 여론조사에서 공무원 반으로 줄이자면 줄이겠냐. 대통령 하야하라는 여론이 50% 넘으면 물러날 거냐"고 소리쳤고 참석자들은 열띤 호응을 보였다.

박민수 차관의 딸이 고3 수험생인데 의대를 보내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렸다는 괴담이 유포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차관이 "저희 딸이 고3인 것은 맞지만 국제반이라 해외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입시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의협 언론홍보위원장 주수호, “의사는 매맞는 아내, 환자는 자식, 정부는 폭력 남편”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수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협 비대위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주수호 언론홍보위원장은 22일 브리핑에서 "많은 의사가 자기 마음이라면서 나에게 보내왔다"면서 의사를 '매맞는 아내'로, 환자를 '자식'으로, 정부를 '폭력적 남편'으로 묘사했다. 주 위원장은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해서 이 사태를 벌인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라며 "아무리 몰아붙여도 의사들은 환자 곁을 떠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정부의 오만이 이 사태를 만든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자식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처럼 의사들도 환자를 돌보느라 정부의 폭력을 견뎌왔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자 대다수 전공의들이 환자를 떠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에 대한 의사들의 적개심을 극대화하는 효과는 있지만 비유의 적절성은 결여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전공의 사직 매뉴얼?...“사직서 내기 전에 의료자료 삭제하거나 변조하라”

이에 앞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한 마지막 날인 1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모 병원 의사와 간호사 간 주고받은 메시지'라는 게시물이 공유됐다. 간호사가 "처방을 부탁한다. 퇴원도 될 수 있으면 화요일에 하고 싶다고 한다"고 환자 측 입장을 전하자 의사는 "X귀찮다"며 "X소리 하지 말고 가라고 하라. 내일부터 전공의 병원에 없다고 하라"고 대답했다. 의사가 환자마저도 적대시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이 게시물이 사실인지 아니면 조작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앱에는 '전공의 사직 매뉴얼'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의사 커뮤니티 앱인 '메디스태프'에 올라온 사진을 게재하며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기 전 의료 자료를 삭제하거나 변조하라는 행동 지침을 알려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계장 바탕화면, 의국 공용 폴더에서 지우고 나와라. 세트오더(필수처방약을 처방하기 쉽게 묶어놓은 세트)도 다 이상하게 바꿔 버리고 나오라. 삭제 시 복구할 수 있는 병원도 있다고 하니까 제멋대로 바꾸는 게 가장 좋다"라고 구체적 방법을 적었다. 작성자가 의사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IP추적 등을 통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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